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강 스포. 긴 글 주의.
















얼마 전, 『닥터 지바고』를 읽었다. 내가 읽은 건 박형규 번역의 열린책들 2001년 판. 그런데 초반에 라라와 빠샤의 대화를 읽다가 이상한 점을 발견했다. 빠샤는 라라와 어릴 때부터 가까이 지냈고 라라보다 몇 살 어리지만 라라를 변함없이 사랑하는 사람이다. 라라는 자신이 처한 상황을 타개하고자 빠샤에게 결혼을 종용한다. 그런데 이 장면에서 라라는 빠샤에게 존댓말을 쓰고 빠샤는 라라에게 반말을 쓰는 것이다. 빠샤의 나이가 어림에도 불구하고. 그래서 난 챗GPT에게 이 부분의 러시아 원문을 확인해 달라고 요청했고 챗GPT는 둘이 서로에게 같은 주어를 쓰고 있음을 확인해 줬다. 그래서 난 다른 번역자들은 이 부분을 어떻게 번역했는지 궁금해졌고, 내가 구할 수 있는 내가 갈 수 있는 범위의 도서관에 소장된 책들의 몇몇 장면들의 라라의 어투를 확인했다.


라라는 주체적이고 주관적인, 중심이 단단한 사람이다. 당시 상황은 여성인 라라에게 결코 친절하지 않았다. 혁명, 전쟁, 기근, 정치적 폭력, 여성이라는 이유로 가해지는 사회적 제약 속에서 여성으로서, 어머니로서 할 수 있는 선택은 늘 불완전할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라라는 자기자신이기를 포기한 적이 없다. 늘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 지 분명히 말하고, 자신의 생각을 분명히 표현한다. 선택지가 없더라도 선택하는 행위 자체를 포기하지 않는다. 힘든 현실에 무기력하게 굴복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마냥 이상을 추구하지도 않는다. 이런 라라의 캐릭터를 각 판본의 역자들은 어떻게 표현했을까?


(각 장면은 내 선택에 따라 임의로 선정했고, 각 장면의 러시아어 원문을 확인하긴 했지만 글이 너무 길어지고 내 러시아어 실력은 0(zero)이어서 GPT가 틀렸어도 정정할 길이 없으므로 생략한다.)


. 열린책들. 박형규 역. 2001.

. 열린책들. 홍대화 역. 2022.

. 창비. 최종술 역. 2024.

. 민음사. 김연경 역. 2019.


* 라라가 빠샤에게 빨리 결혼하자고 말하는 장면

. “내 말을 들어 봐요, 빠뚤라.” 라라가 말했다. “난 곤경에 처해 있어요. 내가 헤어나올 수 있도록 도와줘요. 놀라지는 말고 묻지도 말아요.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과 같다는 생각은 하지 마세요. 가볍게 생각해서도 안 돼요. 나는 언제나 위험 속에 있어요. 당신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파멸로부터 구해 주시려면, 연기하지 말고 곧 결혼해요.” “그거야말로 내가 항상 바라던 것 아니야.” 그는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곧 날을 정하도록 하지. 당신이 그렇게 원하다니 무척 기쁘군.(하략)”

- 상권. 134-135


. “들어봐, 파툴랴.” 라라가 말했다. “나에게 곤란한 일이 생겼어. 거기서 벗어나도록 나를 도와줘야 해. 놀라지 말고 나에게 꼬치꼬치 캐묻지도 마. 하지만 우리가 모든 이와 같다는 생각은 말아 줘. 평온한 마음으로 있지도 말고. 나는 언제나 위험한 상황에 처해 있어. 만일 자기가 나를 사랑하고 파멸에서 건지고 싶다면, 더 이상 미루지 말고 어서 결혼하자.”

