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페어워닝(마이클 코넬리,강동혁 역. RHK. 2024. 484쪽)
: 잭 매커보이 시리즈. 잭은 이제 인터넷을 중심으로 하는 소비자 고발 매체에서 일하고 있다. 상품의 허위 정보나 사기꾼 근황 등을 기사로 쓰고 있던 어느날, 형사 두 명이 찾아와 그가 1년 전 하룻밤을 같이 보낸 여성이 살해당했다며 그의 알리바이를 캐묻는다. 사인이 특이함을 알게 된 잭은 혼자서 조사를 시작하고, 피해자가 특정 업체를 통해 이부 자매를 찾아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형사나 정부요원이 주인공인 소설에서 기자는 참 비호감인데, 기자가 주인공인 소설에서는 또 형사가 너무나 무능하고 재수없다. 잭은 전작에서의 경험을 되살려 맘껏 사건을 파헤치고 결국엔 악을 처단하지만 과정이 녹록치는 않다. 아무래도 파트너격인 레이철 월링이 더이상은 FBI가 아닌 것도 영향이 있고. 그래도 사건의 전말이 꽤 신박한 편이어서 재밌게 읽었다. 마지막 장면도 흥미진진했고. 더 좋은 건 앞으로 이 시리즈가 계속될 거라는 암시.
2. 파인드 미(안드레 애치먼, 정지현 역. 잔. 2019. 300쪽)
: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의 속편. 연작 단편으로 읽어도 되고, 장편으로 읽어도 될 듯. 첫작품 「템포」에서 엘리오의 아버지 새뮤얼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중년 남성의 로망 실현인 거 같아서 좀 불쾌했다. 마지막 작품 「다 카포」를 읽고 나서는 왜 그 얘기가 필요했는지는 이해했으나 여전히 여성 캐릭터를 악용했다는 생각은 지울 수 없다. 그래도 「카덴차」부터는 엘리오의 설렘이 되살아났고, 결국엔 올리버와 엘리오가 함께 하게 되어서 그나마 다행이란 생각은 든다. 꽉 닫힌 결말을 좋아하는 나같은 사람을 위해 써준 속편이겠지만, 첫작품 때문에 여러가지로 의미가 반감된 거 같다.
3. 이웃집 소시오패스의 사정(조예은 외. 앤드. 2024. 288쪽)
: 인격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하는 앤솔러지. 사실 범죄 소설을 기대하고 집어들었지만 직접적인 범죄보다는 반사회적 인격장애를 가진 인간들이 벌이는 사건들에 가깝다. 중간에 살짝 지루하기도 했다. 이야기를 가장 잘 짠 건 조예은 작가이지만 내가 제일 재밌게 읽은 건 정지음 작가의 「안뜰에 봄」.
4. 깨끗한 살인(이지유. 안전가옥. 2023. 228쪽)
: 비오는 수요일 밤, 교회 지하실에서 끔찍한 살인 사건이 일어난다. 피해자는 교회에서 성실하기로 유명했던 대학생 허재우와 그의 동생이자 문제아 취급을 받던 고등학생 연서. 허재우는 성기가 잘린 채 죽고 칼에 찔린 연서는 의식을 잃은 채 병원으로 이송되지만 깨어난 후에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기억하지 못한다. 공감각자인 심리학자 로사는 소리를 색으로 볼 수 있는데, 그 색으로 또한 사람들이 하는 말에서 묻어나는 감정을 알 수 있다. 정시우 경사는 상사의 명령으로 어쩔 수 없이 로사의 자문을 받아들이기로 하고, 로사는 교회에 새신자로 위장해서 들어간다.
사건의 전말은 처음부터 짐작 가능했고, 교회 건물의 상징성도 너무나 뻔했지만 두 주인공 캐릭터가 맘에 들어서 즐겁게 읽었다. 다만 비둘기까지 활용한 건 좀 너무 오컬트쪽으로 간 게 아닌가 싶다. 비둘기만 안 나왔어도 현재 한국 개신교의 위선과 세속성을 비판하기에 충분했을 텐데.
5. 블랙하우스(피터 메, 하현길 역. 비채. 2022. 448쪽)
: 스코틀랜드의 루이스 섬. 이곳 보트 창고에서 배를 갈라 내장을 꺼낸 뒤 갈고리에 매달린 시신이 발견된다. 몇달 전 일어났던 사건과 유사성을 보여, 해당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 핀 매클라우드가 이 섬의 수사본부로 파견된다. 핀은 사실 이 섬 출신이지만 20여년 동안 한번도 이 섬에 돌아오지 않았다. 얼마 전 사랑하는 아들을 뺑소니 사고로 잃고 아내와도 헤어진 그는 피폐한 가운데 과거의 괴로웠던 기억과 묘하게 어긋나있는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 이상한 살인 사건과 부딪친다.
