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흐테르 - 회고담과 음악수첩
브뤼노 몽생종 지음, 이세욱 옮김 / 정원출판사 / 200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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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흐마니노프는 누가 연주해도 아름답지만 리흐테르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은 더욱 특별했다. 어쩌면 그날 내 기분이 그랬는지도 모르고 그냥 호르몬이 그랬는지도 모르지만 다른 연주자였으면 너무 속주한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를 그의 피아노에 난 심장이 흔들리는 느낌이었다. 때로는 그렇게 확신에 찬 타건이 위로가 되는 날이 있는 법이다. 리흐테르에 대한 내 애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그의 비르투오소로서의 삶이 궁금했지만 그의 전기보다는 그의 생각을 알고 싶었다. 그래서 이 책을 집어들었다.


사람들은 나에 관해서 말을 하거나 글을 쓴다. 그런데 그 말이나 글들이 너무나 거짓되고 터무니없다.

-      47. 머리말


그의 말대로 여기서 그는 자신의 이야기를 한다. 마냥 화사하지는 않았던 어린 시절과 자연스럽게 음악에 몸 담게 되었던 것, 뒤늦게 모스크바 음악원에 입학해 교육을 받고 음악가로서의 삶을 시작하며 만났던 사람들사실 이 책은 그가 만난 음악가들에 대한 회상이 큰 부분을 차지한다.


그 중 내가 가장 관심 있었던 두 사람은 프로코피예프와 마리아 유디나. 이전에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에 대해 읽으면서 난 프로코피예프에 대해 약간의 선입견을 갖게 됐다. 이기적이고 조금은 기만적인 사람. 리흐테르 또한 프로코피예프에 대해 마냥 칭송을 하지는 않는다. 그의 난폭한 기질에 대해 이야기하고(101), 그가 라흐마니노프에게서 영향을 받았으면서도 그를 싫어했던 것에 대해 비판하며(102) 자신은 인간 프로코피예프보다 그의 음악과 더 많은 관계를 맺었다(133)고 고백하기도 한다. 하지만 음악에 대해서만큼은 칭송해 마지않는다. 난 그게 너무나 신기했다.


프로코피예프가 살아 있었을 때, 우리는 그에게서 늘 기적을 기대할 수 있었다. 마치 마술 막대를 휘둘러 무엇이든 신기한 보물로 바꾸어 버릴 수 있는 마술사가 우리 앞에 있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실제로 그가 휙 하고 마술 막대를 휘두르면 「돌꽃의 전설」이나 「신데렐라」 같은 작품이 출현하곤 했다.

 그의 걸작 가운데 하나인 「축배」라는 짤막한 합창곡이 생각난다. 이것은 음악 작품이라기보다 하나의 계시다. 드라이포인트 판화처럼 치밀하고 날카롭고 쩌렁쩌렁한 교향조곡 1941」도 생각난다.

-      163. 프로코피예프에 관하여


리흐테르는 프로코피예프를 마치 신화적인 존재처럼 우러른 듯 하다. 심지어는 그가 죽었을 때조차 슬퍼하지 않았다.


나는 프로코피예프를 생각했다. 하지만 슬픈 생각이 들지는 않았다.

달리 어쩔 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하이든이나 안드레이 루블료프가 죽었다고 해서 내가 슬퍼했던가? 하고 나는 생각했다.

-      165. 프로코피예프에 관하여


리흐테르 덕분에 난 프로코피예프에 대해 조금은 편하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그렇다고 전에 그를 엄청나게 미워한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내가 사랑하는 라흐마니노프와 쇼스타코비치에게 심술궂게 굴었던 건 사실이었으니. 그렇다고 그의 음악을 안 들은 것도 아니지만.



마리아 유디나에 대해서는 더 흥미롭게 읽었다. 전에 쇼스타코비치의 회고록 리뷰에서도 얘기했듯 난 마리아 유디나에 대해 관심이 많다. 그래서 리흐테르의 언급에 대해서도 흥미 있게 읽었다. 결론부터 말하면 리흐테르는 유디나를 그닥 좋아하지는 않았다. 유디나의 특이한 성정을 도저히 받아들이지 못했던 듯 하다. 리흐테르의 뉘앙스는 유디나가 먼저 그를 싫어해서인 것 같지만 그건 알 수 없지 않나. 물론 리흐테르도 유디나의 자선 활동에 대해서는 존경의 뜻을 보인다.


