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령의 벽
세라 모스 지음, 이지예 옮김 / 프시케의숲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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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북부 어느 숲. 고대 철기의 생활을 재현해 보겠다며 모인 사람들이 있다. 교수 슬레이더와 그의 제자 대학생 피터, 댄 그리고 몰리. 이들과 함께 철기 시대에 관심이 많은 버스 기사 빌이 가족들을 데리고 왔다. 열 일곱 실비와 엄마는 폭력적인 아버지의 심기를 거스르지 않으려 교수와 학생들의 뒤치다꺼리를 말없이 한다.


이 이야기 속 빌의 폭력성 뿐 아니라 나머지 남성 캐릭터의 방관을 넘어선 폭력의 지지는 언급조차 하기 싫다. 하루 이틀도 아니고, 소설 속 배경보다 몇 십 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사라지지 않았으니. 계속 숨을 고르며 읽어야 했다. 학습된 무기력에 화가 나는 건 어쩔 수 없는 거겠지. 결정적인 사건이 일어나기까지의 서사가 어떻게 보면 장황하다고 보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렇게 차근차근 쌓인 무력함이 실비를 그 장벽 앞에 서게 한 거였고 이 이야기는 그 사건이 일어나야 끝날 수 있는 이야기였다.

또 한편으론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볼 수도 있다. 앞에서 말했듯 학습된 무기력 때문에. 많은 가정폭력 피해자들이 도망쳐 나왔다가도 자기발로 돌아가는 이유. 실비가 안전한 곳으로 나왔으면서도 아버지가 허락 안 할거라며 걱정하는 이유. 어머니가 자신뿐 아니라 딸까지 맞고 사는데도 애비 눈치나 보고 있었던 이유.


실비는 앞으로도 갈 길이 멀지만, 곁에 몰리가 없고 - 몰리는 집으로 돌아가야 하므로 - 산파 트루디가 그리고 경찰이 해 줄 수 있는 게 한계가 있는 상황이지만 제발 내가 원하는 해피엔딩이었으면 좋겠다. 이야기 밖에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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