처음엔 에인절 살인사건이 맥거핀이라고 생각했다. 핀이 루이스 섬에 다시 오고 이곳에 머물게 하기 위한. 그래서 과거 이야기 비중이 높은 거라고. 어떤 면에선 그게 맞겠지. 이 책은 살인 사건보다 어쩌면 성장 소설에 더 가까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과거가 현재 사건의 핵심이기도 하다. 진실은 예상 못했지만 알고 나서 돌아보니 여러 암시가 있기는 했다. 바닷바람과 폭풍, 가엾은 새끼 새들과 절친이었던 아슈타르의 차가운 시선 때문에 습한 소설이지만 매우 몰입해서 읽었다. 이 시리즈 다 출간됐음 좋겠다.
6. 키코 게임즈 : 호모사피엔스의 취미와 광기(심민아. 민음사. 2022. 236쪽)
: 게임 기획자로 일하는 유라는 이미 번아웃된 지 오래지만 아름다운 뭔가를 만들겠다는 일념으로 어지럼증을 참으며 출근한다. 하지만 입사 전에는 게임에 문외한이었던데다 입사 후에도 원하지 않는 부서로 흘러다니며 어찌저찌 버텨온 유라는 계속 고민된다.
입심 좋은 작가다. 캐릭터들도 다 생생하다. 마치 내가 화자와 함께 근무하는 기분. 그리고 그 바쁜 와중에도 게임 산업의 성상품화에 대한 지적과 판교 피플의 과한 힙 집착에 대한 블랙 유머도 빼먹지 않는다. 처음엔 약게 굴지 못하고 남자들 틈에서 이리저리 치이기만 하는 유라가 답답했는데 결말을 읽고 결국 승자는 유라라는 생각을 했다. 유라가 행복해 지기를... 그리고 작가님은 신작을 내놓으시길.
7. 다시 만난 사랑(베로니크 드 뷔르, 이세진 역. 청미. 2024. 300쪽)
: 화자 베로니크는 엄마와 친구처럼 지낸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외로움을 느끼지 않도록 세심하게 마음을 써왔는데, 어느날 엄마는 50여년 전에 허무하게 헤어졌던 첫사랑과 다시 연락이 닿았다고 한다. 둘 사이의 조심스러운 탐색과 재회를 지켜보는 베로니크는 엄마의 생활이 변하고 마음이 멀어지는 것을 느끼며 복잡한 감정을 느낀다.
이야기 자체는 흔할 수 있다. 노년에 재회한 첫사랑과의 사랑 이야기. 그런데 이 이야기를 해주는 화자가 딸이라서 이야기가 달라진다. 딸이 느끼는 질투심과 서운함, 혼란스러움 또한 어쩌면 흔한 이야기일 수 있지만 저자는 매우 섬세한 서술로 이를 유치하지 않게 잘 드러낸다. 특히 엄마랑 더 친했지만 아빠의 딸로서도 느낄 수 밖에 없는 미묘한 감정은 딸인 나로서도 크게 공감됐다.
8. 오픈 시티(테주 콜, 한기욱 역. 창비. 2023. 528쪽)
: 뉴욕의 대학 병원 정신의학과 레지던트 줄리어스. 도시를 하염없이 걷곤 한다. 산책을 하며 도시를 받아들이는 줄리어스. 나이지리아 요루바족 출신인 줄리어스는 은사인 일본계 게이 교수의 삶, 이민국이 있던 엘리스 섬과 그 섬마저 들리지 못했던, 노예 무역선을 타고 온 사람들을 생각하고, 오래전에 연락이 끊긴 할머니를 찾으러 브뤼셀에 여행을 가서 극단주의 무슬림과도 대화한다.
처음엔 줄리어스의 차분함이 좋아서 그의 발걸음을 성실히 따라가며 읽었다. 인종 문제에 민감하지만 극단적인 운동에는 선을 긋고 자신의 존재를 함부로 동조시키지 않는 건 맘에 들었지만 후반부에 성범죄는 피해자의 호소에도 불구하고 아무런 언급도, 심지어는 고찰조차 없이 지나간다. 그래서 오만 정이 다 떨어졌다. 저자의 의도가 내가 느낀 대로라면 좋겠지만...
