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학이론>의 "수수께끼적 성격, 진리내용, 형이상학" 섹션에 (그러니까, 이 책은 전통적인 '장'에 따른 구분이 없고, '섹션'이라고들 부르기도 하는데 각각 자기 제목이 주어지긴 하는 내용 분할.. 들이, 그들 사이에 문단구분조차 없이 죽 이어지는, 형식의 면에서도 엄청난 괴작. 내용은 말할 것도 없겠고. 그게 이 책의 매혹이기도 해서, 괄호치고 굳이 쓴다) 아도르노가 고른 시 한 편이 소개된다. 19세기 독일의 시인이라는 뫼리케의 작품. 


쥐덫 노래 


(아이는 쥐덫 주위를 세 번 돌고 노래한다)

작은 손님들, 작은 집 

작은 새앙쥐야 어른 쥐야 

용감하게 오늘 밤 우리집에 오렴 

달빛이 환하게 비칠 때! 

하지만 네 뒤의 문을 꼭 잠가야 해, 

내 말 들리니? 

꼬리도 조심해! 

저녁을 먹고 나서 우린 노래할 거야 

저녁을 먹고 나서 우린 뛰어나올 거야 

그리고 춤을 출 거야 

쉿, 쉿! 

우리 늙은 고양이도 같이 춤을 출 거야. 


이 시 이상하게 굉장히 마음에 든다. 

아도르노가 고른다고 다 마음에 드는 것이 아니어서, 이 시는 전체가 소개되지만 부분 소개되는 다른 시들의 경우, 기억도 잘 나지 않는다. 그것들은, 검색해서 다시 보아야, 아하 그런 시가 있었지. 


새끼 쥐, 어른 쥐 구분하는 것도 마음에 들고, 

내 말 들리니? : 이 행도 마음에 든다. 


저녁을 먹고 우린 노래할 거야. 

저녁을 먹고 우린 뛰어나올 거야. : 이 대목에선, 내가 좋아하는 지금 우리 동네의 풍경이 떠오르고 어두워지려고 할 때 나와 있는 아이들, 어른 노인들도 그 풍경 속에 있기도 하고. 이유없이 걷고 뛰고 웃는 어린이들이 이 동네에도 꽤 있다. 그냥 제자리뛰기도 하고 짧은 거리지만 질주하기도 하는데, 그러면서 웃는다. ㅋㅋㅋㅋㅋ 


다 마음에 들고, 마지막 행도. 

우리 늙은 고양이도 같이 춤을 출 거야. 





이 시의 표면적 내용에 해석을 제한한다면, 

문명화된 관습이 해충으로 여겨지는 동물에게 가하는 일들에 대한 사디즘적 동일시.. 를 보는 일 이상은 할 수 없다고 아도르노는 말함. 마지막 행 "우리 늙은 고양이도 같이 춤을 출 거야"는 아이가 쥐에게 가하는 일종의 위협인 건데, 만일 그게 진정 위협이라면 -- 아이와 고양이, 쥐 셋이 함께 즐겁게 어울리는 뜻하지 않은 다정한 풍경의 상상이 아니라 -- 그 위협이 이 시에 의해 이렇게 쓰임으로써, 그건 그게 전부가 아니게 되고 스스로를 초월한다. 그래서: "이 시를, 아이가 쥐에 가하는 위협으로 보는 건, 이 시에 담긴 시적 내용만이 아니라 사회적 내용도 무시하는 것이다." 


밑줄 친 저 문장이 또한, 한참 들여다보게끔 신기했다. 아도르노에게 사회는, 비진리. 혹은, 악. 

"사회적 내용" 같은 구절이, 그에게선 그게 무엇이든 긍정적인 의미로는 거의 쓰이지 않는다. 그런데 이 문장에서, 예술을 통한 사회의 자기 반성, 자기 극복, 이런 걸 얘기하는 것 같아서. 예술이 예술의 힘으로 (가장 소박한 동시의 차원에서도), 사회에게 자신의 맹목을 보게 한다. 그런 얘기. 실은 그 비슷한 게 그의 예술 철학의 일부이긴 할 것이다. 그런데 참 슬그머니, 그런 얘길 하는 것같고, 그리고 아무도 모를 동시 한 편으로 (쥐와 고양이가 등장하는) 그런다는 것도, 신기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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