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안데르센 동화전집 (완역본) ㅣ 현대지성 클래식 11
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 지음, 한스 테그너 그림, 윤후남 옮김 / 현대지성 / 2016년 12월
평점 :
인어 공주의 줄거리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바다 밖의 세상을
동경해서 난파선에서 주워온 물건들로 자신의 화단을 꾸몄던 소녀. 언니들이 들려주는 바다 밖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도 나갈 수 있게 되길 손꼽아 기다리던 소녀. 열일곱 살이 되어 처음 바다 밖 세상을 구경할
수 있게 되었던 날 우연히 마주친 왕자님을 폭풍 속에서 구해내어 바닷가로 밀어내고 자신은 그저 숨어서 수도원에 머물고 있던 인간 소녀가 왕자님을
데리고 가는 걸 지켜볼 수 밖에 없던 소녀. 이후 그를 그리워하여 그와 함께하기 위해 목소리를 대가로
인간의 다리를 얻어낸 소녀. 바다 밖으로 나가 꿈에 그리던 왕자님 곁에 있게 되었지만 자신의 마음을
고백할 수도, 자신이 그에게 해주었던 일을 이야기해 줄 수도 없었던 소녀. 그래서 왕자가 이웃나라 공주이자 자신의 구원자라고 믿고 있는 수도원 소녀와 결혼하는 걸 지켜만 보았던 소녀. 그리고, 언니들이 자신을 구하기 위해 머리칼을 주고 구해온 칼을
바닷속에 던져 버리고 물거품이 되어버린 소녀.
어릴 땐 왕자가 미웠고 왕자를 찌르지 않은 인어 공주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남은
가족들은 어떡하라고. 언니들이 그렇게까지 해줬는데! 조금
커서는 글을 배우지 않은 인어 공주가 답답했다. 왕자가 하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다면 글도 배울 수
있는 거 아닌가? 물론 지금 다시 읽어보니 글을 배워서 고백하기에는 시간이 모자랐을 거 같긴 하다. 글로 설명을 했더라도 왕자는 처음부터 인어 공주를 여동생처럼 사랑했을 뿐이니 결말이 바뀌었을 거 같지도 않고. 그러니까, 왕자는 잘못한 게 없다.
이웃나라 공주도 해안가의 왕자를 발견해서 돌봐주었으니 구해준 거 맞고. 이들 인간들이 서로
사랑에 빠진 게 죄는 아니다.
다만 여전히 인어 공주는 가여울 수 있다. 사랑을 이유로 물거품이
되어버렸으니까. 하지만, 정말 그럴까? 그녀는 사랑을 위해 자신을 희생한 안타까운 소녀일까?
아니다. 인어 공주는 사라진 게 아니다. 물거품이 되어버렸을지언정, 그리하여 공기 중에 흩어졌을지언정.
이번에 인어 공주를 다시 읽으며 난 결말에서 전에는 미쳐 몰랐던 걸 알게 됐다.
형상 중의 하나가 대답했다. “넌 공기의 딸들과 함께 있단다. 인어에겐 영혼이 없지. 인간의 사랑을 얻지 못하면 영혼을 가질 수 없어. 인어가 영혼을
얻으려면 다른 힘에 의존해야 한단다. 공기의 딸들도 영혼이 없지만 착한 일을 하여 스스로 영혼을 만들
수가 있지. (중략) 삼백 년 동안 착하게 살면 불멸의 영혼을
얻어 인간들이 누리는 행복을 누릴 수 있단다.” (96쪽)
인어 공주는 자신의 힘으로 영혼을 가질 수 있게 된 거다. 남자의
사랑에 의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위한 일방적인 희생도 아니다. 인어
공주는 사랑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킨 것이다. 자기를 위해 남을 해치지 않는다는. 기존의 해석처럼 그저 인간이 소중해서, 인간을 위해서 인간 외의
존재인 인어가 희생된 게 아니라는 말이다. 이건 그녀의 선택이었고 그 선택은 응답을 받았다. 삼백 년만 있으면, 삼백 년 동안 다른 존재를 해하지 않는 지금의
마음만 지키면.
인간은 필멸의 존재여서 영혼이라는 개념을 만들어 냈다는 게 내 생각이다. 그러니까
난 영혼 불멸이라는 개념을 믿지 않는다. 사후 세계도. 그러나, 인어 공주를 위해서는 영혼이 있었으면 한다. 인어 공주 자신이 공기의
딸에게 얘기했듯, 삼백 년 후에는 하늘 나라로 가기를. 그녀는
그럴 자격이 있다.
PS. 사실 안데르센 동화에서 정말 공기 중에 흩어져 사라진 존재는
따로 있다. 바로 <나무요정>의 드리아스. 드리아스는 자신이 살던 나무를 답답해했고, 수명이 깎여도 좋으니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하여 단 하룻동안 가고 싶은 곳을 모두 다닌 후 다음날
첫 햇살 아래 진주 같은 이슬 한 방울만 남긴 채 영원히 사라진다(996쪽).
난 드리아스의 이야기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하루일 뿐이지만 드리아스는
가고 싶은 곳을 모두 가고 하고 싶은 일들을 모두 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은가? 그렇다고 드리아스가 남을 해치거나 하지 말아야 할 것을 한 건 아니니. 드리아스도
자신의 선택으로 갈망하던 것을 얻었다. 그러니, 사후 세계
따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