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그네 (10주년 기념 리커버 특별판)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31
헤르타 뮐러 지음, 박경희 옮김 / 문학동네 / 2019년 10월
평점 :
절판


가끔은 수용소의 물건들이 차례로 하나씩 떠오르는 게 아니라 무더기로 나를 덮친다. 그래서 나는 안다. 물건들이 나를 찾아오는 건 내가 기억하려 해서가 아니라 나를 괴롭히기 위해서임을...밤이면 물건들은 나를 추방시키려 하고, 나를 원한다. 한꺼번에 쏟아져내리므로 머릿속에만 머물지 않는다. 위가 조여든다. 그 느낌은 점점 올라와 입천장에 닿을 것 같다. 숨그네가 공중을 한 바퀴 돌고, 나는 헉헉거린다. 배고픔이 괴물이듯 그런 이빨빗바늘가위거울솔은 괴물이다. 배고픔이 대상으로 존재하지 않았더라면 그런 물건들이 찾아오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p 37

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주년 특별판 시리즈의 그 첫 번째,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만났다. 루마니아 중서부 지역에서 러시아행이 결정되었을 때 '나'는 열일곱 소년이었다. 한창 랑데부, 같은 남자와의 사랑에 빠져 있던, 수용소에 갇히기 훨씬 이전부터 나라와 가족들에 대한 공포로 살아왔던 사람. 나라가 자신을 범죄자로 가두고, 가족들이 치욕으로 여겨 내쫓으리라는 공포 속에서 차라리 수용소행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소년. 가족들이 챙겨준 물건을 품에 안고 러시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루마니아를 뒤로 하고 어느 새 맞이한 러시아의 밤 속에서 그와 다른 이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성의 말살을 경험한다. 모두가 일렬로 자리해 용변을 봐야했던 그 밤. 예전의 삶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고, 마침내 현실을 직시한다. 살고 싶어서, 살기 위해 그들은 무더기로 모여 똥을 누었다.

 

그리고 시작된 수용소 생활. 그 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는 '배고픔'이다. 배고픈 천사는 늘 따라다니며 한방울넘치는행복을 맛볼 때까지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일의 경중에 따라 무게가 다른 빵을 배급받았고, 빵 바꾸기가 빈번하게 이루어졌으며, 아침에 받은 빵을 그 순간 다 먹지 않으려면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해야 했다. 남은 빵을 베개 밑에 숨겨놓고, 또 누군가는 그 빵을 훔쳐가고, 자체적인 징벌이 가해진 후에도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살아간다. 남의 빵을 훔칠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알기에, 누구라도 그가 될 수 있었기에, 하지만 자신들만의 도덕은 필요했으므로. '나'는 '너는 돌아올 거야' 라는 한 마디에 의지해 수용소 생활을 견뎌가고, 수용소 사람들 모두를 지탱해주는 존재는 경비원 카티로 불리는 카타리나 자이델이다. 날 때부터 천치였던 그녀를 수용소 사람들 누구도 괴롭히지 않으며 서로에게 저지르는 나쁜 짓을 그녀에게 베푸는 선행으로 용서받고자 한다. 그녀는 수용소 안에 마지막 남은 양심, 마지막 남은 휴머니즘을 상징한다.

 

단어 하나가 소제목이 되어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담백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그 담백함이 오히려 처연하게 다가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뮐러의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되었다 돌아왔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년간 노역했다. 나치의 몰락과 루마니아 독재정권의 횡포 속에서 형성된 시골마을의 강압적인 분위기. 그 분위기는 어린 뮐러에게 잊지 못할 기억과 두려움을 선사했고 , 그 때의 경험들이 그의 문학인생에 근간을 이루게 된다. 그런 배경을 알고 난 후여서인지 작품 안의 담담한 문체가 오히려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시를 읽는 것 같은 섬세함이 담겨 있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울림과 무게감이 담겨 있다.

'나'의 고통은 어머니가 보낸 엽서로 절정에 다다른다. 자신이 떠나고 난 뒤 태어난 동생의 존재. 그 존재는 '나'에게 전혀 기쁨도, 반가움도 될 수 없었다. 오히려 죽어버리를 바랐다. 이제 자신은 가족들에게 죽은 사람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 어쩌면 아무도 그가 살아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이 없다는 생각은 그를 더 절망으로 몰고 간다. 그에게 어머니는 어째서 그런 엽서를 보낸 것일까. 단순히 동생의 존재를 알리기 위해서? 두 아들을 키우는 엄마로서 그 엄마의 심리가 잘 이해되지 않는다. 나라면, 만약 엽서를 보낼 수 있다면 어떤 사진을, 어떤 문구를 보냈을까. 망설일 필요 없다. 당연히 보고싶다, 너를 기다린다, 몸이 성치 않아도 좋으니 살아만 있어달라-밖에 떠오르지 않는다.

 

전쟁이 끝난 후에도 5년이나 더 수용소에 있다 고향으로 돌아오지만 수용소에서의 경험은 그를 꽉 붙잡고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누군들 놓여질 수 있을까. 그 황량하고 두려운 죽음과 삶의 길목에 서 있었던 경험에서. '나'는 거기서 나오지 못한다. 과거와 현재와 미래는 연결되어 있다. 과거에 있었던 일들이 현재의 우리에게는 어떤 시간을 주고, 미래의 우리 아이들에게는 어떤 경험을 겪게 할까. 잊혀질 수도 있는 과거에 눈 돌리게 하는 것. 기억하고 함께 살아가게 만드는 것. 문학이 지닌 이 힘 앞에서 숨 한 번 제대로 쉬지 못한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건 나만의 착각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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