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세라 워터스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세라 워터스 지음, 최용준 옮김 / 열린책들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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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소통할 수 있는 단 한 사람을 잃게 된다면 그것은 세상이 끝난 것과 마찬가지일 것이다. 마거릿에게 그런 사람은 아마도 아버지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난 후 우울증으로 삶의 모든 기력을 놓아버린 마거릿은, 마음을 달래기 위해 여자 죄수들이 갇혀 있는 감옥을 방문하는 자선 활동을 하기로 한다. 밀뱅크에서 만나게 된 여러 죄목의 죄수들. 그 중에서도 특히 셀리나 도스라는, 사기죄로 갇힌 영매에게 마음이 간다. 강령회를 주도하다가 함께 살고 있던 브링크 부인을 사망에 이르게 하고, 결국 같은 영매들에게마저 버림받은 셀리나.

 

 

가족 중 그 누군가와도 마음을 터놓을 수 없고 사랑하는 연인에게마저 배신당한 과거를 지닌 마거릿은, 셀리나에게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었을까. 사기라고 생각하면서도 셀리나가 보여주는 특별한 증거들에 점차 마음을 빼앗기면서, 이제 아버지 자리에 셀리나가 강하게 들어와있음을 느낀다. 아버지를 잃은 후 자신의 욕망과 바람을 모두 숨긴 채 살아왔지만 셀리나를 만나면서 껍질을 벗어던지고, 이제 그녀를 위해 모든 것을 버릴 각오를 한다.

 


 

세라 워터스의 <빅토리아 시대 3부작> 중 [티핑 더 벨벳]과 [핑거스미스]를 잇는 작품이라 평가받는 [끌림]은 빅토리아 시대, 억압받고 열악한 환경에 처한 여성들을 집중 조망한다. 부유한 상류층 여성인 마거릿에게마저 차별과 평가의 잣대는 냉혹한 것이었다. 여성을 사랑하는 것은 금기시되어 있을 뿐 아니라, 주위 여성들과 조금 다른 생각이나 행동만 해도 별종 취급을 당하며, 나이가 찼는데도 불구하고 결혼하지 못한 것에 대한 수근거림. 하물며 빈곤한 뒷골목 여인들은 어떠했을까.

 

밀뱅크에서 보내는 첫해에는 온갖 맹세를 다 하지요. 다시 나쁜 짓을 저질러 이 곳에 또 오느니 차라리 가족과 함께 굶어 죽겠노라고 다짐에 다짐을 하지요. 만나는 사람에게마다 잘못했다고, 다시는 안 그러겠노라고 말하지요. 하지만 첫해뿐이랍니다. 그 뒤로는 잘못했다는 생각을 안 해요. 자신이 저지른 범죄를 곰곰히 생각해 보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지 않았더라면 이곳에 오지 않았을텐데>이런 생각은 안 하지요. 오히려 <그때 내가 좀 더 잘했더라면......>이런 생각을 하지요. 그리고 풀려나면 저지를 온갖 정교한 속임수와 사기 방법을 궁리한답니다.

p 170

 

소설이 시대를 얼마나 정확하게 반영하고 있을지 모르겠지만, 작품에서 비추어지는 여러 정황들로 미루어 빅토리아 시대 법과 감옥은 본연의 교화 기능을 충실히 이행하지 못하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잡히지 않으면 된다, 일단 굶어죽지 않는 것이 제일 중요하다. 생을 이어가는 것이 단 하나의 목적인 여성들에게 감옥은 그저 몇 년 살다 나오면 되는 그런 장소이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감옥의 어둠은 견디기 힘들었으리라. 이쪽에서도 저쪽에서도 환영받지 못하고 그저 끈질기게 목숨을 이어가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여성들의 모습에, 죄수들임에도 애잔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은 마거릿과 별반 다르지 않다고 느껴진다. 여죄수들은 감옥에 갇혀 있었지만, 마거릿은 벗어날 수 없는 현실에 갇혀 있었기에. 그런 그녀가 마침내 날개를 펴고 날아갈 준비를 마쳤을 때 찾아온 충격적인 진실에, 나는 그저 마거릿과 함께 정신을 놓을 수밖에 없었다. 산산이 부서진다는 것이 그런 느낌일까. 마거릿은 이제 더 이상 일어설 수 없을 것 같다.

 


 

[티핑 더 벨벳]의 문체가 거침없는 데다 소재도 파격적이었기 때문인지 뒤이어 읽은 [끌림] 은 다소 심심하고 지루하게 여겨지기도 하다. 다만 잔잔하게 흘러가다가 급물살을 탄 듯 순식간에 드러나는 진실 앞에 숨을 멈추게 만드는 작가의 계획은 탁월했다. 빅토리아 시대 여성들의 삶의 모습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 독특한 분위기를 맛볼 수 있었던 것도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세련되고 절제된 문체 안에서 금방이라도 폭발할 것 같았던 격정. [핑거스미스]에서는 또 작가의 어떤 면모를 만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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