그건 내가 늘 바라던 일이야.” 그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얼른 날짜를 정하자. 당신이 원하는 날짜면 언제든 좋아. (하략)”

-상권. 154


. “내 말 들어봐, 빠뚤랴.” 라라가 말했다. “난 곤경에 처했어. 거기서 헤어나올 수 있게 날 도와줘야 해. 놀라지 말고 캐묻지도 마. 다만 우리가 남들과 같다는 생각은 버려야 해. 가만히 있지 마. 난 늘 위험에 처해 있어. 만약 네가 날 사랑하고 나를 파멸로부터 지키고 싶다면 미루지 마. 우리 빨리 결혼하자.”

하지만 그건 내가 늘 바라던 거잖아.” 그가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어서 날을 잡자. 네가 원하는 날이면 언제라도 좋아. (하략)”

- 1. 133


. “들어 봐, 파툴랴.” 라라가 말했다. “곤란한 일이 있어. 거기서 벗어나도록 나를 도와줬으면 해. 놀라지도 말고 캐묻지도 마, 하지만 우리가 다른 사람과 같다는 생각은 버려. 계속 침착하게 굴어도 안 돼. 나는 항상 위험한 상태야. 네가 나를 사랑해서 파멸하지 않도록 지켜 주고 싶다면 미루지 말고 얼른 결혼하자.”

하지만 그거야말로 내가 계속 바라던 일이잖아.” 그가 그녀의 말을 막았다. “얼른 날을 잡아 봐, 네가 원하는 날이면 나는 언제라도 좋아(하략).”

- 1. 152



* 라라가 권총 소동 후 빠샤에게 자신을 모른다고 말하는 장면

. “난 나쁜 여자예요. 당신은 나를 몰라요. 언젠가 말해 드리겠어요. 당신도 보시다시피 눈물 때문에 목이 메어 말하기 어려워요. 날 단념하고 잊어 줘요. 난 당신을 필요로 하지 않아요.”

- 상권. 162


. “나는 나쁜 여자야. 당신은 나를 몰라. 언젠가는 당신에게 말해 줄게. 말하기 힘든 얘기야. 당신도 보다시피 난 눈물 때문에 목이 막혀. 나를 버려, 그리고 잊어, 난 자격이 없는 여자야.”

- 상권. 187


. “나는 나쁜 여자야. 너는 나를 몰라. 언젠가 말해 줄게. 보다시피 지금은 눈물에 목이 메어 말하기가 힘들어. 하지만 나를 버려, 잊어줘. 난 너한테 자격 없는 여자야.”

- 1. 162


. “나는 나쁜 여자야. 너는 나를 몰라, 언젠가 얘기할게. 지금은 말하기가 힘들어, 보다시피 눈물 때문에 목이 메어. 하지만 나를 단념하고 잊어 줘, 나는 너를 만날 자격이 없는 몸이야.”

- 1. 183



* 빠샤의 입대 결정

. “왜 당신은 나와 까쩬까를 버리는 거예요? 그건 안 돼요, 안 돼요! 아직도 늦지 않았어요. 내가 모든 일을 바로잡아 놓을게요. 당신은 의사에게 보이지도 않았잖아요. 당신 심장으로 부끄럽지도 않아요? 처자를 미친 짓거리의 희생물로 내던지다니, 부끄럽지 않느냔 말이에요? (중략) 빠샤, 당신을 누가 바꾸어 놓기라도 한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귀신이 들리기라도 한 거예요?”

- 상권. 184


. “이러지 마, 제발 하지 마! 아직 늦지 않았어. 내가 모든 걸 고칠게. 당신은 의사에게 가서 제대로 진찰도 받지 않았잖아. 당신 심장은 어쩔 건데? 부끄럽지도 않아? 무슨 말도 안 되는 미친 짓에 가족더러 희생을 하라니, 부끄럽지도 않아? (중략) 파샤, 무슨 짓을 하는 거야, 당신을 못 알아보겠어! 사람이 바뀐 거야, 아니면 뭘 잘못 먹은 거야?”

