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전기 우언소설 문학동네 한국고전문학전집 14
윤주필 지음 / 문학동네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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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고전문학전집의 열넷째 권이 나와, 반가운 마음에 무조건 집어 들었습니다.

조선 전기 '우언소설'이라는데, '우언소설이 뭐지...?'

평소에 그 친하던 사전 찾아볼 생각도 않고, 일단 그냥 펼쳐 읽었어요.

 

「안빙의 꿈여행」을 읽다 보니, 꽃세계의 꽃들이 사람으로 묘사된 모습이, 하아ㅡ, 아름답습디다.

여기에 실린 표현들을 외워뒀다가, 나도 초목을 만나면 요렇게 사람처럼 묘사하여 쓰고 싶구나, 생각하며,

 

「서재에서 밤놀이」로 넘어갔지요.

이번에는 붓과 벼루와 먹과 종이가 사람처럼 나옵니다. 이 글을 읽다가 생각합니다.

'의인화의 진수를 맛보는구나...!! +_+'

 

그제야, 생각합니다.

'우언소설'이, 사물을 의인화한 소설인가...?

「안빙의 꿈여행」에서 초목이 그랬고, 「서재에서 밤놀이」에서 문방사우가 그랬고...

 

지금, '우언소설'을 네이버 국어사전에서 검색해보니, 과연 그렇네요.

[같은말] 우화 소설(동식물이나 기타 사물을 의인화하여 쓴 소설).

 

그렇다면 제가 무릎을 치며 감탄한 거, 제대로 감탄한 건가 봅니다. (^^;)

 

 

이 책 『조선 전기 우언소설』에는 모두 여섯 편의 우언소설이 실려 있어요.

앞에 말한, 꿈에서 꽃왕국에 다녀오는 「안빙의 꿈여행」, 서재의 문방사우가 사람으로 나타나 선비와 만나는 「서재에서 밤놀이」 외에도, 마음의 집과 그 집을 다스리는 마음들이 묘사된 「신명스런 집과 천군 전기」(원래는 「신명사도명」과 「천군전」이라는 두 개의 작품인데 이 책에서는 하나로 다루었다고 해요), 단종과 사육신의 이야기를 에둘러 보여주는 「원생의 꿈여행」, 마음을 하나의 나라로 보고 그 마음 나라의 혼란과 평정을 보여주는 「시름성」을 만나볼 수 있습니다.

 

매 작품 작품, 아, 어쩜 이렇게 절묘한 의인화와 묘사라니! 하는 감탄이 터져나오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재미있었는데,

(아, 「신명스런 집과 천군 전기」는 이 여섯 작품 중, 제게는 좀 어렵게 읽혔어요. 원래 「신명사도명」이었을 앞 부분의 이야기는, 조곤조곤 읽어보니, 과연 멋진 글이긴 하나, 따라 읽기에는 전 좀 어렵더라구요. 헤헷.)

그 중에서도 「서재에서 밤놀이」에 반해버린 마음을 금할 길이 없네요...!

 

어쩌면 제목에서부터 저를 사로잡았을 이 이야기,

「서재에서 밤놀이」에는 다섯 '인물'이 등장합니다.

까만 비단옷에 검은 관을 쓴 이(벼루), 알록달록한 옷에 맨상투 차림을 한 이(붓), 흰옷에 관건을 쓴 이(종이), 검은 옷에 검은 모자를 쓴 이(먹), 그리고 이 서재의 주인인 선비.

주인을 위해 "살갗을 문지르고, 뼈를 부딪치고, 머리를 적시고, 등에 물이 스며드는 등 수고로운 일을" 하는 서재의 네 벗, 문방사우가 사람으로 변한 것이지요.(이 동작들과 문방사우의 역할이 딱딱 연결되죠? ^^)

아... 어떡하지......

지금 손가락에 발동 걸리려 합니다. 제가 이 글 이야기를 다 해버리면 안 되잖아요. 워워ㅡㅡㅡㅡㅡ

그, 그렇다면... 음, 아는 이의 닉네임이 나오기도 해서 빵 터졌던 한 부분만... 훌쩍.

 

흰옷이 일어나 공경히 절하고 말했다.

"(어쩌고 저쩌고... 이 부분도 다 옮기고 싶지만... 여기서 이러시면 안 되니까, 훌쩍ㅜㅜ. 건너뛰고) 비록 속마음을 흩고 삶아서 정신을 닦아내고자 했으나, 본디 채색을 받아들일 자질이 아닌지라 경박하다는 참소를 은연중 뒤집어쓰고 끝내 장독이나 덮게 되었습니다. 감히 다시 거두어 주시기를 바라오니, 명공께서는 살펴주소서."

 

푸힛. 흰옷(종이)의 '끝내 장독이나 덮게 되었습니다' 하는 하소연에, 종이가 종이로 태어나 글자를 받아들이지 못하고 장독을 덮게 되었을 때 얼마나 참담했을꼬 생각하니 애처로우면서도, 장독 님 생각도 나고(ㅋㅋ), 옛날에 한창 유행했던 이런 유머도 생각나도...

 

아가 칫솔: 엄마, 엄마. 나 칫솔 맞아?

엄마 칫솔: 그래, 칫솔 맞아.

아가 칫솔: 엄마, 엄마. 엄마도 칫솔 맞아?

엄마 칫솔: 그래, 엄마도 칫솔 맞아.

아가 칫솔: 근데... 엄마는 왜 운동화만 닦아?

아.... 웃프다. 엄마 칫솔과 흰옷 입은 이의 신세가.........ㅜ_ㅜ

 

음, 얘기 하나만 더 해도 돼요....? (☞☜)

선비가 서재로 들어와 이 네 사람과 처음 대면하는 장면....

여기까지만 말하고 더 말 안 할게요....^^;;;

 

어슷한 그림자가 대청마루에 지며 세 사람이 연달아 왔다. 옷매무새와 모습이 방 안에서 본 것과 똑같았다. 도착해서는 앞에 늘어서서 절을 하니, 선비도 답배를 하면서 급히 물었다.

"한 분은 어디에 있습니까?"

그러자 이렇게 답했다.

"모자를 쓰지 않아 감히 뵙지 못합니다."

선비가 말했다.

"산에 있는 서재의 밤 모임이니 예법을 따질 것이 없습니다. 속히 나오시면 좋겠습니다."

벗은 모자가 이 말을 듣고 서재 뒤에서 주저하며 다가와 머리를 수그리고 무례함을 사과했다. 선비가 위로하며 답하고는 서로 마주앉았다.

 

...모자 벗고 다니는 붓의 설움...;;;; 까딱하면 선비와 못 만날 뻔했어요....ㅡ.ㅡ;;

 

 

약속한 대로(?),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물러나며...(^^;)

책 뒤표지를 보면 이런 문장이 쓰여 있지요.

행간의 수수께끼를 풀어라!

그 '행간의 수수께끼'를 수많은 각주로 풀어내어 이 글들의 진수를 맛볼 수 있게 해준 윤주필 선생님께 깊은 감사를 드리며,

저는 이만 손가락을 꺾는 심정으로(^^;) 합죽이가 되어 물러가겠습니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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