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에 프랑스 혁명기 정치 연설의 수사학에 대한 글이 있다. 

일어서서 연설했고, 프랑스를 넘어 세계를 향해, 뿐만 아니라 미래 세대를 향해 말했다던 그들. 

그래서 조롱도 많이 받는 그들. 그들의 연설. 


20세기 초까지만 해도 "그들이 남긴 말은 프랑스 정신의 영예로운 페이지를 구성한다" 식으로 이들 연설에 열광하는 사학자가 없었던 게 아니라는 지적을 하고 그러나 그 시절은 지난지 이미 오래인데 그게 왜냐, 왜 더는 이 연설들에 아무도 감탄하고 싶어하지 않게 되었는가, 그것은 역사학계에 일어난 어떤 변화의 반영인가, 방향 논의를 잠시 한 다음 그러나 이 저평가를 이제 재평가 해야 할 때라면서 접근하는 글. "문제는 끝나지 않았다, 우리는 다시 시작해야 한다."   


그래서 본격적으로 새로운 이해를 제시하는 거 같지는 않다. 그러기엔 글이 너무 짧기도 하다. 그리고 피터 게이 자신 입장이 확고하지 않다는 점도. 입장이 확고하지 않다보니 나오는 말장난 같은 주장도 있다. "혁명가들이 연설할 때 그들은 유토피아주의자일 수도 있었고 사기꾼일 수도 있었고 정치인일 수도 있었다. 유토피아주의자라면 불가능을 가능한 것으로 접근한다. 사기꾼이라면 불가능이 가능하다는 망상을 제조한다. 정치인은 불가능을 가능으로 전환한다." 이런 대목이 그렇다. 



그 동안 혁명기 정치 연설도 많이 읽었는데 

전부가 그런 건 물론 아니지만 어떤 연설은 지금 읽어도 가슴이 뜨거워지게 한달까. 음 암튼. 

............ 아 이랬었구나, 그랬구나요. "그 시절 동안 God was visible" 미슐레의 이 문장, 이런 문장이 하나도 ridiculous하지 않은 사정은 당신의 이 연설에도 있습니다.... 


불어 공부하고 불어 책 본격적으로 읽기 시작한 건 아주 잘한 일이다. 돈 없어도 상관없음. 불어 공부를 해야함. ;;; 

삼부회가 소집되었을 때 귀족들 섹션. 귀족들은 다수가 고도 비만자였다면서, "그래서 그들은 앉아 있다기보다는 널려(펼쳐져) 있었다" 같은 문장을 역사책에서 보게 되는 건 프랑스인이 저자일 때 가능성이 높은 일일 거 같다. 막 재밌던 건 아니지만 표현의 자유 실천의 현장으로 보고 고평가 해주고 싶던 대목이었다. 


폴 발레리가 출전이라고 하는데 "인간의 정신은, 그가 무엇을 원할 수 있나로 판단할 수 있다." 

이 말도 그렇다. 이 말도 혁명기 유토피아주의자들과 함께 더 잘 이해될 수 있을 것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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