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캘리포니아로 터전을 옮기고 행복했던 사람으로 

...... 스트라빈스키가 있다. 이골, 이고르 스트라빈스키. 

"그리고 그는 비벌리 힐즈에 저택을 구입했다" 이런 구절 강의에서 들었던 것 같은데 

위 이미지가 그의 LA 집이라고 하고 '저택'은 아닌 듯하다. 보이는 전부가 그의 집이라 해도. 


쇼스타코비치는 1949년 뉴욕에서 열린 세계 평화 회의에 

소련 대표단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하기도 했다. 물론 모두가 강요된 것이었고 

그는 회의 기간 동안 서방의 부르주아 예술을 규탄하는 연설을 (공산당이 작성한 연설문....) 해야 했고 

그 연설에서 격하게 비난 받은 서구 데카당트 예술가 중엔 미국에 와 있는 스트라빈스키가 있었고 

스트라빈스키에게 미국의 한 언론이 "쇼스타코비치의 주장에 반박할 의향은 없는가?" 물었을 때 

스트라빈스키는 "지금 그에게 그의 생각을 말할 자유가 없다. 어떻게 토론이 가능한가?" 반문하고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런 얘기 들을 때 

그의 증언을 기록하고 미국으로 와서 컬럼비아 대학 교수가 되었던 솔로몬 볼코프의 얘기 들을 때에도

쇼스타코비치도 서구로 망명, 도피해서 자유롭게 창작하고 싶지는 않았을까? 극히 양가적으로라도? 


같은 의문 들었었다. 

그도 스트라빈스키처럼, 솔로몬 볼코프처럼 살고 싶지 않았을까? 




 

들은 강의에 따르면 

그에게 전혀 그런 생각 없었다. 그에게 유럽이나 미국에 대한 환상이 없었다. 

그리고 그는 러시아를 진정 사랑했다. 러시아의 정치, 정치 권력을 깊이 혐오, 증오했지만 

러시아의 문화에 깊이 밀착, 애착했다. 


저 러시아 청년 피아니스트 연주 동영상 보면서 

그게 어떤 건지 알 거 같아지기도 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뮤직 하우스라는데 

저 뒤에 세 분 나이 지긋하신 여자분들이 앉아 계시고 이 분들 내내 무표정 유지한다. 꾸어다 놓은 보리자루. 


댓글 창 보다가 웃겨 죽는 줄 (과장...) 알았는데 

이런 댓글이었다: 


The ladies in the back are like ''Meh, Liszt played it better'' lol


정말 그렇다. 

리스트가 더 잘 쳤지. 암. 


연주 끝나고 나서 박수치는 관객들이 보여지는데 

"지옥에서 보낸" 관객들 같음. 청년의 연주를 비웃거나 그 자리에 자신이 있어야 했음을 증오하는 거 같은 표정인 사람들이 있다. 거의 미소년에 근접하는 청년 피아니스트의 역대 최악 난이도에 속한다는 곡 연주 후, 내가 박수는 치지만 웃지 않는다.... 는 관객들. 남캘리포니아적 삶과 정반대일 듯한 상트페테르부르크적 삶. 쇼스타코비치는 그것을(그것도) 사랑했을 거 같다는 쪽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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