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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즈버그의 차별 정의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지음, 이나경 옮김, 코리 브렛슈나이더 해설 / 블랙피쉬 / 2021년 8월
평점 :

전(前) 미국 연방 대법원 대법관, 루스 베이더 긴즈버그. 대법원정과 여덟 명의 대법관으로 구성된 대법원에 여성 대법관이 충분해질 때가 언제일 것 같으냐는 질문에 '아홉 명일 때'라고 대답한 일화는 유명하다. 여성으로서는 두 번째 연방 대법원 대법관이었던 그녀가 유명한 이유는 그녀의 직함 때문만은 아니라, 그 누구보다 긴즈버그가 헌법이 보장하는 자유를 남녀에게 동등하게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기 때문이다. 흡사 영웅같은 그녀의 행보가, 그러나 늘 승리했던 것은 아니었다. 지더라도 감명 깊은 소수 의견을 남기는 것으로 유명한데, 심지어 '버웰 대 호비 로비 스토어스' 재판의 소수 의견은 인터넷으로 확산된 노래의 기초가 되었다고 한다. 무엇이 이토록 그녀에게 열광하게 만드는 것인가.
뉴욕 브루클린의 노동자 거주 지역에서 자라 대학교를 졸업한 뒤 사회복지부에서 근부하던 그녀는 근무 중 딸을 낳은 뒤 좌천된다. 이에 굴복할 수 없었던 긴즈버그는 하버드 로스쿨에 진학했고 남편 마틴과 함께 학업을 이어가지만 그 사이 마틴이 암 진단을 받았다. 그의 과제를 도와주고 자신의 강의를 들으면서 딸까지 키워야했던 긴즈버그. 여기까지만 읽었는데도 내 숨이 차오르는 느낌이다. 그녀는 어떤 생각으로 그 모든 일을 감당할 수 있었을까.
이후 컬럼비아 로스쿨로 옮겨 수석 졸업했지만, 직장을 구하는 데 꽤 애를 먹었던 것으로 보인다. 결국 헌법 담당 제럴드 건서 교수의 추천으로 재판연구원으로 일할 수 있게 되었고, 미국 전체에 여성 법학과 교수가 20명도 안 되던 당시 럿거스 로스쿨에서 강의를 하게 되었다. 남성 교수보다 낮은 연봉에 반발한 긴즈버그는 학교의 평등 입금 운동에 참여했다. 이것이 시초였을까. 그녀의 다음 행보는 <여권 법 리포터>의 고문으로 이어진다.
1970년대, 헌법 내 성차별은 흔했고 위헌으로 간주되지 않았던 시절부터 긴즈버그는 '여성에 대한 동등한 보호, 생식의 자유, 시민권'에 대해 이야기한다. 여기까지만 들으면, 대단하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 정도의 활동을 한 사람을 찾아내려면 못 찾아낼 것도 없겠다는 생각이 들 수도 있겠다. 그러나 [긴즈버그의 차별정의]에 실린 몇몇 사건, 특히 <크레이그 대 보런> 사건을 살펴보면 그녀의 냉철하고 날카로운 의견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남녀 간의 '본질적 차이'는 존중받을 요소지 어느 쪽이든 폄하당하거나 기회를 제한받을 요소가 아니다. 성별 분류는...과거처럼 여성의 법적, 사회적, 경제적 열등성을 만들어내거나 지속시키는 데 이용해서는 안 된다.
p 52
겉으로는 젊은 여성에게 나이가 같은 남성에게는 허용하지 않는 자유를 주는 것처럼 보이는 오클라호마주. 18세 여성은 3.2도 이하 맥주를 살 수 있으나 남성은 21세가 되어야 살 수 있도록 허용하는 법이 있었는데, 이 법이 여성에게 유리하다고 본 이들이 있었던 반면 긴즈버그는 '젊은 여성이 젊은 남성보다 성숙하다는 고정관념'이 저변에 깔려 있음을 꿰뚫어보았다. '고정관념이 아무리 여성에게 긍정적인 것'이라 해도 남녀를 다르게 대우하는 법은 '남녀가 인간으로서 잠재력을 온전히 실헌하는 데 장벽을 세운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녀는 '성차에 대한 사회의 기대라는 부담'에서 자유로울 권리도 주장한다. 이 사건을 다룬 글을 읽고 얼마나 놀랐는지. 내 안에 자리잡은 뿌리깊은 고정관념을 느낌과 동시에 긴즈버그의 통찰에 감탄을 금할 수 없었다.

긴즈버그가 법을 통해 여성해방운동에 앞장서는 모습을 보였지만, 비단 '여성'의 자유만 이야기한 것은 아니다. 인종, 젠더, 성적 지향 등과 상관없이 모든 시민이 법 아래 평등한 지위를 누리기를 원했고 자신의 소신에 따라 의견을 밝혔다. 법 안에서 온전한 권리와 자유를 누리지 못한다고 생각한 대상이, 모두 그녀가 옹호한 사람들인 것이다. 이렇게 훌륭한 법조인이 이제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공허함을 느낀다. 전문적인 용어가 사용된 데다 문장이 매끄러운 편은 아니었지만, 이처럼 그녀의 말과 글은 영원히 남아서 긴즈버그의 길을 따라가려는 사람들에게 등불이 되어줄 것이다.
** 네이버 북카페 '리뷰어스 클럽'을 통해 <블랙피쉬>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