마리아 베냐미노브나 유디나는 정말이지 굉장한 인물이었다. 나는 그녀를 알기는 했으나 그리 가까운 사이는 아니었다. 사실 그녀가 워낙 기이하다 보니 모두가 그녀를 피했다. 그녀 쪽에서는 나에 대해서 상당히 비판적이고 석연치 않아 하는 태도를 보였다. 나에 관한 그녀의 평은 이러했다. “리흐테르? 글쎄, 라흐마니노프가 딱 어울리는 피아니스트지.”

 다른 사람은 몰라도 그녀가 그렇게 말했다면 이건 별로 듣기 좋은 소리가 아니다. 그녀 자신도 이따금 라흐마니노프의 작품을 연주했지만 말이다.

-      111. 전쟁의 시기


물론 존경할 만한 점도 없지는 않았다. 그녀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살피고 집으로 맞아들여 거두었으며, 스스로 부랑자처럼 생활했다. 참으로 기이한 여인이었다. 요컨대 그녀는 늘 무언가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어했던 비범한 예술가였다. 진실을 말하자면, 나는 그녀가 별로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자기 기분에는 충실했을지 몰라도 작곡가들에 대해서는 정직함이 결여되어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럼에도 나는 그녀의 장례식에서 연주를 했다. 라흐마니노프를……
- 113
. 전쟁의 시기


이해가 가지 않는 건 아니다. 유디나가 스탈린 정권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건 그녀가 리흐테르가 싫어했던 기행을 아무렇지 않게 행하는 강단을 보였기 때문이니. 그러나 리흐테르가 유디나를 좋아하지 않았던 가장 큰 이유는 유디나가 작곡자의 의도를 헤아리기는커녕 자신의 의도를 덮어씌워 연주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리흐테르가 생각하는 연주자란 작곡자의 의도를 명확하게 구현하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연주자란 하나의 거울이다. 음악을 연주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성으로 음악을 오염시키는 것이 아니라 <온전한> 음악을 연주하는 것,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작곡가가 써놓은 <모든> 지시를 기억할 수 있는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그것이 안 되니까 <해석>을 하게 되는 것이다. 나는 그런 것에 찬성할 수 없다.

-      233. 거울


이건 사실 리흐테르만의 생각이라기 보다는 당시 음악계의 흐름이 그렇게 흘러가기도 했다. 내가 어제 읽은 헤럴드 숀버그의 『위대한 피아니스트』에는 연주자의 해석을 지양하고 악보에 충실하게 연주를 하는 경향이 강화된 것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고 있다.


이 밖에도 이 책에서 리흐테르는 네이가우스를 비롯해서 에밀 길렐스, 로스트로포비치와 쇼스타코비치, 오이드라흐 등 자신이 만났던 많은 음악가들에 대해 이야기한다. 물론 자신의 삶과 음악에 대해서도 솔직하게 이야기하고 있다. 당연히 모든 일화들이 흥미로웠지만 내가 가장 인상 깊었던 건 리흐테르 자신이 연주자로서 갖고 있는 자부심이었다. 물론 그럴 만 하다. 그는 평생 동안 음악을 사랑했으며 고뇌했고 고민을 통해 얻은 원칙을 실현했던 사람이니까.


나는 어떤 작품을 내가 이해한 대로 연주해낼 수 있을까 하는 문제를 놓고 의심을 가져본 적은 있다. 하지만 어떤 작품을 다른 식이 아니라 이렇게 연주해야 한다는 점에 대해서는 의심을 품지 않았다. 처음부터 늘 그러했다. 왜 그랬을까?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나의 확신은 악보를 주의 깊게 보았던 데서 나온 것이다. 악보에 담긴 것을 비추는 거울이 되는 데에는 오로지 악보를 잘 보는 것만이 필요하다.

 쿠르트 잔데를링이 어느 날 나를 두고 이렇게 말했다. “그는 연주를 잘 할 뿐만 아니라 음표를 읽는 법도 알고 있다.”

 그건 나를 별로 나쁘지 않게 보아준 것이다.

-      246. 거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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