9. 살려 마땅한 사람들(피터 스완슨, 이동윤 역. 푸른숲. 2023. 484쪽)
: 경찰에서 쫓겨나 사립탐정이 된 헨리 킴볼. 경찰이 되기 전 가르쳤던 학생인 조앤이 나타나 자신의 남편 리처드의 불륜을 확인해 달라고 한다. 뭔가 석연치 않은 기분이지만 어려운 의뢰도 아닌 거 같아 착수하는 헨리. 그 와중에 리처드의 불륜 상대로 의심되는 팸과 친해지고, 그녀로부터 자백을 듣고자 했지만 듣지 못한 채 미행을 하던 중 둘이 빈 집에서 만나는 걸 목격한다. 증거를 잡으려 했던 그는 세 발의 총성을 듣고 둘의 시신을 발견한다.
전작 『죽여 마땅한 사람들』이 잘 기억이 안 나긴 했지만 읽다 보니 슬슬 기억이 되살아나기도 했다. 사실 전작 몰라도 재밌게 읽을 수 있다. 다만 기억나는 건, 전작에선 불륜 저지르는 인간들을 죽여 마땅하다고 했던 거 같은데 그럼 이 작품에서 살려 마땅했던 건 누구야? 설마, 후회하고 헤어지려 했다는 이유로 팸은 아니겠지? 어쨌든 전작보다 훨씬 재밌었다.
10. 여명으로 빚은 집(N. 스콧 모머데이, 이윤정 역. 혜움이음. 2021. 348쪽)
: 2차 대전 참전 후 트라우마에 시달리는 원주민 청년 아벨. 아름다운 고향 왈라토로 돌아오지만 마음을 추스리기는 힘들다. 아벨의 방황과 왈라토의 아름다운 자연 아래에서 순응하는 삶을 사는 원주민 카이오와 족의 이야기.
원주민의 삶을 잘 이야기해 준다. 분명 아름다운 책이긴 했는데 여러가지 내 상황 때문에 집중을 할 수가 없었다. 다만 원주민들의 당시 삶의 비참함이 너무 크게 부각되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그랬다면 당시의 내 멘탈로는 견디기 힘들었을 테니. 언젠가 다시 한번 읽어보고 싶은 책이다.
11. 모우어(천선란. 문학동네. 2024. 324쪽)
: 8편의 단편들. 늘 그렇듯 다 좋았다. 「너머의 아이들」은 처음엔 이해를 못하다가 순간 깨닫고 울컥했다. 회사였는데. 모든 작품들의 결말에서 희미하게나마 희망을, 아름다움을 발견했다면 내 머릿속에 꽃밭만 가득한 걸까? 가장 아름다웠던 건 「얼지 않는 호수」. 하지만 난 소설 속으로 끌어당기는 세계는 「쿠쉬룩」.
12. 뭔가 유치하지만 매우 자연스러운(캐서린 맨스필드, 박소현 역. 민음사. 2020. 200쪽)
: 복잡다단한 사람과 인간관계, 그리고 삶. 13편의 단편이 실려 있는데 하나하나의 이야기들이 다 한편으로는 씁쓸했지만 또 다른 면에서는 공감을 하지 않을 수 없는, 어쩌면 우리도 매일 겪을 지 모르는 그런 에피소드들이었다. 그래도 작가 특유의 반짝임은 가려지지 않았다. 가장 좋았던 건 표제작. 신선한 충격을 받았달까.
13. 음악소설집(김애란,김연수,윤성희,은희경,편혜영. 프란츠. 2024. 272쪽)
: 이 작가들을 모아서 앤솔러지를 내다니, 편집자의 능력이란! 저자들이 모두 내공이 있는만큼 작품 모두가 다 좋았다. 대놓고 음악이 소재인 경우도 있고, 삶 속에서 배경처럼 흐르는 음악을 끼워넣은 경우도 있었지만 음악이야 누구에게나 삶의 일부일테니 주제와 얼마나 부합되는지를 따지는 건 무의미할 터. 가장 좋았던 건 윤성희. 이 작가는 늘 내가 읽고 싶은 이야기를 써준다.
14. 8월에 만나요(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 송병선 역. 민음사. 2024. 184쪽)
: 아나 막달레나 바흐는 8월이 되면 엄마가 묻혀 계신 섬을 방문한다. 연고도 없는 섬에 묻히기를 바랐던 엄마의 무덤에 글라디올러스 한 다발을 올려 놓고, 하룻밤을 묵은 뒤돌아온다. 어느밤, 호텔 바에서 아나는 한 남자를 만난다.
