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고전들이 다 그렇겠지만 <로마제국 쇠망사>도 판본이 너무 많아서 이 책을 처음 읽으려는 독자에게 혼란이 있을 수 있다고 한다. 레오 담로시가 강의에서 추천한 건 펭귄판. 추천의 이유는 "발췌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경우도 실은 발췌본인 경우가 많고, 기본이 붙인 저자 주석을 존중하지 않고 명확한 기준 없이 일부 삭제하고 일부 보존했다 혹은 전부 삭제했다 하는 경우들이 많은 가운데, 펭귄판만 저자주 포함 원저 전부를 보존한 판"이기 때문이라고 약간 숨차게 (하 이건 하고 싶지 않은 얘기인데 안할 수 없는 얘기기도 하니 얼른 해야한다...) 말씀하심. 


각주를 방대하고 세밀하게 붙이는 건 기본의 시대에 새로운 (거의 처음인) 것이었다. 기본은 고전 그리스어, 라틴어 포함 유럽 언어들에 능통했고 이 책을 쓰기 위해 이 언어들 전부에서 폭넓게 읽었다. 그리고 영어 아닌 문헌들은 전부 번역 없이 때로는 아주 길게 인용했다. 이 때문에 이 책을 출판하면서 저자 주석을 아예 전부 삭제해도 그게 스캔들이 아닐 수 있었다. 이 주석들이 있다 해도 누가 그걸 읽겠으며 이해해? 그렇지, 주석은 필요하지 않다. (....) 이 점 말하고 나서 이어지는 담로시의 말은: 그러나 주석들을 읽지 않았다면 이 책을 다 읽지 않은 것이다. 주석들이 서로 연결되면서 형성하는 추가의 서사들이 있고 추가의 우주가 있다. 능가할 수 없는 아름다움이 담긴 무수한 인용들이 있다. 만일 네가 학창 시절 라틴어를 조금 공부했고 이 책의 라틴어 인용들을 보고 순간 어렴풋이 이해하기도 한다면 너는 아마도 강렬한 회한에 사로잡힐 것이다. 그 시절 라틴어를 더 열심히 공부해야 했다고. 


라틴어를 공부한 적 없으니 저 회한을 느낄 일도 없긴 한데, 이 회한 자체는 보편적 경험 아닌가. 그 시절 --를 더 해야 했다, 회한. 그런데 라틴어는 유럽 문화, 역사를 조금만 깊이 있게 들어가도 거의 필수라 느껴지긴 한다. 라틴어 문헌을 번역 없이 길게 인용하는 책들은 20세기 초까지도 흔했. 그런데 어쨌든 저런 이유에서 담로시가 추천하는 펭귄판은, 지금은 위의 판(Everyman's Library)이 교체한 거 같다. 박스당 3권, 두 박스 6권으로 나온 위의 판 1권에 상세한 해제가 있는데, 아예 처음부터 기본의 저자주석 문제를 논의한다. 그게 얼마나 중요하고 그래서 온전히 보존해야 하는지.   


그런데 외국어 공부는, 특히 흔히 쓸모없다 여겨지는 외국어 공부는, 생계가 안기는 부담 없이 그걸 할 수 있다면, 정신에게 일용할 양식이 되지 않나 생각한다. 인생의 황혼기에 라틴어 공부. 70대에게, 정신을 위한 일용할 양식. 너무 바로 상상할 수 있음. 





컬럼비아 대학에 재직하는 데이빗 맥훠터라는 언어학자가 "(권력을 갖는 언어로서) 프랑스어는 끝났다"고 말했고 아무도 이 말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글을 읽음. 이 글은 왜 프랑스어가 여전히 배울 가치가 있는 언어인가 말하는 글이었다 (다시 보려고 검색했으나 찾지 못하는 중). 맥훠터는 미디어가 사랑하는 학자다. 그리고 뭐랄까, 대중이 듣고 싶어하는 말을 바로 소비될 문장들로 하는 학자. 그가 하는 말을 듣고 있으면 머지 않아 "아앜 이 분 charlatan" ("사짜"), 그러게 된다.  


왜 불어가 여전히 중요한가. 이에 대해 저 글에 확 와닿는 새로운 내용이 있지는 않았다. 그러나 조금 웃겼던 건, 미국의 고등학교(대학도 그렇지만)에서 불어의 지위 하락에 항의(?)를 프랑스가 정부 차원에서 했었다던가. 불어 교육 강화를 위한 구체적 목표와 방침을 프랑스가 직접, 일일이, 전달했다던가. 거의 내정간섭이었다던가. 그랬다고 함. 불어 교육 강화를 옹호하는 입장인 필자도 "아이고내가 웃겨서 정말" 투였. 과거 제국의 기억이 사라지지 않아서인가, 일해라절해라 할 수있는 건. 천조국에 일해라절해라. 


프랑스-모로코 전에서 프랑스 편이 되기도 하는 심정을 알면서, 이 편향 왜 생겨났나 생각해 보았다. 몰입(과몰입)해 읽은 프랑스 저자들이 있는데, 특히 올해는 "이걸 내게 알게 하다니. (........) 감사하다" 하게 되는 때가 자주 있었다. 계속 포스팅한 랑프리의 경우엔, 나는 프랑스인이 아니라 유럽인으로 말한다, 나는 유럽인이 아니라 세계인으로 말한다... 이걸 보여주기도 한다. 그게 전혀 "ridiculous" 하지 않다 (억지스럽거나 허세 아님). 프랑스인에서 시작하여 유럽인이고 세계인인데, 그러나 또한 언제나 프랑스인. 그가 조국, 애국에 대해서 억압, 강압적이지 않게 말할 수 있는 비결이 여기 있기도 할 것이다. 국적을 초월하면서 또한 언제나 국적으로 돌아오는 중임. 이걸 그에게서 배웠다 생각하게 되는 때가 있었다. 


배워서든 아니든 저걸 할 수 있어야만 세계 사랑(아렌트), 이것도 할 수 있게 되는 거 아닌가. 

프랑스-아르헨티나 결승전은 스트레스가 두려워서 아직 안 보았는데 (차기 월드컵 때 보기로...), 아르헨티나 팀이 음바페를 증오한다는 내용 위 동영상 보면서, 이런 내용을 대하는 방식에서 극히 미미하지만 좋은 방향으로 변화가 있었는데 그게 다 프랑스 저자들에게서 배운 덕분이라 생각함. 그런 생각이 들고 맘. 


(*동영상 내용. 우승을 자축하면서 아르헨티나 팀과 팬들이 음바페를 저주함. 그런데 먼저, 음바페가 남미 축구를 무시하는 발언을 했음. "유럽축구의 수준이 세계 축구의 수준. 월드컵에 가면 브라질, 아르헨티나 팀들을 만나는데 그들은 세계 수준이 아님." 아르헨티나는 이를 반박함. "남미 축구를 해보지 않았다면 축구를 해보지 않은 것이다. 음바페에게 축구에 대해 말할 자격이 없다." 그리고 음바페를 인종주의적으로 모욕함. "너의 어머니는 나이지리아 출신, 너의 아버지는 카메룬 출신.") 


............ 아무튼. 곧 그 시절이 되고 말 이 시절. 

더 했기를 원하게 될 그 무엇을 더 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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