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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홍빛 하늘 아래
마크 설리번 지음, 신승미 옮김 / 나무의철학 / 2020년 2월
평점 :
절판
1943년 밀라노. 피노는
열 여덟 살이다. 가죽 가방 사업을 하시는 부모님과 동생 미모와 함께 꽤 부유하고 편안하게 살고 있다. 어느 저녁 시내에서 눈에 확 띄는 아름다운 여성 안나와 마주치고, 그녀에게
거절당했지만 그녀의 모습은 눈앞에 아른거린다. 그리고 그날 밤 밀라노에 연합군의 폭격이 시작되고 부모님의
가게도 무너진다. 부모님에 의해 알프스 산맥 근처의 소년 캠프 카사 알피나로 보내진 피노는 레 신부에
의해 혹독한 산행 훈련을 받고, 곧 알프스를 넘어 스위스로 도망치려는 유대인들의 길잡이 노릇을 하게
된다.
네순 도르마. 아무도 잠들지 말라.
오페라 투란도트의 아리아다. 밀라노의 폭격을 피해 밤을 보내려 기차를 타고 근교 농장으로
가 벌판에서 밤을 지새며 피노의 아버지가 바이올린을 켜고 피노의 친구 카를레토의 아버지가 부른 곡. 멀리
밀라노의 하늘은 폭격으로 붉고 들판 여기저기에 피노네와 비슷한 가족들이 흩어져 있는 가운데, 세상에
둘밖에 없는 듯 아내만을 바라보는 카를레토의 아버지.(62-63쪽)
전쟁 이야기는 되도록이면 피해 왔지만 이 책은 서문에서 피노의 생존을 얘기해 주어서 읽었다. 하지만 전쟁 이야기가 편히 흘러갈 리가. 읽는 내내 입술을 깨물며
버티거나 잠시 책을 덮고 한숨을 쉬며 맘을 달래야 했다. 그래도 초반에 위와 같은 아름다운 장면이 있어
버틸 수 있었다. 알프스 산의 눈사태에도 불구하고 살아남은 탈출자들과 우연히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은
피노와 조카의 신념을 적절하게 풀어내 준 외삼촌과 우연인 듯 운명인 듯 다시 만난 안나 덕분에.
전후 부역자 색출 부분은 언제 어느 책에서 읽어도 맘 아프다. 억울한
사람이 없을 수 없고 놓친 사람도 반드시 있으며 결국 힘없고 목소리 작은 사람들이 희생당하는 건 역사의 어느 순간에도 늘 일어나는 일이지만 아무리
잦은 일이라도 아프지 않을 수는 없다.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는 그런 일이 아주 없지는 않더라도 조금이라도
덜하지 않을까, 바로잡히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조금은 우리를 지탱해 준다. 아픔을 기억하고 있는 한.
전쟁 이야기에서 해피엔딩은 없다는 걸, 이 책을 읽으며 깨달았다. 누가 살아남았건 누가 희생당했건 전쟁은 모두에게 상처이다. 핏빛
하늘 아래에선 아무리 아름다운 아리아도 아프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희망이 있고 기억해야
할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살아남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