문득 이 작가가 그리워져서 읽었다. 작가의 유작이고, 출간되기까지 나름 힘들었던 작품이다. 그래서 한장 한장 소중히 읽었다. 마지막까지 특유의 관능성을 잃지 않았던 작가. 처음 계획했던 대로 3부작이 모두 출간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15. 그 변기의 역학(설재인. 한겨레출판. 2024. 288쪽)
: 만 39세의 작가 성아정은 운좋게 청년임대주택에 당첨되어 투룸 빌라에 입주한다. 나이가 먹도록 가시적인 성과를 내놓지 못하는 자신의 삶에서 유일하게 가족들에게 인정받은 성취다. 그런데 어느날 밤, 화장실에서 나는 요란한 소리에 눈을 떠보니 변기물이 저절로 내려가고 고여 있는 물이 하나도 없다. 이른바 봉수파괴. 윗집에서 변기에 이상한 물질을 쑤셔넣어 배관 전체가 막혀버린 것이다. 아정은 LH에 전화를 해보지만 소심하게 버벅거리는 바람에 해결도 못하고, 윗집에 따지는 대신 윗집을 관찰하기 시작한다. 그런데 당첨자 외엔 입주할 수 없는 이 임대주택 윗집에 다른 사람이 동거하고 있는 걸 알게 된다.
여러 면에서 그로테스크하다. 봉수파괴는 맥거핀이었을 뿐. 저자가 정말 얘기하고 싶었던 건 노인부양과 어린이/노인에 대한 (정서적)학대인 듯 하다. 솔직히 얘기하자면 이제껏 읽었던 이 작가의 작품들 중 나와 가장 결이 맞지 않았다. 작가는 늘 문제에 대해 잘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했었는데, 이건 좀... 게다가 아정이 왜 아빠한테는 별 악감정이 없는지도 이해가 가질 않았다. 따지고보면 모든 일의 원흉 아닌가?
16. 카산드라(크리스타 볼프, 한미희 역. 문학동네. 2016. 204쪽)
: 아폴론에게서 예언 능력을 부여받았으나 저주 또한 받아서 누구도 그녀의 예언을 믿지 않는 트로이의 공주. 아가멤논의 포로가 되어 폭풍우가 치는 바다를 힘겹게 건너, 아가멤논의 아내이자 미케네의 왕비 클리타임네스트라에게 죽임당하기 위해 가는 중이다. 그 여정 동안 카산드라는 길고 길었던, 어쩌면 바로 어제 같았던 트로이 전쟁과 어린 시절, 그리고 형제자매들을 회상한다.
신화에서 카산드라의 비중은 높지 않다. 그냥 불운했던 예언자였을 뿐. 하지만 이 작품에서 그녀는 생생하게 되살아난다. 자신의 의지를 가지고 운명 앞에 당당히 서는 여성으로. 어리석은 남성들의 우습지도 않은 헛짓거리- 전쟁을 막을 수 있는 방안을 모두 흘려듣는 트로이의 왕 프리아모스와 멍청하게도 남의 아내를 빼앗아 이 모든 사단의 원인이 됐으면서 돌려줄 수도 없게 빼앗겨버린 오빠 파리스, 전쟁터에 출정했으면서도 여자 얘기에 홀딱 넘어가버린 아킬레우스 등 -의 난장판이었던 트로이 전쟁에서 제정신이었던 한 사람의 국민으로.
사실 『일리아드』와 『오딧세이아』는 아직 안 읽었다(해마다 연초에 한번씩 꺼내서 쓰다듬어 보는 서너 권 중 하나이긴 하다). 이 책보다 먼저 읽었어야 했을 지도 모르지만, 이 책을 읽고 읽는 것도 좋을 거라 생각한다.
17. 9교시 소원(김사라,차신환,이은주. 안전가옥. 2024. 238쪽)
: 변두리 분식집에 있는 소원의 벽. 유명 배우가 그 벽에 자신의 소원을 적은 게 이루어졌다는 소문 때문에 맛없는 떡볶이에도 불구하고 분식집은 늘 만원이다. 이 소원의 벽에 소원을 적는 십대들의 이야기. 살짝 뻔하고 그래서 시시하지만 주인공들이 귀여워서 읽을만 했다. 가장 맘에 들었던 작품은 「90ft」.
