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르케
매들린 밀러 지음, 이은선 옮김 / 이봄 / 202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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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리오스와 오케아노스의 님프 딸인 페르세의 첫번째 아이였지만 가장 사랑받지 못하는 키르케. 아버지처럼 능력이 출중하지도 어머니처럼 미모가 뛰어나지도 못한 그녀가 다른 형제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인간의 목소리를 지녔다는 것, 누구보다 인간들의 삶에 관심이 많았다는 것, 그리고 여느 신들같지 않게 가슴에 사랑이 넘쳤다는 것이었다. 그것은 아프로디테의 에로스적 사랑이 아닌, 살아있는 생명들에 대한 애정, 혹은 연민. 형제들처럼 오만하거나 잔인하지 못하다는 것, 그것이 키르케의 약점이 되어 그녀를 공격한다. 가족들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점도 비웃음을 샀다. 하지만 키르케가 인간들에게 불을 가져다 준 죄로 형벌을 당하는 프로메테우스에게 넥타르를 가져다 준 순간부터 이미 그녀의 운명은 정해져 있던 것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녀가 지니고 있는 마음과 자질 그 모든 것이 결국 그녀에게 그런 선택을 하게 한 것 같은 기분.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현실과 허구의 세계를 넘나들며 덜떨어진 사내들은 늘상 등장하는 모양이다. 하필 키르케가 빠진 인간 남자 글라우코스도 한심하고 어리석은 남자들의 영역에 속했는데, 읽다가 왜 이런 남자에게 그런 은혜를 베풀어준 것이냐며 하도 답답해서 가슴을 쾅쾅 칠 지경이었다. 단 하나 의지했던 동생 아이에테스마저 자신을 버리고 떠나자 키르케는 우연히 만난 글라우코스에게 마음을 빼앗긴다. 어쩌면 그를 신으로 만들어 평생 함께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헛된 기대를 품고, 키르케는 파르마콘을 이용해 글라우코스를 신으로 만든다. 예상 가능하게도 글라우코스는 자신이 대단한 신이라도 되는 양 단번에 키르케를 차버리고, 또 다른 님프인 스킬라와 결혼할 생각으로 들떠 있다. 키르케는 질투심에 사로잡혀 스킬라를 흉악한 괴물로 만들지만 그럼에도 자신의 마음이 글라우코스에게 가닿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고 헬리오스 앞에서 스스로의 죄를 고백한다.

아버지 생각이 틀렸어요.

p84

비록 엄청난 고통을 당했지만, 이 한 마디를 아버지 앞에서 내뱉은 순간부터 키르케의 운명은 다른 방향으로 흐르기 시작했다. 파르마콘의 효능을 무시하고 키르케에게 벌을 준 헬리오스 앞에 아이에테스가 나타나, 자신을 비롯한 형제들 안에 흐르는 마녀의 피와 그와 관련한 마법에 대해 털어놓는다. 천상의 제일 높은 자리를 차지한 제우스와 티탄 신들의 동맹을 무너뜨리지 않기 위해 키르케는 본보기로 무인도에 유배를 당하고, 마침내 그 무인도, 아이아이에에서 본래의 자신의 모습을 되찾아간다. 여동생 파시파에가 낳은 미노타우로스, 미노타우로스를 가둔 라비린토스를 만든 다이달로스와 그 아들 이카로스, 아이에테스의 딸 메데이아와 교활한 오디세우스 등 여러 인물들과 맞닥뜨리며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채우는 키르케. 사랑하는 한 존재를 지키기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신과 대적하는 그녀는 이미 예전의 그녀가 아니었다.

