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망명해야 할까요? 이 땅에서 나이들고 이 땅에서 철이 들면 안될까요?

왜 다른 사람들이 가진 믿음에 따라야 하나요? 어린 시절 우리가, 처음 품는 확신, 강력한 아이의 확신으로 믿었던 것보다, 더 큰 진실이 거기 있다는 건가요? 나는 여전히 기억합니다. . .  각각의 사물마다 그것만의 특별한 의미가 있던 것을, 그리고 세상엔 그토록 많은 사물들이 있었던 것을. 그리고 그 중, 다른 것보다 더 가치있는 건 아무 것도 없었어요. 그것들 모두를 정의가 관장했습니다. 각각의 사물이 세상에 단 하나 존재하는 것으로, 그리고 어떤 사물이든 나의 운명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이던 시절이 있었습니다. 밤에 날다가 지금 나의, 내가 좋아하는 나무 위에 앉은, 검고 진지한 새. 정원의 나무와 풀들을, 어둠과 반짝임의 유약을 바른 듯한 풍경으로 바꾸던 여름 비. 책장들 사이에, 누가 놓았는지 알 수 없는 마른 꽃이 끼워져 있던 책. 이상하고, 보고 있으면 수많은 해석들을 할 수 있는 모양을 가진 돌. 어린 시절 우리는, 어른들보다 이 모두에 대해 훨씬 더 많이 알았습니다. 이들은 저마다 우리를 행복하게, 그리고 우리 자신이 중요하다고 느끼게 했고, 그런가 하면 한편 우리는. . .

 

Why go into exile? Why not grow older and more mature in this land? Why get used to what others believe? Is there any more truth in that than in what one had believed with one's initial, strong child-faith? I can still remember. . . each thing having a particular meaning, and there were countless things. And none was worth more than any other. Justice reigned over them. There was a period when each thing seemed to be the only one, when every single one could become one's fate: a bird that flew in the night and now was sitting, dark and serious, in my favorite tree; a summer rain that transformed the garden so that all of its greenery seemed glazed with darkness and gleam; a book where a flower had been placed among the leaves, god knows by whom; a pebble of strange, interpretable shape: all of this was as if one kenw much more of it than the grown-ups. It seems as if with each thing one could become happy and big but also as if one could perish on each thing. . .

 

Rainer Maria Rilke, "On Childhood and Education," Letters on Lif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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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도 오늘의 인용할 양식으로 삼고 싶어 옮기긴 시작했는데,

릴케는 번역 불가... 에 가깝다는 걸 다시 느낌. 독일어에서 영어로도 아마 번역불가... 일 거라 생각하게 된다. 

(...................) 


아무 일에나 "두 종류의 사람"을 갖다 댄다. 릴케를 읽을 수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릴케를 읽을 수 있다면, 너의 유년기는 낭비되지 않았다...: 이렇게 말할 수 있겠지. 너의 유년기에, 물리적 시간으론 단 세시간에 불과할지라도 순수한 은총의 시간이 있었다면, 너는 그것을 살았고 기억하는 것이다...: 이런.




*얼마 전 뭔가 찾다가 이런 글 써둔 걸 발견했다. 

위에 옮겨 둔 저 문단, <스완네 집 쪽으로>와 강력히 공명한다고 생각한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의 각 권들은 서로 분명히 달라지는 세계, 주제들을 탐구할텐데 

<스완네 집 쪽으로>만 한정하면, 유년기의 복원.... 이게 가장 중요한 주제일 것 같고, 이게 사실 모더니즘 작가들이 좀 넓게 공유한 주제가 아닌가 하기도 한다. "현상계의 찌꺼기들"을 구제함. 나라면 모더니즘 문학의 가장 큰 충동은 이것이라 보겠고, 현상계의 찌꺼기들 구제의 프로젝트는 거의 유년기에만 (그 시절을 탐구의 대상으로 삼을 때에만) 가능한 게 아닌가는 생각도. The Mark on the Wall, Solid Objects 같은 울프의 걸작 단편들은 성인 인물들을 주인공으로 그 프로젝트를 하고 있긴 하지만. 그녀는 천재니까. ㅋㅋㅋㅋㅋㅋ 뭔들 못하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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