18. 달콤한 살인 계획(김서진. 나무옆의자. 2024. 340쪽)
: 정신병원에서 막 퇴원한 홍진. 세상일은 잘 모르겠지만 한 남자를 죽여야 한다는 건 안다. 이지하. 그는 소명을 죽였다. 소명의 귀신은 홍진에게 늘 말을 건넨다. 홍진은 아무도 없는 낡은 건물에 정육점을 차리고, 이지하를 관찰하기 시작한다. 한편 과학수사대 소속 화인은 오래전 여중생 살인사건에서 자신이 찾아낸 증거가 과연 상사가 심어놓지 않았을지 확신할 수 없다. 다시 조사하고 싶은 그에게 시청 복지과 소속이라는 여성이 접근한다.
이 작가의 작품은 스릴러의 외피를 쓰고 있지만 범인이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홍진의 집요함과 그 아래 숨어 있는 상처. 왜 홍진이 생전에는 친하지도 않았던 소명의 죽음에 집착하는지, 왜 이지하로부터 한마디를 듣고 싶어하는지. 작가는 결말에서도 범행의 전모를 서술해 주거나 하지 않지만, 난 그 놈이 범인이라고 확신한다. 하지만 얘기했듯, 범인이 누구든 어떻게 했든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건, 홍진이 이제는 괜찮아질 거라는 거.
19. 내 이름은 태양꽃(한강(지은이), 김세현 (그림). 문학동네. 2002. 111쪽)
: 한강 작가의 동화. 한강 작가의 작품은 이미 거의 다 읽어서 이 책을 얼른 사서 읽었다. 나 자신을 좀 쉬어가게 해 주고 싶기도 했고. 책 소개에도 나와 있지만 어른을 위한 동화이다. 좋지 않은 환경에서 태어나 남의 땅을 부러워하지만 어찌됐든 여기 이곳에서 주어진 것만 가지고 열심히 노력해 보지만 결국 상처받고 마음의 문을 닫아버리는 꽃의 모습에 자신을 투영하기란 누구에게나 어렵지 않을 듯. 하지만 누구나 태양꽃처럼 뉘우치고 나아가지는 못하지. 많이 부끄러워지는 동화였다.
20. 잠자는 남자(조르주 페렉, 조재룡 역. 문학동네. 2013. 164쪽)
: 좁은 방 장의자에 머무는 너. 먹고, 자고, 걷고 다시 돌아와서 자고. 너에 대한 집요한 관찰과 사색으로 완성한 이야기. 자전적 소설이라기에 더 열심히 읽기는 했지만 내 상황 때문에 집중이 힘들었다. 그래도 그렇게 부유하다 잠드는 너의 모습이 인생 자체와 같다는 건 느낄 수 있었다. 네 방황의 종착역이 잠이듯, 인생의 종착은 죽음이니.
21. 가벼운 점심(장은진. 한겨레출판. 2024. 316쪽)
: 6편의 단편들. 이 작가를 오랜만에 읽는 것 같은데 이제껏 읽었던 이 작가의 작품들 중 가장 순한 느낌이었다. 가장 좋았던 건 「나의 루마니아어 수업」.
22. 247의 모든 것(김희선. 은행나무. 2024. 224쪽)
: 247이 죽었다. 정확히는 247번째 확진자. 변종 니파바이러스는 빠르게 확산됐고, 전세계는 체온감지기와 마스크 필수를 넘어서 결국에는 해열제마저 처방을 통해 바이러스 감염이 아닌 단순 열이라는 걸 확인받아야 복용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와중에 247은 마지막 남은 슈퍼전파자이자 최후의 숙주로서 우주선에 태워져 멀리 우주로 격리되었고, 결국 죽은 것이다. '기록자'는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어떻게 감염이 되었고 왜 이렇게까지 되었는지 알아보려 한다.
팬데믹을 지나면서 우리가 겪은 모든 것이 담겨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인격을 가진 사람임을 외면하기 위해 번호로 그를 부르며 모든 사태의 책임을 한 사람에게 돌림으로써, 그리고 그의 불행을 지켜봄으로써 안도하고자 하는 마음. 더 큰 권력을 위해서라면 정말 사람을 위하는 길이 뭔지는 중요치 않은 욕망. 인간의 편의를 위해 부당하게 희생되어야 하는 지구의 다른 생명들. 미디어를 활용한 우민 정책 등. 그랬기에 마지막 장면이, 어느 정도 예상은 했음에도 꽤 신선한 충격이었다. 다행이기도 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