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림랜드
신정순 지음 / 비채 / 2017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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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정순, 낯선 이름의 작가입니다. 게다가 아메리칸드림에 관련된 소설집이라니 살짝 읽기가 망설여졌어요. 뭔가 어두운 내용일 거라는 짐작에 한 번 읽기 시작하면 우울한 기분이 들지 않을까, 그런 예감이 들었거든요. 하지만 그건 저의 기우였다는 걸, 책을 읽기 시작하자마자 깨달았습니다. 한 번 펼쳐 읽기 시작하자 멈출 수가 없었거든요. 타국에서, 드림랜드라는 곳에서 각자의 꿈을 이루기 위해 삶을 이어가는 사람들의 이야기. 그 진솔하고 서정적인 이야기에 끌려들어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데 리뷰를 쓰기까지 꽤 시간이 걸렸습니다. 왜 그랬을까 곰곰 생각해보니, 저는 그들의 생활을 경험해본 적이 없잖아요. 쉽게 말할 수 없는 그 삶을 저같은 문 밖의 사람이 언급해도 되는 걸까, 망설였던 것 같습니다.

 

총 다섯 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요. 영주권을 위해 남편 대신 가정폭력의 혐의를 쓰고 감옥에 다녀온 여자, 남자에게 배신당하고 홀로 아이를 키우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났지만 지금 그 사람의 죽음 앞에 서 있는 여자, 늘 쌍둥이 오빠와 비교당하며 살아온 탓에 지긋지긋한 한국을 떠나고 싶었고 결국 결혼으로 미국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으며 엄마의 임종을 지키기 위해 잠시 귀국한 여자, 그 누구보다 출중했지만 문둥병이라는 굴레에 갇혀 몸을 숨겨야 했던, 이제는 세상 밖으로 나가고자 하는 남자, 배신한 아내의 죽음의 자리에 열달 만에 찾아간 남자. 이렇게 이야기하면 이 사람들의 삶이 무척 단순한 것처럼 여겨지지만 그건 저의 표현 부족 탓일 거에요. 작품 속 사람들의 인생은 결코 단순하지도 자로 잰 듯 정확하지도, 간단하지도 않거든요. 리뷰로는 나타낼 수 없는 정서가 작품 안에 녹아있다고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저에게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선택>, 위에서 늘 쌍둥이 오빠와 비교당하며 살아왔고, 엄마의 폭언과 차별 속에서 새로운 환경을 바랐던, 싫지만 한국을 떠나고 싶어 억지로 선택한 결혼은 아니었으나 어느 정도 결정에 영향은 끼쳤던, 그렇데 떠나 살다가 엄마의 임종을 듣고 귀국한 한 여자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여자, 혜진은 병약하던 오빠와 비교당하며 뱃속에서부터 오빠 앞길을 막았다는 폭언을 들으며 자라왔습니다. 아무리 공부를 열심히 해도, 엄마 생일에 정성껏 선물을 골라도 돌아오는 것은 기대와는 다른, 엄마의 무시와 언어 폭력이었죠. 성인이 되고 난 다음에도 마음 둘 곳 없던 그녀는 한 남자를 만납니다. 미국 시카고에서 세탁소를 운영한다는 진실되어 보이는 남자, 석훈. 그와 결혼한 혜진은 미국에서의 녹록치 않은 생활 속에서도 열심히 일했고 미국으로 갓 이민 온 사람들에게 영어를 가르치는 교사 일까지 맡았으며 한 아이의 엄마가 되었어요. 그런 와중에 들려온 엄마의 임종과 그녀 앞에 닥친 선택.

 

특별히 이 작품이 남았던 이유는 혜진의 선택도, 그녀의 오빠와 새언니의 만행도 모두 인상적이었지만 혜진의 남편 석훈 때문이었어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형과의 재산분쟁이 싫어 홀연히 미국으로 떠나고, 그 후 자신의 삶을 제대로 일궈온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혜진과의 첫만남의 자리에서도 허풍이나 가식없이 진실된 모습을 보이는 사람, 한 여자가 품에 안겨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사람. 허구의 세상이었지만 저도 또 하나의 혜진이 되어 석훈에게서 위로받는 듯한, 인간적인 애정을 느꼈습니다.

 

우연히 읽게 된 어떤 작품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명작이 되는 경험을 해보신 적 있을 거예요. 저에게는 이 작품이 그 중 하나에 속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작가적인 기교나 구성의 우수함, 문장의 수려함 등은 저는 잘 모르지만 석훈처럼 진솔한 삶의 이야기들, 그래서 읽는 사람에게 감동을 줄 수 있는 작품이라면 그걸로 충분하지 않을까요. ‘신정순이라는 작가의 이름을 앞으로도 기억하게 될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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