 

[아킬레우스의 노래]를 읽은 뒤부터 매들린 밀러의 후속작이 나오기를 정말 손꼽아 기다렸다. 그런 작가가 선택한 인물은 키르케. 영웅으로 그려지는 오디세우스를 유혹하는 마녀로 스치듯 등장하는 키르케의 어떤 점에 그토록 매력을 느낀 것일까. 서구 문학에서 최초로 등장한 마녀, 남성들이 두려워하는 능력을 갖춘 여성의 상징. 그렇다면 충분히 납득 가능하다. 어디선가 '그리스 로마 신화' 자체가 가부장적 사회를 대표한다는 문구를 읽은 적이 있었다. 남신들은 끊임없이 바람을 피우고 엄청난 능력을 휘두르지만, 여신은 미모에 집착하며 사랑에 매달리는 모습이 대부분이라는 것. 급기야 여신 중의 여신인 헤라마저도 남편 제우스의 바람을 못견뎌 그의 상대가 된 여러 님프들과 인간들을 괴롭히지 않았던가. 그런 신들의 세계 속에서 키르케의 여동생 파시파에가 선택한 운명과 피를 토하듯 내뱉는 그녀의 고백들에 가늠할 수 없는 안타까움을 느꼈다.

 

하지만 키르케는 파시파에와는 다른 길을 택한다. 다른 존재들에 상처주지 않고, 잔인해지지 않고 자신이 있을 곳을 끊임없이 개척해나가는 의지의 인물이다. 비록 한때는 사랑하고 존경했던 아버지에게마저 변변치 못한 자식 취급을 받는 데다 상처투성이의 그녀지만,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가슴을 펴고 맞서싸우는 키르케의 모습은 전사, 바로 그 자체였다. 그런 그녀의 최종 선택을 그린 결말 부분에서 전율을 느꼈는데, 그것은 마치 영화 <아바타>의 마지막 장면을 마주했을 때 느낀 그런 감정과 비슷하다고 할까.

 

개인적으로 [아킬레우스의 노래]에 비해 문장 자체의 매력도는 다소 떨어진다고 느껴진다. [아킬레우스의 노래]에서 느꼈던 문장의 여운, 나조차도 내 감정을 어쩔 수 없어서 절절매게 만들었던 그 기분을 [키르케]에서는 맛볼 수 없었던 것 같다. 여운보다, 설명에 중점을 둔 작품이라는 생각. 그럼에도 같은 여성으로서 '키르케'라는 인물이 갖는 의미는 상당히 의미있게 다가온다. 자신을 옭아맨 모든 것을 벗어던지고, 오로지 '키르케'로 우뚝 선 그녀가 헬리오스에게 던지는 일갈이, 그래서 더욱 통쾌하다.

저한테 더 좋은 생각이 있는데요. 그냥 제 마음대로 살 테니까 앞으로 자식을 꼽을 때 저는 빼주세요.

p4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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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과서가 쉬워지는 주말여행 - 2020-2021 최신개정판 교과서 여행 시리즈
김수진.박은하 지음 / 길벗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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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책을 받아보기 전까지만 해도 그저 그런 여행책일 줄 알았다. 그럼에도 이 책을 읽고 싶다고 손을 들게 된 이유는 '주말여행'이라는 단어 때문이었는데, 아마 '교과서가 쉬워지는'에 주목한 독자에 비하면 드문 경우가 아닐까 싶다. 아직 아이들이 어려서 교과서고 뭐고 생각할 겨를 없이, 주말에 간단히 나들이갈 수 있는 장소에 대해 정보를 얻을 수 있다면 그걸로 만족! 이라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책을 턱 받고보니 감탄사가 절로 나온다. 해외여행 관련한 책은 몇 권 가지고 있지만 국내여행 책자는 처음이라 그런지 감개무량할 뿐더러, 페이지마다 꽉 채워진 정보들과 정성에 깜짝 놀랐다고 할까.

