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le:Bonaparte in the 18 brumaire.jpg - Wikimedia Commons



왜 나폴레옹에게 일관되게 비판적인 전기는 없는가. 

했다가 찾은 것이 19세기에 나온 피에르 랑프리의 "나폴레옹의 역사" 5부작이었다. 

이 전기는 나폴레옹이 보여준 비범함을 칭송하는 대목이 아예 없는 건 아닌데, 그 얼마 안되는 칭송이 거의 다 나폴레옹이 장군으로서 초기에 보여준 전략가적 면모를 향하는 것이고, 나폴레옹 정도 뛰어난 군인(장교, 장군)은 그 말고도 더 있었음을 분명히 하기 때문에 그 칭송이 과연 온전히 칭송인지는. 가끔 "프랑스군은 여기서 막대한 성공을 거두었다, 그것은 뛰어난 전략이었다" 하는 저 대목들 말고는 아주 일관되고 강력히 비판적이다. 


나폴레옹이 어떤 인간이었고 프랑스 사회는 그에게 어떻게 반응했고... 말하는 어떤 페이지들은 "너무 재미있어서 읽을 수 없다" 이 말 기억하게 될만큼 숨막히게 재미있기도 하다. 전투 진행을 지형부터 병사 수, 병사들 배치 등등 모조리 세밀히 말하는 무수한 페이지들이 숨막히게 지루하기도 하지만, 너무 재미있어서 읽을 수 없는 페이지들이 나오기 때문에 지루함이 보상이 된다. 


그 재미의 작지 않은 부분이 심리적 통찰. 

니체가 "오직 프랑스인만 진정 심리학자다" 투로 말하지 않았나. 1-2인의 러시아인을 제외하고? 그런 단서 달면서? 아니었나. 니체 책 읽으면서 페이퍼 쓰던 시절 잘 기억하고 있었는데 지금 완전 헷갈림. 아무튼 니체의 프랑스인 칭송을 기억하게 되는게, 이 나폴레옹 전기가 니체가 읽었을 수도 있는 책이고 (1권이 1880년에 나왔다) 니체가 읽었다면 어디 밑줄을 그었을까 상상하게 되는 대목들이 있다. 이 문장에 그도 감탄했을지 모른다, 그리고 "역시 프랑스인만 심리학자다" 했겠. 


인간에 대한 심리적 이해에서 이렇게 탁월하다는 게 (정말 감탄스러운 대목들이 많은데, 인용하고 옮겨 오기는 쉽지 않아서.... 아주 감탄스러운 심리적 분석, 소묘들을 나폴레옹 외 여러 인물들을 대상으로 해보인다), "범용성"을 격하게 혐오하는 프랑스적 방식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발자크 소설에서도 강렬히 주제화되기도 한다. 범용성이 정신의 표준인 곳이 어떻게 정신을 파괴하는가, 어떻게 인간을 노예화하는가. 


오래전 어느 날 수업이 끝나고 한 학생이 "왜 범용성이 나쁜 것인가?" 질문했고, 그 질문에 답하기가 아주 어려웠던 기억 있다. mediocrity, 왜 그것이 나쁜가. 그것을 혐오함이란 무슨 뜻인가. 그것이 정신의 표준이라는 건 무슨 뜻인가. 딱딱 잘라서 바로 바로 답이 나올 주제는 당연히 아니다. 그런데 저 질문에 답하기가 쉽지 않은 다른 이유는, 한국의 방식이 프랑스의 방식과 아주 달라서, 우리는 범용성을 격하게 혐오하는 문화를 만든 적이 (어쨌든 20세기 이후로는. 근대 이전 어느 시기엔 그런 문화가 있었을 것 같기도) 없기 때문에. 한국에서는, 범용성이 정신의 표준이기 때문에. 


랑프리의 나폴레옹 전기 곳곳에 격한 범용성 규탄이 있다. 

나폴레옹은 지성의 독재자가 되고 싶어하기도 했는데, 정치를 길들이는 데 쓴 수단을 그대로 지성의 세계에 썼다. 물질적 보상이라는 당근, 위협이라는 채찍. 그리고 나폴레옹에게 자발적으로 부역했든 아니면 침묵했든, 그의 시대 지식인들 모두가 "incurable mediocrity"라는 특징을 공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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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랑프리의 나폴레옹 전기를 읽으면서 점점 더 확신하게 되는 건, 발자크가 옳았다는 것. 범용성이 지성의 표준일 때 인간을 노예화하기가 아주 쉽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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