- 상권, 211


. “나랑 까젠까를 버리고 가면 어떡해? 하지 마, 그러지 마! 아직 늦지 않았어. 내가 다 바로잡을 게. 그래, 당신은 신체검사도 제대로 받지 않았잖아. 당신 심장은? 마음을 바꾸는 게 창피하다고? 처자식을 미친 짓거리에 제물로 바치는 건 창피하지 않고? (중략) 빠샤, 당신을 모르겠어! 누가 당신을 바꿔치기한 거야, 아니면 뭘 잘못 먹었어?”

- 상권. 183


. “이러지 마, 제발! 아무 것도 늦지 않았어. 내가 모든 것을 바로잡을게. 게다가 의사에게 진찰도 제대로 안 받았잖아. 당신 심장 말이야. 부끄럽지? 가족을 광기의 희생양으로 만들다니, 부끄럽지도 않아? (중략) 파샤, 왜 그래, 너무 당신답지 않잖아! 누가 당신을 바꿔치기한 거야, 아니면 못 먹을 걸 먹은 거야?”

- 1. 205-206



* 라라와 유리의 야전 병원에서의 대화

. “당신 왜 어제 노크하지 않으셨어요? 마드무아젤이 네게 말해 주었어요. 하지만 잘하셨어요. 그땐 벌써 잠자리에 들었기 때문에 들어오시라고 못했을 거거든요. 그건 그렇고, 어떠세요? 조심하세요. 더러워지지 않도록. 숯불이 튀어요.”

- 상권. 237

요즘 내가 얼마나 정직하고 보람되게 살기를 바라는지! 사로잡고 있는 모든 기쁨 한가운데에서 나는 이 세상이 아닌 다른 미지의 곳을 찾아 헤매는 듯한 당신의 신비스럽도록 슬픈 시선을 만났소. 그것이 없어서 나는 얼마나 섭섭했는지 모르오. 당신이 운명에 만족하고 어느 누구에게 바라는 것도 아무것도 없다고 당신 얼굴에 씌어질 수 있다면 난 무엇이고 아낌없이 바칠 것이오. 당신과 가까운 어떤 사람, 친구라든가 남편(그 사람이 군인이었다면 정말 좋았겠지만)되는 분이 내 손을 붙잡고, 당신의 운명에 대해 애태우지 말고 관심을 보임으로써 당신을 괴롭히지 말아 달라고 요청한다 해도 마찬가지일 것이오. 그러면 난 손을 뿌리쳐 들어올리고는……, 아 내가 제정신이 아니군! 용서하시오, 제발.”

(중략)

, 이렇게 돌까 봐 얼마나 두려워했는데!” 중얼거리듯 그녀가 조용히 말했다. “무슨 운명의 장난일까! 이러지 마세요, 유리 안드레예비치, 이러면 안 돼요. 아유, 당신 때문에 제가 무슨 짓을 저질렀나 좀 보세요!”

- 상권. 242-243


. “어제 왜 제 방문을 두드리지 않으셨어요? 제게 마드무아젤이 말씀해 주셨어요. 하지만 제대로 행동하신 게 맞아요. 전 이미 자리에 누웠기 때문에 선생님을 방에 들이지 않았을 거예요. , 안녕하세요. 옷을 더럽히지 않도록 조심하세요. 이곳에 숯불이 튀거든요.”

- 상권. 273

당신이 운명에 만족한다고, 그리고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바라는 게 없다는 표정이 당신의 얼굴에 나타날 수 있다면 전 무엇이든 할 겁니다. 당신에게 가까운 사람, 당신의 친구나 남편이(만일 그 사람이 군인이라면 더 좋겠지요) 제 손을 붙잡고 당신의 운명을 걱정하지 말라고, 그 관심으로 당신에게 폐를 끼치지 말라고 부탁한다면…… 저는 손을 빼고 두 손을 털 겁니다.” (유리의 말)

(중략)

, 이렇게 될까 봐 늘 얼마나 두려웠는지 몰라요!” 그녀는 혼잣말을 하듯 조용히 말했다. “이 무슨 숙명적인 망상이에요! 그만두세요, 유리 안드레예비치, 이러지 마세요.”

