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Passion of Anna. 


Bergman 영화 본 지 아주 오래됐는데, 그 영화들 보던 시절 생각하니 

보고 싶어지기도 하고 영화 마라톤 시청하던 그 시절 다시 살아보고 싶어지기도 한다. 

공부하는 방이 있는데 그 방은 영화보는 방과 연결되고, 그래서 영화보는 방에 Bergman 영화를 틀어두고 공부하는 방으로 와서 빛과 소리로 그 영화를 감지하면서 공부하면 공부 잘 될. 조금만 움직이면 화면이 보이므로 공부하다가 영화보다가. (.....) 얼른 그렇게 살고 싶어진다. 


그의 영화엔 "속박"을 알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한다. 

아도르노가 무지무지 자주 쓰는 말. spell. "속박". "주문". 등등.  

"속박"과 연결되는 유형의 불행을 알았던 사람들에게 특히 그래서 강하게 호소력 갖지 않나 한다. 

타르코프스키는 그 유형 불행을 알았던 거 같지는 않고 그래서 타르코프스키가 Bergman을 칭송할 땐 거의 오직 시네아스트로서?  


내가 뭐에 씌었었지. (.........) 이걸 체험한 다음 그의 영화를 보면 

안 볼 수가 없는데 너무 고통스러워 볼 수도 없으니 취한 다음 보기 시작해 계속 취해 있으면서 보아야 하는........... 


그랬었. 



아도르노를 처음 읽던 시절엔 조금만 (세 문단?) 읽어도 허기로 쓰러질 거 같았으나 

지금은 아니게 되었다. 지금도 완전 집중하지 않으면 읽을 수 없긴 하지만 전처럼 쉼없이 혹사되는 느낌은 아니다. 

Bergman 영화도, 이제는 속박과 고통을 내려다 보고 올려다 보면서, 그 안으로 들어가지는 않으면서, 물만 마시면서 볼 수 있을 것인데 


그러나 지금 집엔 TV도 없. pc와 아이패드 미니. 이걸로 봐야 하다니, 정 봐야겠다면. 

그렇다. 삶을 바꾸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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