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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덕의 시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월
평점 :
영상저널리스트인 후시미 유다이는 한 때 그 재능을 인정받아 열정적으로 일했었지만, 어떤 일을 계기로 지금은 잠시 휴식기를 가지고 있는 중이다. 아내의 권유로 고향인 나루카와시에 정착했지만 이곳은 일명 -외지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에게 각박한 마을. 하지만 자신은 일을 핑계로 가정과 아들인 도모키의 교육을 아내에게 거의 전담시킨 터라 어쩔 수 없다고 해도 좋은 심정으로 지내고 있다. 그런 마을에서 아내가 예전부터 존경해왔던 도예가 난보 선생이 사망했다. 사건은 자살로 보여지는 듯 했지만 마시던 술병에 농약이 들어 있었고, 현장에 '도덕 시간을 시작합니다. 죽인 사람은 누구?'라는 낙서가 남겨져 있어 타살의 정황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 아오야기가(家)의 장남이었던 난보 선생은 집안과 거의 연을 끊은 채 살아오고 있었고, 망가진 놀이기구를 만드는 기이한 행동으로 마을 사람들에게도 적대시되던 인물.
그런 난보 선생의 사체가 발견된 곳에 쓰인 낙서가 심상치 않게 다뤄지고 있는 까닭은, 마을에 이런저런 경범죄가 발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처음에는 사소한 일로 시작되었지만, 어느 날, 현 도로의 교통사고가 빈발하는 급커브 출구 쪽에 토끼가 든 골판지 상자가 놓여 있었고, 어떤 운전자가 상자를 발견하기는 했지만 브레이크를 밟는 것이 늦어 그만 상자를 짓밟아버렸던 것이다. 끔찍하게 변해버린 토끼의 모습. 상자에는 빨간색 크레파스로 '생물 시간을 시작합니다'라는 글씨가 적혀 있었다. 게다가 유치원에 다니는 여자아이가 마을 공원에 있는 철봉에 매달린 채 발견되었는데, 철봉에는 공업용 접착제가 발려져 있어 아이는 손을 떼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결국 손바닥은 이미 너덜너덜해지고 어깨가 탈구되기 일보 직전이었다. 그리고 아이의 등 뒤에 적힌 '체육 시간을 시작합니다'라는 글자. 결국 마을 사람들은 자치회를 구성해 밤에 동네를 순찰하기로 한다.
불온한 분위기가 감지되는 가운데 후시미에게 작업 의뢰가 들어온다. 13년 전인 2001년, 나루카와 제2초등학교 강당에서 마사키 쇼타로라는 남자가 무카이 하루토라는 옛 제자에게 칼에 찔려 목숨을 잃는 사건이 벌어졌다. 무카이는 현장에서 제압당했고, 바로 묵비권을 행사했으며, 사건 당시부터 지금까지도 사건의 배경과 동기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입을 열지 않았다. 정신 감정을 거부한 그가, 판결을 선고받기 직전 남긴 것은 '이것은 도덕 문제입니다'라는 한 마디. 무카이는 15년 형을 선고받았고, 그가 출소할 날도 이제 머지 않았다. 그런 그의 이야기를 다큐멘터리로 만들고 싶다는 오치 후유나. 처음에는 맡지 않으려 했던 작업이지만 결국 가정에 대한 책임감과 일에 대한 미련으로 촬영 팀에 합류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오치가 무언가 숨기고 있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는 후시미. 사건과 관계된 사람들을 인터뷰하면서 과거와 현재의 기묘한 연결고리에 점점 빠져든다. 게다가 그의 목을 옥죄어 오는 한 가지. 어쩌면 난보 선생의 죽음에 아들 도모키가 연관되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
2015년 제61회 에도가와 란포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한 작가 오승호의 [도덕의 시간]이 드디어 출간되었다. 국내 출간 전부터 주목을 받았던 이 작품은, 수상 당시 일본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추리 문학계 신인상을 재일 교포가 수상했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한일 양국에서 큰 화제를 일으켰다. 독자 내면에 자리잡고 있을 '도덕'의 기준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하면서, 그 도덕의 잣대가 절대적인 것이 될 수 없음을 '어쩔 수 없이' 깨닫게 만든다. 배가 고파서 개를 잡아먹었다는 소년 앞에서 '그것은 도덕적으로 옳지 않다'고 누가 감히 말할 수 있을까. 열악하다는 말로도 부족한, 살아있으나 죽음보다 못한 삶을 살아온 사람들에게 '네가 한 일은, 앞으로 하려는 일은 해서는 안 된다'고 누가 감히 질책할 수 있으랴. 책을 읽는 내내 내 자신과 가치관, 신념이 철저히 해부당하고 분해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겉으로는 멀쩡해 보인다. 누구에게나 친절하고 사랑받는 사람으로 보인다. 인격적으로 아무 문제가 없을 것처럼도 보인다. 실제로 그랬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떤 사람들은 그런 가면을 쓴 채 뒤에서는 평범한 사람들이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을 저지른다. 살아남기 위해 행했던 일들을,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자신의 기준으로 판단하고 잘라낸다. 어디서도 이해받지 못한다는 기분. 그렇다면 오히려 이런 내가 세상을 비웃어주겠다는 결의. 무카이가 말한 '도덕의 문제'라는 것은 그런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나에게 도덕을 논할 사람이 과연 있겠는가. 있다면 어디 덤벼보아라, 벼르는 마음.
그래도 때리면 안 돼. 안 되는 건 안 되는 거야. 그렇게 정하지 않으면 이 사회는 돌아가지 않아.
후시미가 아들에게 가르쳐주고 싶은, 이 사회를 돌아가게 하는 규칙이, 가슴 시리도록 공허하게 울린다.
읽어내려갈수록 끝이 없는 심연으로 빨려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스스로 생각해도 지금까지 참 별 일 없이 살아왔다고 생각하는 내 인생이, 작품 속 어떤 등장인물들 앞에서는 어쩐지 드러내기 부끄러워지는 기분마저 들었다고 한다면, 이 작품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될 수 있을까. 과연 정의는, 도덕은, 법률은 무엇일까.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작품. 멋지다! 그의 다른 작품들도 꼭 국내에서 만나볼 수 있게 되기를! 기다리다 원서부터 챙겨볼 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