- 상권 279


. “왜 어제 문을 두드리지 않으셨어요? 마드무아젤이 말해줬어요. 하긴 잘하셨어요. 이미 잠자리에 들어서 당신을 들어오시게 하지 못했을 거에요. 그건 그렇고, 잘 지내셨어요? 조심하세요, 여기 탄가루를 흘려서 옷 버려요.”

- 상권 235

당신이 운명에 만족하고 누구한테서도 아무것도 필요치 않다는 말이 당신 얼굴에 쓰일 수만 있다면 난 무엇이든 바칠 겁니다. 그래서 당신에게 가까운 어떤 사람이, 당신 친구나 남편이(그 사람이 군인이라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내 손을 붙잡고 당신의 운명에 대해 애태우지 말라고, 내 관심으로 당신에게 폐를 끼치지 말아달라고 부탁하도록 말이오. 그러면 나는 손사래를 치며…… , 내가 정신이 나갔군요! 용서하세요.”

(중략)

, 이렇게 될까 봐 늘 얼마나 두려웠는데!” 그녀가 혼잣말하듯 조용히 말했다. “이 무슨 돌이킬 수 없는 실수인지! 그만두세요, 유리 안드레예비치, 이러면 안 돼요.”

- 상권 240


. “어제 왜 노크하지 않았어요? 마드무아젤이 말해 주더라고요. 하긴 잘한 거예요. 이미 잠자리에 들어서 당신을 들어오게 할 수 없었을 거예요. 그래, 안녕하세요. 조심해요, 옷에 묻어요. 여기 숯가루를 흘렸거든요.”

- 1 265

““최근에는 정말 정직하고 보람되게 살고 싶어 미치겠단 말이죠! 이 보편적인 생기의 일부가 되고 싶다고요! 그리고 모두를 사로잡은 기쁨 한가운데서 나는 천국인지 지옥인지 통 알 수 없는 곳을 헤매는, 수수께끼처럼 우울한 당신의 시선을 만났소. 그것이 없어지도록, 당신의 얼굴에 당신이 운명에 만족하고 아무에게도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다는 말이 쓰이도록 할 수 있다면, 나는 뭐라도 내놓았을 거요. 당신과 가까운 사람, 친구든 남편이든(군인이라면 제일 좋겠지만) 아무나 내 손을 잡고 당신의 운명 따위는 걱정하지 말라고, 괜한 신경을 써서 당신에게 부담을 주지 말라고 부탁할 수 있다면 그러면 나는 손을 빼내고 손사래를 치고는…… 아휴, 내가 제정신이 아니군! 죄송합니다, 정말.”

(중략)

, 이렇게 될까 봐 항상 두려웠는데!” 그녀가 조용히 혼잣말처럼 말했다. “정말 치명적인 실수로군요! 그만해요, 유리 안드레예비치, 이러면 안 돼요.”

_ 1270-271



* 라라와 유리의 재회

. “언제 한번 찾아오셔서 도와주시지 않겠어요? 마룻바닥과 언저리에 난 틈을 함께 막았으면 좋겠는데, 어떠세요? 그럼, 그 문제를 곰곰이 생각하시면서 현관에서 기다리세요. 오래 걸리지 않으니. 곧 당신을 부르겠어요.”

(중략)

지바고 씨!”

- 하권. 489


. “혹시 언제 한번 들러서 도와주실 수 있을까요? 함께 바닥에 널빤지를 박는 건요. 어떠세요? 층계참에서 기다리며 뭐든 좀 생각해 보세요. 하지만 오래 기다리시게 하지 않고 곧 부를게요.”

(중략)

지바고 씨!”

