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 몽크의 비트겐슈타인 전기를 보면 

그의 삶에서 1910년대 초반 몇 년의 엄청나게 중요한 기록이 

러셀이 오톨린(오톨린 모렐. 모렐 부인...)에게 쓴 무수한 편지들에 있다. 

비트겐슈타인과 러셀의 관계가 형성되는 이 시기에 마침 러셀은 오톨린과 연애했다. 

그리고 아주 많은 편지를 (어떤 날엔 세 통) 그녀에게 썼고 그 편지들 다수에 비트겐슈타인과 그 사이에 있은 일들, 비트겐슈타인에 대한 그의 생각들을 썼다. 


이 정도는 아니지만 역시 중요한 기록이 남겨졌는데 

그건 그가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친구였던 Pinsent. 핀센트. 그가 쓴 일기. 

비트겐슈타인이 케임브리지에 와서 약 1년만에 러셀의 제자이기보다는 동료가 (몽크는 러셀의 "스승(master)"이라고 하고, 그 제목으로 장 하나를 쓰기도 한다) 되기 때문에 그 점을 기억하기가 어려운데 


당시 비트겐슈타인은 학부생이었다. 

Pinsent도 학부생이었고 이 두 학부생은 약 2년 절친이었다. 

이 두 사람이 남긴 기록들이 거의 모든 페이지들에 인용된다. 러셀의 편지 - 핀센트의 일기 - 러셀의 편지 - 러셀의 편지 - 핀센트의 일기 - 러셀의 편지 - 핀센트의 일기 - 핀센트의 일기. (....) 하여튼 이런 식이다. 


두 사람 다, 정말 별 걸 다 기록했다. 


1913년 가을. 비트겐슈타인은 노르웨이의 오지로 가겠다고 작정하고 

러셀이 극구 만류했지만 떠나게 된다. 러셀은 자신이 어떻게 말렸으며 비트겐슈타인은 어떻게 고집했나 편지에 썼다. "그곳은 어두울 거라고 내가 말했어. 그러자 햇빛이 싫다고 하더군. 외로울 거라고 말했더니 똑똑한 사람들과 대화함은 정신의 매춘이었대." 핀센트도 일기에 기록했다. "이별은 슬펐다. 하지만 그는 내년 여름에 다시 영국에 올 것이다. 그리고 다시 노르웨이로 가겠지만. 내년 여름에 그를 다시 볼 수 있을 것이다. 그와의 우정은 혼돈이었다. 하지만 나는 그를 알았음에 감사한다." 


핀센트의 저 일기 내용을 인용하고 나서 레이 몽크가 쓰는 문장이 이것이다: "다음 해 여름에 1차 대전이 발발한다. 이것이 이 두 사람이 서로를 본 마지막이었다." 






바로 보이지는 않는 저 오두막. 비트겐슈타인이 노르웨이에서 머물렀던 집. 

............ 그것이 두 사람이 서로를 본 마지막이었다. 이런 문장. 나이들수록 와닿는 바 있을 것이다. 

한 달 사이에, 단 하루 사이에 어떤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지. 마지막일 줄 몰랐던 마지막들이 축적되는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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