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의 여행자
무라야마 사키.게미 지음, 이희정 옮김 / ㈜소미미디어 / 2020년 4월
평점 :
품절


[오후도 서점 이야기]로 알게 된 작가 무라야마 사키. 세 가지 단편과 함께 화려하게 수놓아진 일러스트 작품집으로 다시 만났다. 내용은 차치하고라도 일단 일러스트만으로도 보는 즐거움이 있는 책. 소미미디어의 책 중 유독 봄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작품들의 표지가 있는데 [봄의 여행자]는 그 중에서도 단연 최고라고 할까. 가만히 들여다보고 있는 것만으로도 마치 봄나들이를 나가는 듯 가슴이 울렁울렁해온다.

총 세 편의 단편 중 첫 작품은 <꽃게릴라의 밤>. 하숙집을 하는 주인공 소녀 리나의 집에는 대학교에서 식물을 키우고 늘리는 공부를 하는 사유리 언니가 있다. 녹음으로 가득한 방만큼 그녀를 잘 나타내는 게 또 있을까. 그녀는 공원이나 공터나 남의 집 정원 같은 곳에 몰래 꽃씨를 뿌리거나 알뿌리를 심거나 하는 '꽃게릴라'다. 계절이 바뀌면 싹이 트고 꽃이 피어서 동네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깜짝 놀라거나 기뻐하는 모습을 보는 것이 꽃게릴라의 즐거움. 그런 그녀도 얼마 있으면 다른 곳으로 공부하러 떠난다. 사유리를 동경해왔던 리나는 같은 반 친구가 괴롭힘당하는 것을 모른 척 했다는 자괴감에 괴로워한다. 사유리 언니였다면 나처럼 행동하지 않았을 거야, 자신도 사유리 언니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는 리나에게 사유리가 조언한다.

리나,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하게 될 때,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을 그 사람에게 덧씌워 보곤 해. 진짜 그 사람이 아니라, 자기 마음이 만들어낸 공상의, 환상의 모습을 동경하는 거야......누군가를 동경하고 그 사람처럼 되고 싶다고 생각하면서 언젠가 그 사람을, 그 환상 속의 모습을 앞질러 가. 그렇게 어른이 되는 거야.

p22-23

표제작인 <봄의 여행자>는 지구에서 태어난 거북이가 여행을 마치고 51년만에 다시 지구로 돌아온다는 내용의 환상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51년 전 전쟁이 한창인 폐허 속을 찾아온 거북이의 산란과 죽음의 과정을 지켜보고, 새끼 거북이들이 떠나는 모습을 지켜보았던 유원지의 할아버지. 그로부터 51년이 지나 별의 바다를 건너올 새끼 거북이들을 기다린다는 내용은 그 일이 정말 일어났었는지 의심하게 만들기도 하지만, 할아버지의 이야기를 듣는 과정은 한 편의 동화를 읽고 있는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 작품인 <또그르르>는 시 같기도 하고, 일기 같기도 한 비교적 짧은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색깔과 맛 등에 대한 선명한 표현이 인상적인 작품으로 이 단편은 특히나 내용보다 일러스트를 감상하는 즐거움이 더 컸다.

 

특히 애정하는 밤벚꽃의 그림들을 감상하면서 책 속에서 봄의 향기를 느꼈다. 바이러스로 인해 충분히 봄을 즐기지 못했던 올해. 책으로나마 아쉬운 마음을 달래본다. 쓰담쓰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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