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슐라르는 과학 이성의 객관성을 강력히 옹호했다. 

과학 연구자들의 심리, 주관성과 연결하면서 옹호하고 

그래서 주체와 객체가 "변증법" 안에서 작동하면서 형성하는 공동의 운명 같은 것으로다. 그가 펼치는 논의로 보면 경탄하고 동의하게 되는데 요약이나 정리는 느무느무 힘들다. 


순간 포착도 사실 잘 되지 않는다. 

한 문장 인용하고 그 인용문 해설하기. 이런 방식 접근이 잘 되지 않는다. 

그의 책 안에서 가동되는 변증법 안으로 들어가기. : 이 방식만 허락하는 거 같음. 

그렇게 한 번 체험하면, 이거지! 맞아! 객관성이라는 이상은 무너지거나 회의의 대상이 될 수 없다.... 는 입장이 확고히 생기는 느낌 든다. 그런데 어쨌든 이 주제로 일반적 철학 "논문"을 쓰기에는 너무 부적합하게 책을 써 놓으셔서, 그래서 그의 과학철학에서 객관성 이상의 옹호에 대한 논의가 별로 없었던 게 아닌가 하게 된다. 토마스 쿤과 바슐라르의 유사성에 대한 많은 말들이 있었는데, 쿤과 바슐라르는 사실 과학 이성, 과학 이성의 객관성에 대한 접근에서 완전히 달랐던 사람들. 영어권에서 바슐라르의 논의가 어느 정도 수용이 되었었다면, 90년대의 "과학전쟁"(과학에 비판적 입장인 진영에서 과학의 객관성, 합리성 주장을 공격했던)은 어쩌면 일어나지 않았거나 다르게 진행되었을지 모른다. 



<미학 이론>에서 아도르노는 미적(예술적) 객관성을 옹호한다. 미적 합리성도 옹호한다. 

이 주제에서 아도르노의 입장을 재구성하는 건 위의 바슐라르 입장을 재구성하는 것보다는 덜 어려울 거 같기도 하고 실제로 적지 않게 재구성하는 논의들이 있었다. 그래도 이미 있는 재구성들을 가져다 쓰는 거 말고 연구자에게 각자 알아서 새로 해보라고 하면, 이 역시 극히 어려울..... 


바슐라르 책을 보면, 인류가 "과학을 했다" 이것만으로도 그에게 인류애는 마르지 않는 샘물. 바슐라르에겐 정말 그 말의 의미에 충실하게 "인류애"라 불러도 될 무엇이 있다 쪽이 되기도 한다. 인간에 대한 경탄. 인간이 인간으로서 이루어온 것들에 대한 찬탄. 인간성이란 가치의 집적, 가치의 실행. 


바슐라르의 저런 면모와는 아주 다르긴 한데, 아도르노에게도 인류의 역사, 인류의 선택에 대한 신뢰 같은 것 있다. "새총에서 시작하여 원자탄으로. 이것이 보편사의 방향이다" 같은 말을 하기도 하지만 "진보"에 대한 믿음을 일관되게 표명했다. 그리고 그의 이런 면모는 인류가 생산한 예술에 대한 믿음, 찬탄과 함께 하는 것. 

 


객관성. 이것 아주 아주 느무느무 중요한 이상이 아닌가. 어떤 공격을 받았든 이것이 허물어지지 않았다면, 그 덕분에 허물어지지 않았을 다른 중요한 것들이 있지 않나? 



박근혜 시절 힘들었던 건 그게 꼭집어 "객관성"은 아니어도 사방에서 이것저것 다 공격받고 허물어지는 중인 듯한 그 느낌. 국정교과서, 이런 것도 있었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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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4 12:09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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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04-14 13:50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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