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죽고 싶어서가 아니다 - 논쟁으로 읽는 존엄사, 2021 세종도서 교양부문
유영규 외 지음 / 북콤마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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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의 기자들이 우리나라 최초로 안락사에 관해 기획취재를 하고 그걸 보완해서 책을 냈다. 알려져 있다시피, 스위스에서는 안락사, 정확히 말하면 조력자살(타인의 도움을 받아 자살하는 것)이 가능하다. 저자들은 한국인 2명이 이미 조력자살을 했다는 사실을 알고 직접 취리히에 찾아가 이들을 추적한다. 또 스위스의 여러 전문가들 - 장례업체 대표, 검찰과 법학자, 법의학자 그리고 조력자살 지원단체 대표 등을 만나 이야기를 나눈다. 또한 우리나라의 사례들을 살피고, 마지막 챕터에는 우리나라 전문가들을 모아 대담을 한 내용도 실려 있다.

이 책을 통해 조력자살이 이루어지는 과정을 제대로 알 수 있었다. 사실 그 정도는 인터넷 조금 뒤지면 나오기도 하고, 이전에 읽었던 소설에서도 꽤 사실적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하지만 르포를 읽는 건 또다른 느낌이었다. 좀더 가까운 느낌. 더 서늘하고 더 숙연해지는 느낌. 이런 기획을 하고 취재를 하는 건 분명 의미 있는 일이고 사실을 알아야 하는 독자로서 고마운 일이다. 하지만 책에도 나왔듯이(105), 굳이 한국인 2명의 신원을 알아내기 위해 애쓴 건 이해할 수 없다. 고인의 뜻을 이제와 얼마나 알아낼 수 있을 것이며, 유족을 이제와 왜 또 건드린단 말인가. 책 초반에 실린 '케빈의 편지'만으로도 충분하지 않은가. 저자가 언급한 '사회적 고민'은 신원을 알아내지 않고도 충분히 다룰 수 있다. 이미 이 책에서 그렇게 하고 있지 않나.

사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큰 깨달음은, 간과하고 있던 '자살방조죄'였다. 케빈이 그러했듯 조력자살을 하는 사람과 동행하는 것만으로도 형법상의 죄가 될 수 있다. 아무리 당사자가 맑은 정신으로 긴 숙고 끝에 한 선택일지라도, 동행자를 비롯한 주변인들이 아무리 오랫동안 절절히 만류했을지라도 말이다. 조력자살을 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마지막이 편안한 것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사람들 곁에서 눈 감고 싶은 마음도 있을 것이다. 마지막으로 눈에 담는 사람이 내가 사는 동안 가장 사랑했던 사람이라면 그거야말로 큰 축복일테니까. 물론 조력자살을 선택하는 건 이기적인 결정이고 그러한 이기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그런 욕심을 부려서는 안 된다는 주장이 있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한 결심이고 돌이킬 수 없다면, 마지막에 손 잡아주는 게 가는 사람이나 남는 사람에게도 위로가 되지 않을까.

이런 문제들을 비롯해서, 현재의 조력자살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 안락사까지 앞으로도 논의해야 할 쟁점들은 많다. 책에서도 언급했고 내 주위에도 그렇듯 많은 사람들은 대략적으로 안락사에 찬성한다. 고통스럽게 버티느니 편안하게 끝을 내는 게 좋은 거라고. 하지만 그 속을 들여다보면 정말 많은 논점들이 있다. 앞으로 우리 사회에서도 이러한 논의들이 활발해졌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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