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 코미디
윌리엄 사로얀 지음, 정회성 옮김 / 문학동네 / 2012년 4월
평점 :
절판


 

 

그래, 이 책은, 선하고 선했다. 

요즘 한없이 악해질 일밖에 없는 것 같던 내 마음을,

책을 읽는 순간만큼이라도 선하게 선하게, 어루만져준,  이 고마운 책.

이 책을 읽고서 나는, 오늘 하루만이라도 '예쁘게 살자...' 마음 먹었다.

그것이, 내 마음을 선하게 선하게 다독여준 이 책에 대한, 이 책을 만나게 해준 내 삶에 대한, 나의 작은 보답...

 

미국 캘리포니아 주의 작은 도시 이타카에 살고 있는 매콜리 가족, 그 가족과 일상을 나누는 이웃, 친구, 동료 들.

이 선량한 이웃들을 내 마음에 담았다.

단지 악인이 등장하지 않아서 착한 소설...? 그건 아닐테지. (아, 나름대로 '악인'도 있었네. 있긴 있었네. 선함의 오라가 커서 잊었나보다...)

읽어보면 누구나 느낄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 책이 어떻게 읽는 이의 마음을 선하게 선하게 매만져주는지...

읽고 나서 마음이 이렇게 잔잔해지고 평화로워지는 책, 참 오랜만인 것 같다.

슬픔이 지나갔는데도, 커다란 위기도 분명 있었음에도, 눈물 또한 흘렸음에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늘 이 책의 등장인물들 같은 마음으로 살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특히,

네 살 꼬맹이 율리시스의 눈으로 보는 너무나 아름답고 신기하고 경이로운 세상을,

내가 진심을 다해 나눌 수만 있다면...!

 

"율리시스는 모든 사람을 좋아해. 아마 이 세상 사람들을 다 좋아할 거다."

"맞아요, 그건 그렇죠. 하지만 특히 마커스 형을 좋아하더라구요. 저는 그 이유를 알아요. 지금은 군대에 있지만 마커스 형에게는 어린아이 같은 면이 있기 때문이에요. 어린아이는 자신이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어린아이 같은 면을 찾거든요. 만일 어떤 어른에게서 그런 면을 발견하면 그 사람을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이 좋아하게 되죠. 저는 율리시스 같은 아이다움을 간직한 어른이 되고 싶어요." (205~206)

 

나는 율리시스가 '더 많이' 좋아하게 되는 그런 어른이 되고 싶다.

(이미, 늦었겠지만... '동심'도 재발굴이 되는가...? ...노력한다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겠다만...)

네 살 꼬맹이 율리시스처럼, 이 세상이 온통 신비롭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서른네 살 꼬맹이가 되고 싶다... 그래서 너에게 사랑 받고 싶다.

 

 

 

 

_ 기차가 완전히 사라진 뒤 율리시스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위에는 재미있으면서도 쓸쓸한 삶, 잡초가 무성한 데다 어딘지 이상하고 쓸모없는 것들이 넘쳐나며 별 의미는 없지만 경이로우면서도 아름다운 세상이 펼쳐져 있었다. (……) 잠시 후, 율리시스의 얼굴에는 매콜리 집안 사람들 특유의 온화하고 지혜로우며 비밀스러운 미소가 떠올랐다. 그 미소는 세상 모든 것을 향한 인사이기도 했다. (11)

 

 

_ "뒤쥐는 이 땅에서 우리와 더불어 살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생명을 갖고 있는 존재란다. 말하자면 뒤쥐는 우리의 일부이자 살아 있는 모든 것의 일부인 셈이지." (27)

 

 

_ "네게는 모든 게 다 변한 것처럼 느껴질 거야. 하지만 사실 변한 것은 아무것도 없어. 네가 외롭다고 느끼는 건 더이상 네가 어린애가 아니기 때문이란다. 이 세상은 원래 외로움으로 가득 차 있지." (42)

 

 

_ "사람이 이런 식으로 죽게 된다면…… 우리가 아는 사람이거나 모르는 사람이거나, 지금껏 단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사람이라도, 이렇게 아무 의미 없이 죽어서는 안 되는 거잖아요. 그렇지 않나요?" (139)

 

 

_ 저는 학교에서 우스갯소리를 많이 하는 편이에요. 하지만 선생님들을 괴롭히고 싶어서 그러는 건 아니에요. 다만 그렇게 해야 할 것 같아서요. 모두가 혼란스러워하고, 모든 상황이 잘못 돌아가고 있는 판국이니 제가 가끔 우스갯소리라도 해야 하지 않겠어요? 저는 우리가 살아 있다는 사실 자체에서 즐거움을 찾아야 한다고 생각해요. (150)

 

 

_ "톰, 난 술 마시면 안 돼."

