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 호평하는 리뷰 다른 데서 접하고 나서 책은 구했고 

아주 조금 읽기도 했다. 강하게 끌리지는 않았고 당장 쓸 이유가 없겠어서 더 읽는 건 무기한 미뤄둔 책. 

better than food 채널에서 호평 듣고 나서 다시 관심이 자극된다. 여기서 유크나비치는 "인간이 어디까지 견딜 수 있나"의 사례같기도 하다고 한다. 아버지가 성폭력 가해자였다. 이것만으로도 사실. 


채널 운영자가 여러 번 그 점 강조하기도 한다. 

그런 일이 일어난다는 걸 믿기 힘든 (내가 순진한 사람이지도 않음에도) 많은 일들이 

그녀에게 일어났다. 그녀는 거침없이 쓴다. (....) 그녀가 독자의 존경을 자극한다면, 그건 

자기 고통을 과시하지 않는다는 데에도 있다. 그녀는 세상엔 그보다 더 한 일들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는 걸 

안다. 


평범한 차원으로 축소해서 말하면 

그녀의 회고록은 "stupid and cruel"한 사람들에게 당한 괴롭힘의 기록이다. 

사실 이건 만인의 경험이다. 우리 모두 "stupid and cruel"한 사람들에게 괴롭힘 당하며 살아왔고 살고 있다. 

이게 만인의 경험이므로 "stupid and cruel"한 사람들이 가하는 고통이 책 전체의 주제가 될 수 없다고 생각한다는

건 아니다. 그 반대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 경험을 책으로 써야 한다. 그러나 리디아 유크나비치의 특별함이 

있는데 그녀는 그녀를 괴롭힌 이들만이 아니라 그녀 자신도 "stupid and cruel"하다는 걸 그래서 그녀 자신이 타인들에게 가했을 고통도 알고 있다. 나는 특히 이 점에서 그녀에게 경의를 표한다. 그녀는 자신에게 어쩌면 더 냉정하다. 그녀는 자신을 분명히 본다. 


특히 밑줄 긋게 되던 건 위와 같은 대목이었다. 


남들이 내게 가한 고통. 

내가 남들에게 가한 고통. 

이 둘 다를 냉정하고 분명히 보기 위한 선결 조건이 있을 것이다. 

그게 있고 나서, 이 둘 다를 냉정하고 분명히 보는 건 (.....) 어쩌면 내가 얼마나 훼손된 인간이고 훼손된 삶을 살아왔나를 보는 거라서 절망 속에 빠지게 될 수도 있겠지만 (Mark Fisher, 그가 40대에 자살한 이유가 이것이었다. 이 세계에서 오직 훼손된 삶만이 가능하다.....) 


그렇지 않고 

무려 "구원"일 수도 있을 거 같다. 나는 후자 쪽에 걸겠다... 쪽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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