- 하권 92


. “언제 한번 와서 도와주시겠어요? 바닥과 굽도리에 난 틈을 함께 막으면 좋겠는데, 어떠세요? 그럼 현관에 계세요, 뭐든 잠시 생각하면서. 오래 걸리지 않아요. 곧 부를게요.:

(중략)

지바고!”

- 하권 74


. “혹시 언제 한번 들러서 도와주지 않을래요? 마룻바닥과 모퉁이의 틈새를 함께 다 막아요, 어때요? 그럼 층계참에 있으면서 뭐 좀 생각해 봐요. 오래 안 기다려도 돼요, 곧 부를게요.”

(중략)

지바고!”

- 2. 88



*
라라가 유리에게 남긴 쪽지 유리가 빨치산에게 잡혀갔다 돌아왔을 때

. “주여, 참으로 행복합니다! 당신께서 살아 계시다는 말이 있습니다. 도시 근처에서 당신을 본 사람이 나한테 달려와 알려 주셨습니다. (중략) 내가 돌아올 때까지 어디에도 나가지 말고 기다리고 계세요. 그렇군요. 당신께서는 그것을 모르시지만, 나는 지금은 앞쪽에 살고 있어요. 한길 쪽으로 난 방에서요. (중략) 기뻐서 어쩔 줄 모르겠어요.”

- 하권. 630


. “주여, 이 얼마나 행복한 일인지! 사람들 말로는 당신이 살아 있고, 당신을 찾았다고 해. 교외 지역에서 당신을 본 사람들이 달려와서 말해 주었어. (중략)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아무 데도 가지 마. 맞아, 당신은 모르겠군, 우리는 지금 거리 쪽으로 난 아파트의 전면부에 살아. (중략) 기뻐서 미칠 것만 같아.”

- 하권 245-246


. ”주여, 참으로 행복합니다. 당신이 살아 있다고, 당신이 나타났다고 하네요. 근방에서 당신을 보았다고 사람들이 달려와서 말해 줬어. (중략) 내가 돌아올 때까지 아무 데도 가지 말고 기다려요. , 당신은 모를 텐데, 지금 나는 집의 앞쪽, 거리로 난 방들에서 살고 있어. (중략) 난 기뻐 미칠 지경이야. ”

- 하권. 211


. “맙소사, 얼마나 다행인지! 당신이 살아 있고 무사하다고 하더군. 당신을 근처에서 본 사람들이 나에게 달려와 말해 주었어. (중략) 아무 데도 가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줘. 그래, 당신은 모르지만 나는 지금 집의 앞쪽 부분, 거리와 면한 방들에 있어. 하긴 당신이 알아서 짐작할 테지. 안주인의 가구 일부를 팔아야 했기 때문에 (중략) 너무 기뻐 미치겠어.”

- 2. 240



* 라라와 유리, 바리키노에서

. “나도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어요. 당신 손아귀에 언제나 꽉 쥐고 당신이 시키는 대로 하도록 해주세요. 난 당신 사랑의 노예이고, 생각하거나 따지는 일은 내 일이 아니라는 걸 자꾸만 상기시켜 주세요. (중략)중요한 건, 사랑의 선물도 다른 선물과 비슷하다는 거예요. 그 선물이 아무리 크더라도 축복이 없이는 드러나질 않아요. 당신과 나는 하늘 나라에서 입맞춤을 배우고 함께 이 세상으로 보내진 것 같아요. 우리가 배웠던 것을 시험하도록 하기 위하여 말이에요.”

(중략)

우리의 처지가 같지 않다는 걸 모르시겠어요? 당신에겐 구름 위로도 날아오를 수 있는 날개가 주어져 있지만, 여자인 저에게는 땅 가까이를 날면서 어린 것을 감싸 줄 수 있는 날개만 주어져 있어요.”

