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지키다
장바티스트 앙드레아 지음, 정혜용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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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간의 스포 있음)



유서 깊은 작은 수도원 사크라 디 산미켈레의 지하에는 그녀가 있다. 오랜 세월 동안 유폐된 피에타. 그녀를 본 사람들은, 심지어 수도사들까지도 묘한 흥분에 휩싸이게 되고 자신도 모르는 열망을 품게 된다. 여러 사건이 있은 후 이 수도원 지하에 숨겨진 그녀. 수도원장은 이제는 임종의 자리에 있는 '그'가 자신에게 하고픈 말이 있음을 알고 있지만 그를 보러 가기 전에 먼저 자신만이 갖고 있는 열쇠로 그녀를 확인한다. 임종의 자리에 누운 그는 오랫동안 이 수도원에 머물고 있고, 수도사들 사이에서 그의 신분에 관해 말이 나온 적도 있지만 이제는 눈을 감고 입술을 달싹이며 시시각각 죽음에 다가가고 있을 뿐이다. 그는 지난 82년간의 생을 돌아본다. 


1904년 프랑스에서 태어난 이탈리아 인이었던 그는 조각가인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 미켈란젤로보다는 미모라고 불리기를 원한다. 미모 비탈리아니. 1차 대전은 아버지의 생명을 앗아가고 엄마는 피 한방울 안 섞인 '삼촌'이 있는 이탈리아로 그를 보낸다. 그저그런 석공이었던 삼촌 알베르토는 늘 술만 퍼마시며 허송세월을 하다 갑자기 소도시 피에트로달바로 이주하고, 거기서도 미모를 학대하지만 이제 열두 살이 된 미모는 자신이 뭘 할 수 있는지 이미 알고 있다. 그리고 아주 우연히, 이 고장의 가장 높은 귀족인 오르시니 후작 가문의 막내딸 비올라와 마주친다.


내가 처음부터 그를 가엽게 여긴 건 그가 왜소증이어서가 아니라 그의 마음이 응답받지 못할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마음이 응답받지 못한 이유도 왜소증은 아니다. 어쩌면 이 이야기는 클리셰로 읽힐 지도 모른다. 신분의 차이, 신체의 차이, 그리고 전쟁... 그러나 미모는 이 모든 것을 뛰어넘는다, 그의 재능으로. 물론 그 악마적 재능이 그를 늘 도와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가 이 모든 상황을, 사람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도 재능 덕분이다. 그러나 그 재능으로도 미모는 비올라를 지키지 못한다. 천재성을 타고난 비올라. 모든 것을 기억하고 모든 상황을 꿰뚫어 볼 수 있었던 비올라. 하지만 세상은, 심지어 가족조차도 그녀에게 친절하지는 않았다. 그녀는 여성이라는 젠더를 형벌로 지고 살아간다. 


아니, 미모는 그녀를 지킨다. 


"빌어먹을, 넌 정상적일 순 없는 거야? 네 평생 단 한 번만이라도, 그저 정상적인 거 말야."


(중략)


"아니야, 미모. 그 말이 맞아. 내 평생 정상적이기 위해서 네가 필요했어. 그런 노력을 할 때 넌 내 구심점 노릇을 하니까. 그래서 네가 늘 유쾌한 존재일 수는 없는 거지. 하지만 내 안에는 아무리 너라도 절대 고치지 못할 비정상성이 있어. 그건 내가 여자이기 때문이고 그 점에 관한 한 내가 할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지. " (594 - 595쪽)


비올라의 천재성과 그것을 압박하는 가족과 사회에 대한 반발은 비앙카를 통해 드러난다. 중세 이후 서양 예술사에서 그리고 기독교에서 곰은 억제되어야 할 힘이며 길들여져야 할 야성이었다. 비올라는 비앙카를 지킨다. 비앙카에게서 달아나지도 비앙카를 사냥하거나 구속하거나 혹은 길들이려고조차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비앙카로 인해 비올라도 자신을 지킬 수 있었다. 비앙카의 죽음과 비올라의 죽음이 잇단 건 우연은 아니었다. 그리고 비올라의 죽음이 미모에게 돌려준 것 또한. 



난 확신한다. 이 작품에서 모든 독자들이 전율하는 지점을. 예상을 했다하더라도 미모가 얘기하는 피에타의 비밀이 드러나는 순간, 가슴 속의 울림을 누구도 외면할 수는 없을 것이다. 왜 미모가 비올라를 세 번 배신해야 했는지, 왜 비올라가 그토록 고통받아야 했는지 마지막에서야 모든 게 맞춰진다. 어쩌면 비올라가 한 가장 숭고한 일은 한 인간 - 미모 비탈리아니 - 을 구한 것이었는지도. 그리고 미모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방식으로 비올라를 지킨 것인지도 모르겠다. 또 어쩌면 그건 세상을 구한 것인지도.



PS. 원제 Veiller sur elle를 직역하면 '그녀의 위에서 깨어서 지키다'라는 뜻이다. 이 제목은, 비올라보다 작은 키의 미모가 지하에 놓인 피에타 상 위에서 산 40여년의 세월만을 말하는 것만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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