   "그건 저도 알아요. 하지만 당신이 술을 좋아한다는 것도 알죠. 가끔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게 해야 하는 일을 하는 것보다 더 중요할 때도 있어요. 그러니 어서 가서 마음 편히 한잔 드세요." (155)

 

 

_ 저는 어른이 되면 절대로 울 일이 없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이제 보니 인간은 어른이 되었을 때 비로소 눈물을 흘리기 시작하는 것 같아요. 그때 비로소 세상에 눈을 뜨게 되니까요. (200)

 

 

_ 인간은 뉴스를 통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신문을 팔아 푼돈을 버는 것? 그것은 인간이 해도 되는 일일까? 인류가 날마나 저지르는 실수를 기쁜 소식이라도 되는 듯 큰 소리로 알리는 것은 바보 같은 짓이 아닐까? 사람들은 날마다 발생하는 새로운 범죄에 무덤덤하게 반응하는 것을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234)

 

 

_ 뭐든 사람들과 관련된 일은 무조건 조심해야 한다. 네가 볼 때 확실히 틀린 것이라도 결코 확신해선 안 돼. 만일 그 대상이 사람이라면 더욱 조심해야 한단다. 이런 말을 한다고 섭섭해하진 마라. 나는 너를 존중하기 때문에 이런 얘기를 하는 거야. 다른 사람이 사는 방식을 비판하는 건 옳지 않단다. 사람이란 눈 감을 때가 가까워지면 자신이 죽은 뒤에도 계속 이 세상을 살아갈 이들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게 마련이지. 내 말 이해하겠니? (257)

 

 

_ 나는 누구도 진짜 나의 적이라고 생각하지 않아. 인간은 결코 내게 적이 될 수 없기 때문이지. 나에게 사람들은 모두 친구야. 나의 전투 상대는 어떤 사람이 아니라 그 사람이 불운하게도 갖게 된 어느 한 부분이지. 나는 우선 내게도 그런 부분이 있지 않은지 찾아본단다. (260)

 

 

 

 

*. 이 책에서 또 한 가지, 너무 사랑스럽고 뭉클했던 것이, 책의 앞장에 쓰인 '헌사'이다.

윌리엄 사로얀이 '타쿠히 사로얀에게 이 책을 바칩니다'.

'타쿠히 사로얀'은 이 책의 저자인 윌리엄 사로얀이 세 살 때 세상을 떠난 아버지. 그의 아버지도 역시 작가였다.

허나, 아버지의 언어(아르메니아어)와 아들의 언어(영어)가 같지 않아, 누군가가 이 책을 아버지의 언어로 번역해주길 바라는, 헌사의 내용이, 몹시도 뭉클.

 

"저는 되도록 빠른 시일 안에 훌륭한 누군가가 이 소설을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하고 출간하여 당신이 읽을 수 있게 되기를 바랍니다. 당신은 영문판보다는 아르메니아어 번역판으로 읽는 편이 좀더 수월할 것입니다. 이 소설은 제가 쓴 것이지만 당신은 예전처럼 아르메니아어로 번역된 이 작품의 일부를 제게 읽어주고 싶어할지도 모르겠습니다. 만약 그렇다면 귀 기울여 듣겠다고 약속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고 그 가치를 당신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은 거의 없는, 우리 모국어의 아름다움에 감탄하겠다고 약속합니다. (……) 이 이야기는 당신을 위한 것입니다. 이 작품이 당신 마음에 들기를 바랍니다. 저는 이 이야기를 당신과 우리 가족의 특징인 유쾌함에 진지함을 적절히 섞어 최대한 단순하게 쓰려고 했습니다. 이 이야기가 흡족하지 못하리라는 것은 저도 알지만 그러면 어떻습니까? 이 이야기는 당신의 아들이 당신에게 바치기 위해 쓴 것이고, 따라서 그 이유만으로도 당신에게는 흡족한 작품일 것입니다."

 

이 책이, 아르메니아어로 번역되어 나왔을까...?

그렇지 않더라도 그의 아버지는 충분히 아들의 이 책을 읽고, 흡족해 했을 것이라 생각한다.  곁에서 함께 읽은 '이방인'인 내 마음마저도 흡족했으니 말이다.

 

 

 

 

선했고, 흡족했는데,

왜 자꾸 눈물이 나려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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