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관리되고 명확히 규정된 절차들에 반대하여, 

철학이라 불릴 가치가 있는 철학은 여러분에게 이전 교육 과정에서 철학으로 제시되던 것과 정반대입니다. 철학에, 그것이 철학의 연구 대상이라고 보장되는 대상은 없습니다. 철학적 사유는, 사유가 길을 잃을 수 있는 데서만, 그 사유가 틀릴 수 있는 데서만, 가능합니다. 철학적 사유에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때, 다시 말해 그 사유가 반복, 재생산의 영역에 갇힌 자신을 볼 때, 그 때 철학은 자기 임무에 실패한 철학입니다. 그리고 내가 이런 말을 해도 된다면, 나는 철학 -- 이 말이 요즘 불러 모으는 모든 의심도 염두에 두면서 -- 이 철학의 진정한 현실성을 보여줄 수 있는 지점 -- 현실성이 철학에 있다면 말이지만 -- 은, 이 세계를 지배하는 안정의 필요에 맞서 철학이 제공하는 저항에 있다고 말하겠습니다. 이 저항은, 저 필요에 순응하면서 자기들의 시야를 조정하고 있는 현재의 사유양식들은 모두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철학이 현실성을 보여주는 지점, 그것은 -- 니체라면 이렇게 말했을 텐데 -- 위험하지 않은 인식이라면 더 이상 사유로 불릴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여기서 위험은 니힐리스트적 폭탄 투하나 고대 석판 법전의 파괴 등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그 위험은, 이미 알려진 것 너머로 가지 못하는 인식은 허위이며 낡은 인식으로 선포될 거라는 위험을 가리킵니다. (.....) 철학의 높은 야망을 "본질"의 인식에만 제한하지 말고, 그 야망을 지적 체험의 영역으로 유입하는 일. 이것이 우리가 해야할 일입니다. 


- 8강 "지적 체험의 개념 The Concept of Intellectual Experience" 



이 책 좋다. 

<부정 변증법>에서 아도르노가 무엇을 하려 했는지 

아도르노 자신의 말로 명확하게 알아갈 수 있는 책. 하버마스의 <모더니티의 철학적 담론>에서 니체가 이러저러하게 인용된다는 노트를 보고 하버마스 책 찾아보다가, 어쩌다 보니 이 책까지 찾아보게 됨. 


철학은 길을 잃으라. 무책임을 철학에게 권한다. 유희가 진실의 계기. 

이런 아도르노에게 나는 전적으로 공감하는 편이다. ;;; 내가 공감하니 아마 소수이겠지. 하버마스도 저 책에서 아도르노에게, 그의 이성비판은 수행모순이라는둥. 


이 책 6강에 처음 읽던 때 깊이 감동, 감격했던 문장이 있다. 

"세계가 바뀌지 않은 이유. 세계가 너무 적게 해석되었기 때문이다." 

Another reason why the world has not changed is that too little is interpreted. 


해석이 부족하다. 

해석에 반대한다. 보다 더 진리이지 않나? 둘 다 진리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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