- 하권. 724-725


. ”나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나를 계속 복종하도록 붙잡아 줘. 내가 맹목적으로 사랑하는 자기 사람이라는 것을, 판단하지 않는 종이라는 것을 끊임없이 내게 상기시켜 줘. (중략) 사랑의 은사는 다른 모든 은사와 매한가지야. 그건 위대할 수 있지만 축복 없이는 발현되지 않는 거야. 하늘에서 서로 입을 맞추도록 우리를 가르친 후, 나중에 서로에게 그 능력을 시험해 보도록 동시대의 아이들로 살게끔 우리를 보내셨지.”

(중략)

우리가 서로 다른 상황에 있다는 걸 알겠어? 당신에게는 구름 너머로 날아가라고 날개가 주어졌지만, 나 같은 여자에게는 땅에 달라붙어 위험으로부터 새끼들을 보호하라고 날개가 주어진 거야.”

- 하권. 345-346


.. “뭐라 대답해야 할지 나 자신도 모르겠어. 계속 당신에게 굴복하도록 나를 붙들어줘. 내가 당신 것이라는 걸, 맹목적으로 당신을 사랑하는 생각 없는 노예라는 걸 끊임없이 상기시켜 줘. (중략) 사랑의 재능은 온갖 다른 재능과 같은 거야. 그건 위대할 수도 있지만, 축복 없이는 발현되지 않을 거야. 우리는 마치 하늘에서 입맞춤하는 법을 배운 다음, 그 능력을 서로에게 확인하기 위해 같은 시대에 살도록 어린아이로 내려보내진 것 같아. ”

(중략)

알아요? 우리는 처한 상황이 달라. 당신에게는 펼쳐 구름 너머로 날아갈 수 있도록 날개가 주어졌지.. 여자인 내게는 땅에 바싹 붙어 어린 새끼를 감싸서 위험에서 보호하도록 날개가 주어졌고.”

- 하권 295-296


. ”나도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모르겠어. 항상 나를 꼭 붙들고 있어 줘. 내가 맹목적인 사랑에 빠져 판단력을 상실한 당신의 노예라는 것을 끊임없이 상기시켜 줘. (중략)사랑의 재능은 다른 온갖 재능과 같아. 위대할 수는 있지만, 축복이 없으면 드러나지 않을 거야. 우리는 천상에서 키스하는 법을 배운 다음 서로 이 능력을 시험하도록 같은 때에 어린아이처럼 살라고 보내진 거야. ”

(중략)

이해하겠지, 우리는 서로 처지가 달라. 당신은 날개를 달고 구름 너머로 날아갈 수 있지만, 그런 자유가 있지만 여자인 나는 땅바닥에 붙어 어린 새가 위험하지 않도록 날개로 감싸주어야 해..”

- 2. 334-335



* 라라의 마지막 고백

. “안녕, 나의 위대한 분이여. 당신은 나의 보람이었어요. 안녕, 나의 빠르고 깊은 시냇물이여. 나는 온종일 흐르는 당신의 물소리를 사랑하였는지도 몰라요. 또한 당신의 차디찬 물결 속에 잠기기를 좋아했는지도 몰라요.”

- 하권. 834


. “안녕, 안녕, 내 사랑, 내 자부심이여, 안녕, 내 빠르고 깊은 강이여, 안녕. 내가 하루 종일 철썩이는 당신의 물결을 얼마나 좋아했는지 몰라, 당신의 차가운 물결에 뛰어드는 걸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몰라.”

- 하권. 465


. “안녕, 내 위대한 사람이여, 내 사랑이여, 안녕, 나의 자랑이여, 나의 빠르고 깊은 강이여, 안녕. 온종일 당신이 철썩이는 소리를 내가 얼마나 사랑했는지. 당신의 차가운 물결로 뛰어드는 걸 내가 얼마나 좋아했던지.”

- 2. 397


. ”잘 가, 나의 위대하고 사랑스러운 그대, 잘 가, 나의 자랑, 잘 가, 나의 빠르고 깊은 시냇물이여, 하루 종일 출렁이는 당신의 물소리를 정말 사랑했고, 당신의 차가운 물살 속에 몸을 던지는 것을 정말 사랑했어.”

