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독서카페 #리딩투데이 에서 함께 읽는 도서로 선정된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0주년 특별판
시리즈의 그 첫 번째, 헤르타 뮐러의 [숨그네]를 만났다. 루마니아 중서부 지역에서 러시아행이 결정되었을 때 '나'는 열일곱
소년이었다. 한창 랑데부, 같은 남자와의 사랑에 빠져 있던, 수용소에 갇히기 훨씬 이전부터 나라와 가족들에 대한 공포로 살아왔던 사람. 나라가
자신을 범죄자로 가두고, 가족들이 치욕으로 여겨 내쫓으리라는 공포 속에서 차라리 수용소행이 나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던 철없던 소년. 가족들이
챙겨준 물건을 품에 안고 러시아행 열차에 몸을 실었다. 루마니아를 뒤로 하고 어느 새 맞이한 러시아의 밤 속에서 그와 다른 이들은 태어나
처음으로 인간성의 말살을 경험한다. 모두가 일렬로 자리해 용변을 봐야했던 그 밤. 예전의 삶은 온데 간데 없이 사라졌고, 마침내 현실을
직시한다. 살고 싶어서, 살기 위해 그들은 무더기로 모여 똥을 누었다.
그리고 시작된 수용소 생활. 그 생활을 떠올리게 하는 단어는 '배고픔'이다. 배고픈
천사는 늘 따라다니며 한방울넘치는행복을 맛볼 때까지
절대 놓아주지 않는다. 일의 경중에 따라 무게가 다른 빵을 배급받았고, 빵 바꾸기가 빈번하게 이루어졌으며, 아침에 받은 빵을 그 순간 다 먹지
않으려면 엄청난 자제력을 발휘해야 했다. 남은 빵을 베개 밑에 숨겨놓고, 또 누군가는 그 빵을 훔쳐가고, 자체적인 징벌이 가해진 후에도 그들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다시 살아간다. 남의 빵을 훔칠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을 알기에, 누구라도 그가 될 수 있었기에, 하지만 자신들만의 도덕은
필요했으므로. '나'는 '너는 돌아올 거야' 라는 한 마디에 의지해 수용소 생활을 견뎌가고, 수용소 사람들 모두를 지탱해주는 존재는 경비원
카티로 불리는 카타리나 자이델이다. 날 때부터 천치였던 그녀를 수용소 사람들 누구도 괴롭히지 않으며 서로에게 저지르는 나쁜 짓을 그녀에게 베푸는
선행으로 용서받고자 한다. 그녀는 수용소 안에 마지막 남은 양심, 마지막 남은 휴머니즘을 상징한다.
단어 하나가 소제목이 되어 수용소에서의 생활을 담백하게 묘사한다. 그러나 그 담백함이 오히려 처연하게 다가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실제로 뮐러의 아버지는 2차대전 당시 나치 무장친위대로 징집되었다 돌아왔고, 어머니는 우크라이나의 강제수용소에서 오년간 노역했다. 나치의
몰락과 루마니아 독재정권의 횡포 속에서 형성된 시골마을의 강압적인 분위기. 그 분위기는 어린 뮐러에게 잊지 못할 기억과 두려움을 선사했고 , 그
때의 경험들이 그의 문학인생에 근간을 이루게 된다. 그런 배경을 알고 난 후여서인지 작품 안의 담담한 문체가 오히려 가슴이 아프다. 게다가 한
문장, 한 문장이 마치 시를 읽는 것 같은 섬세함이 담겨 있다. 단어 하나하나마다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울림과 무게감이 담겨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