마흔이나 쉰까지 가지 않아도
얼굴에 책임져야 하는 것 같다.
20대 30대에도 얼굴이, 몸이 그 사람이다. 그렇지 않나.
그 사람의 가치, 지향... 이런 것 완전히는 감추지 못한다는 뜻에서면.
Manhattan에서 우디앨런이 "인생을 살 가치 있게 하는 것들" 목록 마지막에서
"트레이시의 얼굴" 말하는 게 그래서 강력히 공감될 때 있지 않나. 꼭 미모라서가 아니라
보면 행복해지거나 영감을 주는 얼굴... 있지 않나. 생김새도 그렇지만 눈빛과 표정에서 (여러 이유로) 매혹적인 얼굴.
이런 점에서, 한국이 지옥임을
사람들의 얼굴에서도 알 수 있고. 맥락없이 격렬한 적의 가득한 눈빛. 누구나 드물지 않게 겪지 않나.
사람들이 자기 몸을 어떻게 움직이나로 그 사회의 물화, 비인간화 정도... 를 볼 수 있다, 그런 내용 단장이 <미니마 모랄리아>에 있기도 하다. 이글턴이 "귀족적 투덜거림"이라 조롱한 단장.
한국에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유형 얼굴.
존 롤스의 얼굴이 그런 얼굴이라는 생각도 했었다.
원한 없이 고요히 역경에 맞섰으며 자기 일에 온전히 충실했던 사람의 얼굴.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에즈라 파운드의 노인 시절 얼굴도 그렇다는 생각을 한다.
이 분도 지극히 흥미로운 분일 거라서 더 늦기 전에 진지하게 연구해보고 싶은데
도대체 언제 시작 할 수 있을지.
파운드의 문학 정의. "문학은, 언제나 뉴스인 뉴스다. Literature is news that stays news."
감동적이지 않습니까. 더 좋은 정의 있습니까. 규범적이고 (그런데 사후판단적이고, 어쨌든) 파편적 정의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