움베르토 에코 특별판 박스 세트 - 전2권 -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 +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지음, 박종대.이세욱 옮김 / 열린책들 / 2021년 1월
평점 :
품절



 

[미친 세상을 이해하는 척하는 방법]에 이어 두 번째로 만나게 된 에코의 에세이.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이 앞서 읽은 책보다 제목부터가 더 노골적이라고 느껴진 것은, '세상'이라는 단어보다 '바보들'이라는 단어에서부터 드러나는 직접적인 비판 때문이라고 할까. '세상'이라는 덩어리 속에 바보는 몸을 숨길 수 있을 것 같지만, '바보'라고 직접적으로 말하면 그 덩어리가 짠!하고 없어져서 마치 발가벗겨진 듯한 이미지가 강하게 전달되는 것만 같다. 내용 면에서도 바퀴 달린 여행용 가방을 만드는 사람, 택시기사, 호텔이나 침대차에서 구정물 같은 커피를 제공하는 사람들 등 그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을 대놓고 바보라 칭하니, 이 난데없는 날벼락에 그들은 과연 어떤 반응을 보였을지 무척 궁금하다!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은 어떤 모습이었을까. 작가가 칭한 '바보들'을 읽다보면 나 또한 바보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는, 내 경우에는 조금 불편해도 아무 생각 없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작가는 사소한 일상 하나조차 그냥 넘어가는 법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대표적이고 강렬한 예는 역시 '여행가방'이다. 여행가방에 대한 심오한 고찰. 이 여행가방의 문제점을 깨닫고 불편함을 개선하는 데 2,3년이나 걸릴 수 있다는 것에 대한 경악(?)!! 세상에 바보들이 존재한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그 바보들의 봉급이 얼마나 될까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는 말에 공감하면서 웃음보가 터져버렸다.

 

 

심각한 것 같은데 재미있어! 이 책을 읽은 독자라면 누구라도 이렇게 생각하지 않을까. 그 웃음이 와하하 터져나오는 웃음이든, 씁쓸한 미소이든 재치로 가득 찬 그의 글을 읽다보면 생전에 작가는 어떤 사람이었을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사사건건 트집을 잡는 것 같으면서도, 책을 읽고 있으면 과연 그럴 만하다는 생각이 들어 고개가 끄덕거려지기도 하고, 세상에나 어떻게 이런 일까지 생각할 수 있냐며 호들갑을 떨고 싶어지기도 한다. <연어와 여행하는 방법>에서는 한편의 시트콤을 보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아이스크림 하나에서조차 통찰을 발휘하는 장면을 보면 '과연 이래서 세기의 지성인이라고 불리는가' 싶기도 했다.

 


 

다소 과격하다 여겨지는 부분들도 당연히 있다. 가령 <텔레비전에서 교수형 생중계를 보는 방법>에서는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이들을 향해, 사형제도를 그렇게 지지하고 좋아한다면 아무 거부감 없이 사형이 집행되는 장면을 볼 수 있어야 한다는 직격탄을 날린다. 사형의 정당성을 인정한다면서 마치 그 제도가 존재하지 않는 것처럼 행동해서는 안 된다는 주장인데 그래도 너무 과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논조가 강하다. 내가 사형제도를 완전히 반대하는 입장이 아니기 때문인가??!! 사형제도의 유무에 대해 생각해 보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나는 여전히 잘 모르겠다. 만약 내가 피해자의 입장이라면, 혹은 희생자 가족의 입장이라면 사형제도에 완벽히 찬성하지 않았을까.

 

 

과격한 표현에서조차 그의 글은 자신감이 넘친다. 사형제도와 관련된 글을 발표하고 현지에서는 어떤 반응이 있었을까 궁금하지만, 작가와 의견이 다른 사람도 분명 있었을 것이기에 비판도 받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하지만 그런 비판조차 거리낌없다는 느낌. 어디 나처럼 자신있게 너희 주장을 펼칠 수 있다면 한 번 해봐!라는 작가의 목소리가 들리는 듯한 글들이다. 그럼에도 '웃으면서' 화내고자 했던 그의 마음 또한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책이라고 할까. 그렇지 않았다면 유머와 재치를 활용하지 않고 그저 화만 내면 됐을 일이다!

 

 

쉽게 읽히는 글들이지만 그 속에 담긴 메시지는 결코 쉽다고만은 할 수 없었다. 무심코 지나쳤던 모든 것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책. 여전히 어디선가 플라스틱 포크로 비행기 안에서 콩을 찍어먹으며 투덜거리고 있을 것만 같은 그가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에, 이제서야 굉장한 유감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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