助詞論


우리말을 우리글로 옮기다 보면 

다루면 다룰수록 어렵고 깐깐해지는 것은 

아홉 품사 중에서도 다름아닌 조사올시다 


비유컨대 

말이 입고 있는 옷이 글이라면 

조사는 아주 사소한 단추라고나 할 수 있으나 

첫 단추 잘못 끼운 나머지 결과가 어떠한 줄이야 

이미 잘 알고 계시다시피 

단추 하나 엉뚱해지면 

옷이 삐뚤해지면서 

몸도 빼뚤해지고 급기야는 

마음마저 삐딱하게 툴툴거리는 것처럼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이 조사 하나가 

문장이란 외출복에 날개를 달아 주느냐 

아니면 무겁게 발목 잡느냐 

다시 말해 문장의 품질을 결정적으로 결정하는 것입니다 


우리말과 우리글을 사랑하고 자랑해야 할 우리끼리 이야기입니다만 

조사란 마치 약방의 감초와도 같은 것이어서 

우리말의 경쾌하고 컬컬핫 멋도 

우리글의 감칠맛과 낭창낭창한 탄력도 

바로 이 조사에서 우러나서는 

지은이의 생각과 읽는이의 마음을 

감쪽같이 바느질하여 줍니다. 



일어나서 커피 마시고 밀린 채점을 하다가 찾아야 할 책 때문에 책장 보던 중 구석에 끼여 있던 이 시집 발견. 

며칠 전 수업에서 weary, obsolete 두 단어 얘기하다가 이 시집 생각나 말해봤었다. 단어가 그 소리와 모양에 이미 자기 뜻을 갖고 있는 듯한 일. 그것에 대해 쓴 한국 시인도 있는데.... (까지 말했지만 시인 이름, 시집 제목 둘 다 기억이 안 나서, 시와 소설 애독자임이 분명한 학생이 나 대신 말해주길 기대. 기대는 이루어지지 않았는데 지금 보니 시집은 91년간. 이갑수 시인은 쭉 시집을 낸 것같지는 않은?) "한글은 표의문자"라는 구절이 등장하는 그 시는 이렇다: 




       우리나라 글들의 풍경 

        ----말은 존재의 집이다, 하이데거 


글에는 표정이 있다 

우리나라 글자에는 풍경이 숨어 있다 

(한글은 표의문자가 아닐까?) 


개울 모래 자갈 돌 물, 개울물 속 모래자갈돌 

굴러 흘러 내려가는 소리 리을이 꼬부라져 졸졸졸 


마을, 마음들이 모여 살고 부드러운 말씨로 줄이면 말 


부드럽다, 는 부드럽다 


손, 길고 짧고 펴고 구부린 것 그리고 강조되는 엄지 

과연 하나도 모자라지 않는 5획으로 


옷, 옷 입고 씩씩하게 두 팔 흔들면서 

두 발로 걸어가는 사람모습을 사실적으로 인상 깊게 


몸, 옷에 꼭 맞게 들어앉은 신체 

과감한 생략과 극도의 절제를 구사한 추상 조각품 


뫼, 몸이 아랫도리를 걷고 의자에 앉아 있는 듯 

가뿐하게 올라 피곤을 걷은 등산객이 쉬고 있는 것 같군 


묘, 나무요 깔고 하나로 접어 허공에 누운 

몸과 마음이 묘하기만 하네 


----글은 존재의 건물이다 



우리말(우리글)도 그렇지만 영어도 그렇다. 

weary는 목이 말라도 팔을 들 힘조차 없는 무력함과 축(축축하게) 늘어진 다리를 말하는 것같고 

obsolete은 고철이 되어가는 자전거들이 엉켜있는 고물상, 녹냄새 나는 공기와 붉은 색조의 풍경을 말하는 것 같고. 이런 얘기 하면 즐거워하는 학생이 반드시 한 사람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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