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일 밤의 미술관 - 하루 1작품 내 방에서 즐기는 유럽 미술관 투어 Collect 5
이용규 외 지음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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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미술 관련 서적을 연달아, 그리고 동시에 읽었다. 장점은 그림과 화가, 그리고 그림이 그려진 배경이 확실히 각인된다는 것. 단점은 이 사람의 설명과 저 사람의 설명이 약간씩 다른 부분이 있어 조금은 아리송하다는 것. 그래도 최근 두 세달 동안 집중적으로 미술관련 서적을 읽으니 그림에 대한 갈증이 조금은 해소되는 듯한 기분이 든다.

 

[90일 밤의 미술관]은 출간 되었을 때부터 관심가지고 있던 책으로, 총 다섯 명의 도슨트가 자신이 사랑하는 그림 이야기를 한편 한편 짧지만 강하게 전달해준다. 학교 다닐 때 동양미술사 강의를 들으면서 한때나마 도슨트를 꿈꿨던 적이 있다. 그 때는 대학원 진학을 그쪽으로 해볼까도 심각하게 고려했었지만, 이런저런 상황 속에서 결심을 하지 못했다. 이렇게 다섯 명의 도슨트들의 삶의 일면을 들여다보고 있자니 새삼 부러우면서도 살짝 질투가 나기도 한다. 좋아하는 그림들에 둘러싸여 인생을 보내는 기분이란 과연 어떨까.

 

처음 등장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다른 책에서 읽은 지 얼마 되지 않아 확실히 눈에 들어온 그림 한 점이 있다. 바로 얀 반 에이크의 <아르놀피니 부부의 초상>. 제목 보자마자 똭! 그림이 머리속에 떠오르는데 이렇게 신기방기할 수가!! 얀 반 에이크는 북유럽 르네상스의 선구자이자 '현대 유화의 아버지'로 알려져 있는데, 색을 내는 안료가 엉기게 하는 용매로 달걀 대신 기름을 사용한 그의 발명은 미술사 측면에서 엄청난 사건으로 평가받는다. 유화는 기름을 매개로 하여 마르는 속도가 느려 자연스럽게 충분한 시간을 가지고 그림 완성이 가능하며, 여러 번 덧칠이 가능하여 물체의 부피감과 명암 표현에도 유리하다.


 

폴 들라로슈의 <레이디 제인 그레이의 처형>은 보는 순간 가슴이 따끔거렸다. 손으로 더듬더듬, 자신의 죽을 자리를 찾는 한 여인. 제인 그레이는 영국의 왕족이었지만 구교인 가톨릭과 신교인 성공회 간 종교 갈등과 권력 다툼 때문에 단 9일 만에 여왕자리에서 폐위되어 죽음을 맞이하는 비극적인 인물이다. 헨리 8세가 세 번째 부인 제인 시모어로부터 얻은 아들 에드워드 6세는 왕이 된 지 6년만에 열여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나는데, 왕위 서열 1위였던 메리(첫 번째 부인 캐서린과의 사이에서 낳은 딸)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탓에 권력을 잃을까 두려워한 성공회 측 귀족들은 에드워드 6세에게 제인 그레이를 후계자로 임명하라고 부추긴다. 제인 그레이는 헨리 8세의 여동생의 외손녀로 성공회 신자였기 때문이다.

 

메리는 왕위 서열 1위라는 대중의 지지와 자신의 권력 기반을 바탕으로 군대를 일으켜 제인 그레이를 폐위시키고 여왕이 된다. 제인 그레이는 반역죄로 런던 탑에 갇히게 되지만, 제인을 안타깝게 여긴 메리는 그녀에게 가톨릭으로 개종하면 목숨은 살려주겠다고 제안한다. 하지만 제인은 신념을 지키기 위해 담담히 죽음을 맞이한다. 목숨보다 소중한 신념이라니! 들라로슈는 어둡고 칙칙한 감옥에서 홀로 빛나는 제인의 창백한 피부와 순백의 드레스를 통해 비극을 강조하고 있다. 제인의 창백함은 신념의 고귀함을 표현하고 있는 듯도 하다.


 

미술 서적을 탐독하면서 얻은 최고의 수확은 '마르크 샤갈'이다. 이 책에 실린 <꽃다발과 하늘을 나는 연인>은, 이제 페르메이르의 그림들 다음으로 내가 사랑하는 그림 중 하나가 되었다. 피카소로부터 '마티스가 죽으면 색이 무엇인지 진정으로 이해하는 유일한 화가는 샤갈 뿐이다'라는 찬사를 들은 마르크 샤갈. 그의 뮤즈이자 아내였던 벨라 로젠펠드는 1944년 전염병으로 사망하고, 샤갈은 상실의 슬픔에 빠진다. 하지만 벨라가 죽기 전부터 그리기 시작해 그녀의 죽음 후에 완성된 <꽃다발과 하늘을 나는 연인들>. 그의 자서전 [나의 삶]에 따르면 그를 다시 그림 앞으로 불러들인 것은 '열린 창문을 통해 벨라가 그의 곁으로 데리고 왔던 푸른 공기, 사랑과 꽃'이었다.

 

많은 사람이 사랑하는 화가인 반 고흐는 물론, '넘치는 살을 그린' 화가 루벤스, 현대 미술의 아버지로 불리는 폴 세잔, '인상주의'라는 말의 어원을 만들어낸 모네, 자화상을 통해 삶의 빛과 어둠을 드러낸 렘브란트, '오늘날의 관종'이라 표현된 살바도르 달리, 자신의 비극을 그림으로 승화시킨 여인 프리다 칼로 등 여러 화가의 그림들을 한 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었던 자리. 30일 간의 챌린지를 통해 그림 하나하나를 마음 속 깊이 담았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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