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경 3미터의 카오스
가마타미와 지음, 장선정 옮김 / 비채 / 201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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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 인연 없는 사람과의 만남 중에 가장 이상했던 경우를 생각해보자면, '도를 아십니까'와 '변태'가 아닐까 싶다. 심지어 얼마 전에는 외국인인데, 나한테 도를 아냐고 물어! 어째서 외국인이 도에 심취해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왜 그 많은 사람들 중에, 정말 오랜만에 외출한 나한테 도를 아냐고 묻는 것이냐!-라고 되려 묻고 싶어질 정도로 집요하게 따라오던 외국인이었다. 변태 중에 변태는 일본 변태라 할까. 벌써 10년 전의 일인데 혼자 교토를 여행할 때의 일이었다. 여름이라 반바지, 그런데 그리 짧지도 않아! 무릎이 보일랑말랑한 애매한 바지를 입고 버스에서 여행책자를 보고 있던 내 다리를 맨손으로 슥 훑고 지나간 후 급하게 내린 변태가 있었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입만 벌린 채 멍하니 얼이 빠져 있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이 정도도 꽤 큰 충격이었는데, 주인공이자 만화가인 가마타미와의 주변에 모여든 사람들은, 내 경우는 명함도 못내밀 정도다.

자기는 사지 않으면서 정말 싸다며 물건을 들이미는 아주머니는 귀여울 정도. 갑자기 다가와 저 알고보면 은근히 변태라며 커밍아웃을 하는 점원에, 채소가게를 어슬렁거리는 변태, 자기 딸에게 사 줄 옷의 사이즈를 고르기 위해 주인공에게 허락(?)도 없이 대보는 모르는 아주머니와, 갑자기 약속 있냐고 묻더니 그냥 가버리는 남자는 뭐며, 체육관에서 만난 기묘한 할머니 무리와, 여행을 떠난 아타미에서는 며느리 이야기를 주구장창 늘어놓는 아주머니도 있었고, 라스베이거스 호텔 엘레베이터에서는 갑자기 크레이지를 외치는 외국인까지 만난다.

글로 써놓으니 별 것 아닌 것 같지만 하나하나의 에피소드를 컬러풀한 생생한 그림과 함께 보고 있자면, 내가 주인공이라면 꽤 스트레스를 받을 것 같기도 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째서 내 주변에만 이렇게 이상한 사람들이 모여드는 거지, 내가 그렇게 만만하게 보이나 같은 생각이 들 법도 한데 작가는 그런 일상의 에피소드들을 유쾌하게 그려낸다. 이기적이고 무례한 사람들로 인해 상처받는 경우도 많을 것 같은데 작가는 오히려 '유유상종일까요?'라며 느긋한 모습을 보이니 그건 그것대로 또 골똘히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랄까.

하지만 어떻게 생각해보면 생각지도 못하게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사람들로 인해 주인공의 인생은 좀 더 재미있어지는 지도 모르겠다. 단조로운 일상에 요상한 활력을 주는 존재들이랄까. 또 그렇게 사람들이 모여든다는 건, 주인공이 굉장히 착하게 생겼거나, 모르는 사람조차 자신의 속마음을 꺼내놓고 싶어질 정도의 매력녀일지도. 변태는 절대 만나고 싶지 않지만, 그저 자신의 신세를 한탄하는 아주머니나 도움을 요청하는 사람이라면 만나도 나쁘지 않을 것 같은데 어떠려나.

읽다보니 어느 새 끝. 속편이 나와주면 즐겁게 읽을텐데 그렇다면 주인공들이 이상한 사람들을 더 만나야 할테니 그것도 딜레마. 그래도 궁금하다. 또 어떤 이상한 사람들로 인해 카오스를 맛보았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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