- 2. 446



박형규 역자의 라라는 일관되게 존댓말을 사용한다. 다른 역자들이 라라와 상대방의 관계가 발전함에 따라 자연스럽게 반말로 전환한 것과는 다른 점이다. 물론 계속 존댓말을 사용한다고 해서 라라의 강단있고 중심잡힌 성격이 가려지는 건 아니다. 다만 가장 오래된 판본이라 시대적으로 좀 old한 부분은 어쩔 수 없다. 박형규의 라라는, 말투는 부드럽지만 행동은 확실한 사람이다.


홍대화의 라라는 다르다. 자신이 원하는 바를 더 정확하게 표현하고, 관계를 주도한다. 박형규의 라라가 말투와 행동의 주도권이 달랐다면 홍대화의 라라는 말투와 주도권이 일치한다. 홍대화의 라라는 사랑도, 사랑하는 사람을 보호하는 일도 확실하고 적극적이다.


최종술과 김연경의 라라는 내가 읽기에는 비슷하게 생각됐다. 상대와 대등한 관계를 지향하는. 이런 라라의 성격은 박형규와는 완전히 다르고, 홍대화와도 결이 다르다. 특히 최종술의 라라는 가장 최근인 만큼 가장 자연스러운 말투를 구사한다. 이는 그녀의 비극을 독자로 하여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게 한다. 마치 지인의 이야기인양. 반면에 김연경의 라라는 전반적인 캐릭터는 최종술의 라라와 비슷하게 느껴지지만 가끔씩 튀어나오는 문어체적 단어/말투가 약간의 거리감을 느끼게 한다.


라라는, 자신이 선택한 사랑이 주는 고통까지 감내한다. 앞에서 말했듯 라라는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어도 선택 자체를 포기하지 않았으며, 상대방이 원하는 방식으로 구원을 구하지 않았다. 빠샤도 유리도 라라를 위한다는 명분 아래 라라를 떠나지만 라라는 그들의 명분을 인정하지 않는다. 라라가 스스로를 그리고 사랑하는 사람을 구하고픈 방식은 그들의 방식이 아니었다. 결과적으로 그들의 선택이 옳았던 것도 아니었고.


라라가 유리의 관 앞에서 하는 마지막 고백, ‘당신의 차가운 물 속에 잠기는 것까지 사랑했다는 말이야말로 강한 라라가 유약한 유리를 마지막으로 용서하는 말이다. 유리가 했던 잘못된 선택과 그로 인해 연쇄적으로 발생한 상실들. 유리는 라라를 잃고, 라라는 유리를 잃었다. 상실은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유리는 라라와 자신의 딸을 잃었고, 라라와 유리의 딸은 전란의 와중에 어머니와 보호자를 잃었고 아버지를 알 기회를 잃었으며, 까덴까(빠샤와 라라의 딸) 또한 아버지와 어머니를 모두 잃었다. 그리고 저자가 얘기해 주는 이후의 일들 또한 독자로서는 마음 아플 따름이다. 유리는 그 모든 것을 겪기 전에 (행복하게도) 죽음에 이르렀고. 하지만 라라는 자신이 원해서 유리라는 차가운 물에 뛰어들었음을 이야기한다. 물론 라라가 고백하는 시점은 내가 위에서 서술한 상실이 모두 일어나기 전이긴 하지만, 라라는 그 모든 것을 감수하고 유리를 용서하는 것이다. 자신이 선택했으므로. 이는 당신이 옳았다, 그러므로하는 용서가 아니다. ‘그 때 당신은 틀렸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용서하는 것이다.


유리가 빠르고 깊은, 차가운 시냇물이었다면 라라야말로 짙푸른 바다와 같은 사람이었다. 지금도 여전히 삶을 살아내는 수많은 라라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싶은 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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