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린버그 교수는 

거의 모든 강좌를 역사학 강좌처럼 짠다. 

thinking like a historian. 이게 본능이 된 것 같은 분. 

요즘 듣는 건 How to listen to and understand great music, 제목은 이런 것이라 

음악"사"로 접근하는 게 가장 좋은 접근일 거 같지는 않은 강의인데, 이것도 완전히 음악사 과목으로 만들었다. 


낭만주의와 러시아 민족주의를 지나 

모더니즘으로 진입했는데, 특히 이 시기, 19세기 후반(그 중에서도 1870년대 이후?)에서 20세기의 처음 두 연대 정도 동안에 음악에서 일어난 일에 대해, 교수가 늘 격하게 열정적이긴 했지만 특히 더 열정적이었다. 20세기의 난해한 음악, 보통 감상자들이 듣기 꺼리는 음악을 옹호하다가 이런 말을 한다. "세상에서 좋은 것 전부는 아니라도 거의 다가 획득되는 취향(acquired tastes)이다. 바닐라보다 초콜렛이 맛있어지고 세븐업이 아니라 모모 고급 몰트 위스키 맛을 알게 되고 포드보다 페라리가 왜 좋은가 알게 되는 것. 세상에 획득되는 취향이라는 게 없다면, 10세 아이가 좋아하는 것과 50세 중년이 좋아하는 것 사이에 아무 차이가 없을 것이다. 나이 든다는 건 오직 늙어감일 뿐일 것이다. 그런 세계는 상상하면 끔찍한 세계다...." 


포드보다 페라리. 이 예는 좀. 

바닐라보다 초콜렛. 이 예도 좀. 

......... 그렇긴 한데 "획득되는 취향"을 격하게 옹호함에는 같은 편 되지 않을 수 없다. 




쥐꼬리만큼 음악사 강좌 듣고 나서 이런 감상이 생겨도 되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음악에서 급진주의는 다른 예술에서 급진주의보다 진정 더, 급진적으로 급진주의일 거 같다.

무엇이 완전히 끝나는 일. 이런 게 음악에서는 더 현실적일 거 같다. 무엇이 완전히 끝나고 새로운 시기가 시작하기. 문학이라면 무엇도 완전히 끝나지는 않는 (그럴 수가 없는) 듯한 반면.  


음악학자이면서 동시에 철학자고 문학 연구자라면 

음악학에서 가져올 수 있는 흥미로운 통찰, 도움이 많겠다는 생각도 드는데 

아도르노의 경우에 그의 음악학과 철학이 분리되는 경향이 있는 걸 보면 

혹시 많다고 해도 실제 투입은 또 별개의 일일 거 같기도 하고, 아니면 내가 몰라 보았을 뿐이지 

아도르노의 철학 저술 어디에든 음악학자 아도르노가 있는 걸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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