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면 어떻게 우린, 완벽한 문학적 인물들이 보여주는 완벽한 통합성과 자유를 획득할 수 있을까? 어떻게 우린, 비열한 샤를뤼 혹은 고귀한 브루투스와는 달리, 실제로 존재하는 문학적 인물이자 동시에 그 인물의 저자가 될 수 있을까? 


어쩌면 불가능한 이 목표, 이 목표를 성취할 수 있는 하나의 방법은, 그들 사이에 언뜻 커다란 불연속성이 있는 듯해도 이들 각자를 세심하게 그리고 잘 읽는다면 깊은 연속성을 드러내는, 여러 권의 아주 탁월한 책들을 쓰는 것인지 모른다. 이런 기도의 끝으로 향해가면서, 어쩌면 이 책들 전부에 관하여, 어떻게 그들이 서로 맞아드는가에 대한, 그들 안에서 어떻게 하나의 인물이 부상하는가에 대한, 어떻게 가장 파괴적인 모순도 그 인물, 그 저자, 그 사람(어휘의 선택은 중요하지 않다)이 그들 안에서 온전히 부상하기 위해 불가결했나에 대한, 책을 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 -- 그가 얼마나 강하게 수직 발전을 하든, 혹은 하나의 모순에서 다른 모순으로 비약하는 듯 보이든, 면밀히 관찰한다면 옛건물에서 새건물로 이어지는 연결부가 보일 것이다. 이것이 전기작가의 임무다. 자연은 비약하지 않는다는 원리에 근거하여 자신의 주제를 성찰할 것." (<인간적인 너무나 인간적인>, "방랑자와 그의 그림자" 198장)." 


짜라투스트라는 말했다: "내게 돌아오는 것, 나라는 고향으로 마침내 내게 오는 것, 그것이 나의 자아다." 그리고 니체는 <반시대적 고찰>, 그 고찰들 셋이 역사적 중요 인물을 다루며 하나는 역사 자체를 다루는 책에 대하여 이렇게 쓰게 된다: "그 기저에서 이 고찰들은 모두 오직 나에 대해 말한다. . . <바이로이트의 바그너>는 나의 미래에 관한 비전이고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엔 나의 가장 내밀한 역사, 나의 "되기"가 새겨져 있다." (<이 사람을 보라> 3장). 이에 앞서 니체는 다음과 같이 쓰기도 했다: "이제 당신이 예전 사랑했던 그것이. . . 오류였음을 당신은 불현듯 깨닫는다. . . 하지만 이 오류는 당시의 당신에겐, 당신이 지금과 다른 사람이었던 -- 그리고 당신은 언제나 다른 사람이다 -- 그 때엔, 당신의 현재 "진리"들만큼이나 당신에게 필요했던 것이다." (<즐거운 지식> 307장). 이제 니체는 <교육자로서의 쇼펜하우어>를 돌이켜보면서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그 시절 내가 학자의 기예를 실천했음을 감안하면, 또한 그 기예에 대해 무엇인가 "알았다"는 걸 감안하면, 이 에세이에서 갑자기 떠오르는 가혹한 학자적 심리학엔 어떤 의의가 있다. 그 심리학은 "거리의 느낌"을, 무엇이 나의 과제일 것이며 무엇이 단지 그 수단, 막간, 사소한 작업에 불과할 것인지에 대한 심오한 확인을 표현한다. 그 심리학은, 내가 되어야 할 그 하나가 되기 위하여, 가져야할 그 하나를 갖기 위하여, 많은 것들이게 했고 많은 곳들에 있게 했던 나의 신중함을 표현한다. 나는, 얼마간은, 학자이기도 해야했던 것이다." (<이 사람을 보라> 3장). 


그렇다면, 되어야할 그 하나, 자기라는 그 사람이 되는 한 방법은, 그 모든 책들을 쓰고 난 다음 <이 사람을 보라>를 쓰고 그것에 "사람은 어떻게 자신이 되는가"라는 부제까지 붙이는 것이다. 니체가 자신을 발명 혹은 발견한다고, 그리고 거기서 우리에게 말하는 그 인물이, 그 인물을 창조한 저자이며 또 그 저자는 그 모든 책들에 의해 창조되거나 혹은 그 책들 안에 암묵적으로 존재하는 인물이라고, 모두에게 공정하게 말할 수 있는 바로 그 자기-반영적인 책을 쓰는 것이다." 


두세 문단만 그것도 발췌해서 인용하려고 했다가, 

그러면 맥락이 사라지겠어서 좀 길지만 그 안에선 생략없이 전부 인용. 니하머스의 책, 6장에서 (제목이 "사람은 어떻게 자신이 되는가") 결론으로 향해가는 지점에서다. 번역은 니체 인용까지 전부 그냥 내가 함. 니체 책들 한국어판이 거의 있긴 한데 책세상 한국어판은 책들이 좀 무겁고 큰 편이라 여러 권 꺼내와서 펴보고 옆에 두기 부담되는 책들. 니하머스의, 말에서 의미를 쥐어짜는 (말을 조금이라도 늘려 짜여지는 의미도 조금이라도 늘게 하고 싶은 것같은) 문장들에서 특히 신음 아오.. 아오... 하다가 그래도 크게 왜곡이나 누락은 없이 옮겨지는데? 했다가 맨 마지막 문장에선, 마지막 한 구절을 누락하지 않을 도리가 없었다. 혹시 이 책을 갖고 있다면 찾아보셔도 좋겠다. 196쪽. 내겐, 오늘 읽은 최악의 문장. 이 주의 최악의 문장. 이 달의 최악의 문장 예상. 


니체는 삶을 세계를 문학작품을 대하듯이 보았다. 문학을 모델로 그의 책들을 쓰고 그라는 인물을 창조했다 : 대략 이런 내용의 책. 정말? 그렇게 보는 건 문학에도 삶에도 모욕인 거 아닌가? 


"천재에게, 상상력이 사유를 낳는다. 니체의 경우다. 사유가, 이미지의 선물 가게에 가서, 반짝이는 것들을 사들고 나오는 것이 아니다." 이건 바슐라르의 말. 같은 사람을 보는 두 가지 (둘 다 합당한) 방법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혹시 그렇다 해도 이 둘 사이의 차이엔 무슨 의미가 있는지 강력하게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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