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raming the Sign: Criticism and Its Institutions. 

바슐라르에 관한 짧은 글이 여기 실려 있다. 바슐라르 주제 글이 있다는 이유 하나로 아마존 중고 구입했다. 


찬탄 30, 불평(이자 잘 숨겨지지 않는 무시) 70. 이런 느낌 글이다. 

바슐라르가 프랑스에서는 이미 일찍부터 그리고 지금까지 사유의 대가로 인정되고 널리 읽힘. 

영미권에서는 아닌데 아닐만하고 아마 바슐라르가 읽히지 않는 영미권 정신이 더..... (건전함...) 

바슐라르 저술을 실제로 읽어보면 깜놀함. 어떻게 한 사람이 아주 다른 두 영역에서 둘 다 높은 수준으로 

성취함? 그게 어떻게 한 생에 가능함? 나는 알 수 없음. 그의 과학철학 책들을 한 번 읽어보기 바람. 왜 

그가 프랑스에서 대가로 인정되는지 너도 알 것임. 그런데 그의 시학서들은 참으로 읽기에 힘이 드는데 

그 특유의 고풍스런 문체 때문임. 지금 누구도 그런 문체로 쓰지 않는다. (.........) 


대강 저런 내용 산만한 찬탄 + 불평을 하는 글이다. 


그건 아닙니다, 컬러씨. 컬러님.

몇 군데 부당하다, 틀렸다 같은 표시를 하기도 했다. 


극복 내지 탈출해야 하는 현실이 있어서 매일 강하게 압박 받으면서 

그러나 진척은 한없이 더딘 (인문학에서, 날림이 아닌 한에서, 빨리 많이 쓴다는 건 불가능 아닌가. 아닌가?) 

글쓰기 하고 있는데, 컬러의 찬탄과 불평에 갑자기 조금 더 우호적으로 공감하게 된다. 


정말 어떻게 이게 가능했을까, 바슐라르에게. 

정말 나는, 그래도 나도 공부를 매일 하느라 하는 편인데, 그가 하는 것의 발치도 따라가지 못하는가.  


어떻게 이런 최상의 사유, 그는 할 수 있었던 걸까. 

왜 그게 내게, 담겨지지 않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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