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인종의 요리책
카를로스 발마세다 지음, 김수진 옮김 / 비채 / 2011년 5월
평점 :
절판


느껴지십니까? 제목에서부터 뿜어져나오는 이 강렬한 포스가! 네, 저는 그 포스를 느끼고 한참이나 읽기를 망설이고, 또 읽다가 한숨을 푹푹 쉬며 내려놓고, 또 뭔가 이상해져오는 속을 달래기 위해 한참이나 쉬엄쉬엄 읽을 수밖에 없던 작품이었습니다. 식.인.종. 게다가 요.리.책. 뜨아! 예전에 [금단의 팬더]라는 일본소설을 읽은 적이 있어요. 그 책 표지에는 귀여운 팬더가 풀을 먹고 있었습니다. 먹고 있는 곳이 음식그릇 위이기는 했지만요. 귀여운 팬더이기는 하지만 온갖 것이 음식의 재료가 될 수 있는 마당에 징그럽기는 하지만 팬더라고 예외이겠더냐! 하는 마음으로 읽었답니다. 하지만 내용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끔찍하고 제 속을 불편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식인종의 요리책]은 정말 적나라하게도 식.인.종의 요리를 다루고 있죠.

 

이야기는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아기가 제 어미의 가슴을 물어뜯으면서 시작됩니다. 엄청난 고통과 충격으로 어미는 심장마비를 일으켜 그 자리에서 사망. 오래된 건물에 살고 있던 쥐들이 나타나 시신을 처리하는 가운데 아기는 해맑게(?) 살아남습니다. 아기의 이름은 세사르 롬브로소. 그리고 이야기는 시간을 거슬러 세사르 롬브로소의 가족사와 그가 태어난 건물, 정확히 말하자면 레스토랑 '알마센'에 얽힌 역사를 들려줍니다. 레스토랑의 창시자 카글리오스트로 형제가 지은 전설의 요리책 '남부 해안지역의 요리책'이 중심에 있었던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겠죠. 어찌보면 알마센과 롬브로소 가문의 기나긴 역사는 이 책과 함께 해 온 것이 될테니까요.

 

처음 예상했던대로 작품에서 잔혹성과 기괴함을 배제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책의 제목만 봐도 유추할 수 있듯, 세사르 롬브로소의 요리는 상상이상었습니다. 아기였을 때부터 풍기던, 피부를 스멀스멀 타고 올라오는 것 같은 어둠의 기운을 풍기던 세사르 롬브로소의 독특한 요리장면은 매우 적나라했거든요. 하지만 예상 외로 롬브로소 가문에 얽힌 역사와 사건들은 무척 흥미롭게 전개됩니다. 단순히 폭력과 살인만으로 포장된 것이 아니라 평범한 사람들이 어떻게 알마센에서 일하게 되었는지, 알마센을 이어받아온 롬브로소 가문의 다른 이들에게는 어떤 사연이 있었는지를 읽는 재미가 좋았다고 할까요. 한편으로는 안타까우면서도 또 한편으로는 평범한 음식을 요리할 때의 감칠맛도 이 책의 매력 중 하나라고 할 수 있겠습니다.

 

하지만 어쩐지 파트리크 쥐스킨트의 작품인 [향수]에서 모티브를 얻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이 두 작품은 닮아 있습니다. 세사르 롬브로소가 제 어미의 젖가슴을 물어뜯은 후 그 맛을 음미하며 그에게 미각에 관한 한 비범한 능력이 있다는 것을 나타내는 장면은, [향수]의 주인공 그루누이가 시장통 생선가게 쓰레기들 틈 사이에서 코를 벌름거리며 천재적인 능력을 타고났음을 암시하는 장면과 오버랩되죠. 마지막 장면 또한 그루누이의 모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루누이는 오직 자신만의 향수를 만들고자 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여성들을 살해했다면, 세사르 롬브로소는 자신에게 해를 가할 것 같은 사람들의 목숨을 취했다는 것일까요. 그들 모두에게 죄책감은 없었지만요.

 

지금까지 한 번도 '요리'라는 행위 안에 폭력성이 숨겨져 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는데 이 책을 읽고 있으면 요리하는 그 행위 자체가 엄청난 폭력성을 띠고 다가옵니다. 아름답고 친근한 장면인데 말이죠. 읽는 동안 속이 많이 좋지 않기는 했지만, 잔혹한 장면들 외에 롬브로소 가문의 가족사에 중점을 두고 읽으면 나름 이야기 속으로 빠져들만한 소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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