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타는 소녀들
C. J. 튜더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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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J.튜더의 작품에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다. 호러와 스릴러 사이의 그 오묘한 경계. 마치 줄타기를 하는 듯 아슬아슬한 긴장감이 오컬트적인 소재와 만나 그 공포를 배가시킨 [불타는 소녀들]은, 지금까지 만난 작가의 작품 중 가장 재미있었다. 채플 크로프트라는 서식스의 작은 마을이 주는 폐쇄성, 메리 여왕의 신교도 박해로 화형당한 여덞 명의 주민이라는 소재가 주는 기괴함, 희생자들 중 두 명이 어린 여자아이라는 비극과 공포 등의 요소들이 사이코패스 살인마라는 소재와 자연스럽게 어울리면서 스릴러로만 맛볼 수 있는 짜릿한 북캉스의 묘미를 느끼게 해준다.

 

 

초반에 등장하는 악마와 신부, 그리고 구마의식을 떠올리게 하는 장면 설정으로 인해 '엑소시스트'같은 장르인 줄 알았다. 영화를 통해 느꼈던, 말로는 다 표현할 수 없는 그 적막감과 까슬까슬한 분위기를 간직한 과거에 잭 브룩스라는 신부의 현재가 덧입혀진다. '잭'이라는 이름에 신부라는 직업까지 더해져 주인공이 '당연히' 남성일 것이라는 편견을 깨트린 그는 여성 사제다. 자신과 딸 플로를 지칭하면서 '모녀'라는 단어가 등장하길래 순간 '뭐지?'하고 생각했는데 오타가 아니었던 것!

 

 

원래 있던 교구에서 비극적인 사건과 연관되어 있던 그녀가 새로 향한 곳이 바로 채플 크로프트다. 처음 이미지부터 오싹함을 풍기는 교회와 무언가 비밀을 간직한 듯한 마을 사람들. 이곳에서 일어났던 심상치 않은 실종과 죽음들. 그리고 플로 곁을 맴도는 리글리라는 남자아이까지 작품은 비밀과 수상함으로 가득 차 있다.

 

 

헐렁한 듯 하면서 촘촘한 구성이다. 헐렁하다고 느낀 이유는 글이 술술, 너무나도 쉽게 잘 읽힌 덕분이며 구성이 촘촘하다고 생각한 것은 결말 부분에 가서야 첫 장면을 이해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모든 의문의 해답이 바로 거기, 분명히 보였지만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다. 독자들을 알쏭달쏭하게 만들면서 마치 출구 없는 미로 속을 헤매는 듯한 기분이 들게 만들었던 이야기는, 어느 순간 보이는 한줄기 빛으로 순식간에 충격적인 결말을 향해 내달려간다.

 


여기에 악마가 있다. 여기, 가장 위험할 것 없어 보이는 이곳에.
p 11

 

 

너무 많은 이야기를 꺼낼 수 없어 조심스럽지만, 한 가지, 아이의 성향을 결정하는 것은 과연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된다. 타고난 천성인가, 양육환경인가. 그 아이도 그런 일을 겪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평범하게 제자리에 존재할 수 있었을까. 하지만 환경 탓만을 하기에는 설명이 부족한 아이도 등장하기에 명확한 답을 낼 수 없다는 것에 답답함을 느낀다. 맹목적인 집착에 사로잡힌 부모란, 또 얼마나 위험한 존재인가.

 

 

어쩐 일인지 꾸준하게 읽게 되는 C.J.튜더의 작품들. 긴가민가 하는 단계를 지나 이제는 챙겨보는 작가 중 한 명이 되었다. 새삼 반가워요! 말씀대로 내년 이맘 때 또 만나게 되기를!

 

 

**출판사 <다산책방>으로부터 도서를 지원받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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