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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비 - 기억을 지우는 자
김다인 지음 / 스윙테일 / 2021년 7월
평점 :
누구나 가지고 있는 아픈 상처. 그로 인해 생겨나는 트라우마. '나비'는 한 사람의 내면세계에 들어가 트라우마를 사냥하는 사람이다. 이 업계에서 최고의 실력을 자랑하는 고유진은, 성폭행 피해자의 트라우마를 사냥하고 돌아가던 길에 정일구 형사로부터 흥미롭지만 섬뜩한 일을 제안받는다. 지옥에서 탈출했다는 소녀의 내면세계에 들어가 실제로 지옥이 있는 지 알려달라는 것. 지옥의 존재여부에 따라 신도 수와 교회 수가 증가할 것이라 생각한 교단의 허영심 아래 계획된 일이었으나, 그 소녀의 내면에 들어갔던 다섯 명의 나비가 모두 돌아오지 못했다는 말을 듣고 제안을 거절한다. 하지만 그날 밤 유진에게 일어난, 말로는 설명할 수 없는 괴이한 일. 결국 그녀는 제안을 수락하고 지옥에서 돌아왔다는 소녀, 최서연과 마주하게 된다.
하천에서 낚시하던 사람이 시체 같은 것을 발견하는 장면으로 시작하는 이야기. 당연히 어떤 사건이 벌어졌을 것이고, 그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유진이 개입했을 것이라는 짐작과는 다른 방향으로 작품이 전개된다. 금방이라도 옆에서 들려올 것만 같은 소름끼치는 웃음소리. 정체 모를 단어들을 남발하면서 웃고 있는 소녀의 묘사가 너무나 괴이해서 등골에 오싹 소름이 돋았다. 게다가 지옥이라니. 지옥에서 빠져나왔다는 말이 허무맹랑하게 들리면서도 이 이야기의 끝이 어떻게 완성될 지 몰라 궁금했다. 과연 소녀는 정말 지옥에서 빠져나온 걸까. 아니면 '지옥'이라는 말에는 다른 의미가 포함되어 있는 것일까.
설정과 반전은 괜찮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유진이 서연의 내면에 침투하는 장면부터 이상하게 집중이 잘 되지 않았다. 서연의 마음 속에 자리한 지옥을 묘사한 장면부터, 악마와 대화하는 장면까지 내가 기대한 방향과는 달라서였을까. 내가 상상한 것은 서연의 마음 속에 자리한 트라우마를 해치우고 현실세계로 돌아와 그 곳에 존재하는 '진짜 범죄'를 속도감있게 해결하는 것이었는데, 지옥이 등장하는 장면부터 어쩐지 늘어진다는 기분이 들었다. 악마와의 대화도 핵심을 찌르는 것이 아니라 주변을 도는 것처럼 애매모호한 느낌. '제4회 추미스 (추리, 미스터리, 스릴러) 소설 공모전'에서 우수상을 수상한만큼 재미있게 읽은 독자들도 충분히 계실 것이다. 추미스를 좋아하는 독자라고 모든 추미스를 다 좋아하는 것은 아니니까.
기대가 컸던만큼 아쉬움이 남으면서도 여운 또한 강하다. 유진의 사연만큼은 마음에 남아 기억될 것 같은 작품. 현실에도 '나비'가 존재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내면의 아픔을 조금은 더 잘 치료하면서 살아가게 될까.
** 책과 콩나무를 통해 <스윙테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