'교과서가 쉬워지는' 이라는 문구를 괜히 넣은 게 아니었다. 일단 목차부터 남다르다. 교과서 영역별로 <두눈으로 보고 기억하는 사회 & 역사 영역>, <몸으로 체험하고 배우는 과학 & 자연 영역>, <책 잘 읽는 아이로 성장하는 언어 & 문학 영역>, <창의력을 키우는 오감 자극 예체능 영역>, <아이와 함께 온몸으로 노는 체험 학습지>. 여기에 감동스럽게도 <미취학 아동을 위한 신나는 놀이터> 영역까지 준비되어 있다. 서울에 살고 있는 지라 '서울상상나라' 부분부터 펼쳐 읽어보았다. 체험 위주의 전시와 교육 프로그램 등의 놀이, 층별 안내 등이 나와 있고 주변 여행지에 대한 정보까지 실려 있다. 주소를 보니 집에서 엄청 가까운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이런 정보들은 관심있게 찾아보지 않으면 발견하기 어렵다. 집에서 가까우면서 아이들과 즐길 수 있는 곳을 찾고 있었는데 안성맞춤!!

코로나로 인해 해외여행은 언감생심, 꿈도 꿀 수 없는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고 주말에 무작정 아이들을 데리고 떠나기도 어렵다.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자 숫자도 연일 체크해야 하고, 수위가 높아지면 아이가 있는 집들은 무조건 집콕이다. 어렵게 생기는 외출의 기회, 이왕이면 아이들과 즐겁게, 의미있게 지내고 싶지만 정보가 부족하다면 이 책을 참고해보면 어떨까. 각 지역에 대한 역사적, 시대적 설명도 제법 자세히 쓰여 있고 추천 장소와 주변 여행지에 대한 정보까지 실려 있어 꽤 도움이 될 것 같다. 교과서 영역별로 되어 있다는 점이 학부모들에게는 매력 포인트겠지만 이제 국내로 여행의 눈을 돌려야 하는 이 때, 유용한 책이 될 것 같다.

** 출판사 [길벗]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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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인범 대 살인귀 스토리콜렉터 88
하야사카 야부사카 지음, 현정수 옮김 / 북로드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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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결의 승자가 과연 누가 될 지..결말이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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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 화불기 2
좡좡 지음, 문현선 옮김 / 북로드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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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욱에 대한 애잔한 마음을 간직한 채 칠왕야의 거처에 머물게 된 불기. 그녀의 어머니 설비를 여전히 잊지 못하는 왕야에 대한 괴로움과 불기에 대한 분노로 그녀가 처음 왕부에 온 날 호된 맛을 보여주리라 결심한 감비이지만, 불기가 누구인가! 그녀의 몸 속에는 전생에서 오토바이 사고로 숨진 소불점의 영혼이 들어있었으니 그리 호락호락 당해주지만은 않는다. 칠왕야의 얼굴이 궁금해 살금살금 아버지의 방으로 숨어들어간 그 밤, 막부를 무너뜨리기 위해 왕야가 명월산장과 은밀히 계약을 맺는 모습을 발견한다. 아무렇지 않은 듯 해보려 했지만 여전히 진욱에 대한 마음을 가눌 수 없었던 불기는 다시 막부로 돌아가게 해달라고 애원하고, 막약비가 자객에 의해 독으로 화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급하게 그의 곁으로 돌아간다.

 

1권에서 밝혀졌듯이 막약비의 몸에는 전생에 불기와 인연을 맺었던 산 오빠의 영혼이 들어가 있고, 그 사실을 불기는 알고 막약비는 모르지만, 가슴 깊은 곳에서는 그에게 마음을 의탁하고 있었던 불기인지라 놀라 자빠진 것은 당연지사. 그런데 아들이 곧 죽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막부인은 오랜 세월 가슴에 담아온 분노와 증오를 참지 못해 불기에게 독을 쓰고, 불기는 자신만의 기술로 독을 이겨낸 막약비에게마저 외면당한 채 자신의 처소에 버려진다. 그 와중에 자신의 진짜 출생의 비밀을 알게 된 불기. 예전 연의객이 문 앞에 걸어두고 갔던 토끼 등에 그 단서를 적어둔 채 피를 토하며 정신을 잃고, 가련한 그녀의 모습을 보고 대경실색한 운랑 앞에 해백이 나타나 자신만이 그녀를 구할 수 있으니 계획에 동참해줄 것을 요청한다. 불기에게 약을 써서 잠시 죽은 것처럼 보이게 만들고, 무덤에 묻히면 데리고 가겠다고 이야기하는 해백에게 어쩔 수 없이 동의하는 운랑.

