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만의 방 열린책들 세계문학 283
버지니아 울프 지음, 공경희 옮김, 정희진 분류와 해설 / 열린책들 / 2022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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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번 읽을수록 깊게 다가오는 작가의 목소리]

 

버지니아 울프의 [자기만의 방] 을 두 번 정도 읽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이 세 번째인 거예요. 첫 번째로 읽었을 때는 너무 어렸을 때라 '대체 이게 무슨 말이지?'했었다가 작년에 두 번째로 읽었을 때에야 쪼콤 이해 근처에 갔다고 할까요. 이번에 다시 읽을 때는 문장의 의미들이 조금은 더 명확하게 다가오더라고요. 제가 과연 정말로 완벽히 이해한 것인지는 차치하더라도 문장을 곱씹으며 읽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역시 고전은 한 번 읽었다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두 세 번은 읽어야 그 가치를 이해할 수 있다는 것을 다시 깨달은 시간이었어요.

 

버지니아 울프는 1928년 10월 케임브리지 대학교의 두 여성 칼리지인 뉴넘 칼리지와 거턴 칼리지에서 두 차례의 강연을 했습니다. 강연의 내용을 글의 형태로 옮긴 첫 번째 시도는 <여성과 소설>이라는 에세이였고, 이것을 여섯 장으로 구성해 보다 긴 [자기만의 방]을 탄생시킵니다. 남성이 지배하는 문학이라는 영역에서, 창작자로서의 여성은 왜 늘 주변화되고 있는가-라는 주제에, 울프는 문학을 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여성이든 남성이든 똑같지만 불리한 사회적 조건 때문에 여성은 늘 방해를 받는다고 이야기하죠. 여기에서 탄생한 그 유명한 문장이 '여성이 소설이나 시를 쓰려면 1년에 5백 파운드와 문을 잠글 수 있는 방 한 칸이 필요하다'입니다. [자기만의 방]은 이 문장을 증명해나가는 과정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경제적인 자유, 현실적으로 사람들과 분리될 수 있는 방. 이것은 숙모로부터 유산을 상속받은 그녀 자신의 감상이 고스란히 들어있는, 살아있는 문장이라고 할까요.

 

숙모가 세상을 떠났고, 내가 10실링권을 바꿀 때마다 그 악영향이 조금씩 벗겨지고 두려움과 비통이 없어집니다. 잔돈을 지갑에 넣으면서, 그 시절의 비통함을 기억하니 고정 수입이 가져오는 성격 변화가 놀랍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세상의 어떤 권력도 내 5백 파운드를 빼앗지 못합니다. 의식주가 영원히 내 것입니다. 따라서 노력과 노동만 중단되는 게 아니라 증오와 비통도 그치지요.

 

사실 저는 이 작품이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불리는 게 그렇게 좋지만은 않았어요. 왜 여성이 글을 쓰는 것을 논하는 작품이라면 전부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분류되어야 하는 것인가, 그것이야말로 성차별이 아닌가, 그래서 여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글을 논하는 작품으로 평가받길 바랐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읽어보니 페미니즘 문학이라고 분류될 수밖에 없는 이유를 깊이 공감했습니다. 여성과 남성은 글쓰기에 있어 세간으로부터의 시선, 평가 뿐만 아니라 그 시작부터 다를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작중에서 메리 비턴이라고 지칭되는 버지니아 울프는 여성이기 때문에 잔디밭조차 마음대로 걸어다닐 수 없습니다. 잔디밭은 연구원과 학자 들만 출입할 수 있고 그녀는 자갈길로만 다닐 수 있었죠. 도서관 출입은 어떻고요. 숙녀들은 칼리지 연구원과 동행하거나 소개장을 구비해야만 도서관에 입장할 수 있었습니다. 부유하면 부유한대로, 가난하면 가난한대로 자기만의 방 한 칸은 커녕, 육아와 가사노동에 치여 글 한 줄도 쓰기 어려운 여성의 입장에서, 울프가 소개한 제인 오스틴이 이룩한 업적은 실로 놀라워보입니다. 작가가 이야기한 돈과 자기만의 방은 글을 쓰는 모든 이에게 필요한 것이지만, 책을 읽다보면 유독 여성에게 더욱 필요한 요소처럼 여겨져요.

 

여기에서 흥미로운 것은 '작가는 만들어진다'고 주장한 울프의 생각이에요. 그녀는 16세기 대문호 셰익스피어에게 재능 있는 여동생이 있었다면 어땠을까 가정하면서, 아마 실제로 그러했다면 비극적인 파멸을 맞이했을 것이라 단언합니다. 천재는 만들어지는 것이라고요. '여성들은 아이 방에서 나오기 무섭게 노동이 시작되었고, 부모에 의해 억지로 일을 해야 했으니까'요. 사회의 이름으로 자행되는 보이지 않는 폭력, 여성에게 익명을 요구하는 순결 의식.

 

특히 이번에는 여성들에 대한 남성들의 '분노'가 눈에 띕니다. 울프는 그들 남성들이 우월해보이기 위해 여성들을 열등한 존재로 여겼다고 주장해요. 어쩌면 두려웠던 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듭니다. 남성들에 의해 열등하다고 여겨진 여성들이 이루어낼 문학적인 약진. 남자들은 어떤 한 부분에서조차도 자신들의 우월함을 잃고 싶지 않았을지도요.

 

이번에 [자기만의 방]을 또 한 번 읽어야겠다고 생각한 이유는 정희진님의 해설 때문이기도 했습니다. 작품 안에서 고개를 갸우뚱했던 부분들이 더욱 명확해지기도 했고, 제가 생각했던 내용을 해설 속에서 발견했을 때는 뭔가 기쁘기도 했어요. 그런데 말이죠, 과연 지금 시대의 여성은 울프가 살던 시대의 여성과, 그 이전 시대의 여성과 정말 다른 삶을 살고 있는 걸까요? 문학을 통해 여성의 삶과 나의 삶을 바라볼 수 있었던 시간 속에서, 정확히는 표현할 수 없는 의문같은 것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그 의문을 풀어가는 과정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죠? 우리들이 과연 무엇을 발견하게 될 지 궁금하고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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