 

결국 불기는 해백에 의해 무사 구출(?)되어 강남 주부의 주 팔나으리 앞에 서게 되고, 자신이 누구인지, 어째서 화구 아저씨가 자신을 그리도 애지중지 키워준 것인지 모든 진실을 알게 된다. 불기가 죽은 것이라 생각하고 그제서야 터져나오는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피눈물을 토했던 진욱도 불기가 토끼 등에 적은 단서를 포착, 그녀가 살아있음을 깨닫고 기뻐한다. 그리고 왕야의 죽음. 이어지는 황제의 밀지. 새로이 등장한 동방석이라는 인물과 불기의 어깨에 걸려 있는 주씨 가문의 운명 등 불기의 스펙타클하고 가슴 뭉클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분명 불기의 마음은 진욱에게 있는데 이들이 오누이 사이라니, 그렇다면 막약비와 운명인 것인가!- 생각도 했으나, 그러기에는 2권에서의 막약비의 소행이 너무나 괘씸했다. 아무리 자신의 가문이 중요하고 어머니를 사랑한다고 해도, 불기가 죽어가는 것을 알면서도 그녀를 혼자 내버려두다니! 후에 불기가 소불점이라는 것을 알고 만약 그녀를 사랑하게 된다고 해도 이 때의 비겁함으로 절대 그녀를 얻지 못하겠구나, 싶었다. 아니나다를까! 1권에서의 활약이 무색하게 막약비의 분량이 심각하게 줄어들었다. 여기에는 불기의 정혼자로 내정된, 아주 오만방자하고 똘끼 있는 동방석이라는 인물이 등장한 것도 한몫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고소하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마지막에 불기가 자신의 정체를 밝히자 그 때까지 지켜온 이미지와 상관없이 무너져내리는 모습이 자업자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 동방석이 등장해서 이야기가 좀 지루해지고 산만해지는 경향도 없지 않아 있기는 하다.

 

진욱이야 당연히 멋있지만 나의 마음을 뒤흔든 또 하나의 인물은 운랑이었다. 예전 불기의 '개 어미'인 아황을 때려죽인 죄로 한 때 불기에게 동네 멍멍이만도 못한 취급을 당했지만, 어느새 그녀를 사랑하게 된 뒤로 그의 마음은 오직 한 사람, 불기에게로만 향한다. 심지어 해백이 준 약을 먹고 가사상태에 빠진 불기가 살아있다는 것을 눈치 챈 임단사의 입을 막기 위해 마음에도 없는 혼인을 약조하는 장면에서는 마음이 아팠다. 후에 불기가 사라진 후 계속 그녀를 찾아 헤매는 그 순정이라니! 진욱이 그런 아련함과 애절함을 좀 더 가지고 있었다면 남자주인공으로서 백전백승이었을텐데 아쉬운 부분이다.

 

1권에서의 흥미로운 전개와는 달리 2권은 다소 답답하기도 했지만 그래도 불기가 전생의 기억을 디딤돌 삼아 성장해가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큰 즐거움이었다. 드라마에서는 어떻게 표현이 되었을 지, 이 꽃미남들을 연기한 배우들은 어떻게 생겼을 지 확인 한 번 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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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완
오승호 지음, 이연승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0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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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리를 넘어 ART 라니! [도덕의 시간]에 이어 이번 작품도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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