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빛
전수찬 지음 / 문학동네 / 201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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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을 펼쳐 얼마쯤 읽어나가다가, 나는 누워 있던 몸을 일으켰다. 그냥, 갑자기 긴장이 됐다.

앞으로 이 소설을 이끌어나가는 데 중요한 내용이 될 것으로 보이는 이런 내용 때문에.

 

"자네 혹시 왕따라고 아나?"

청년은 그제야 그를 쳐다보았다.

"내 둘째아들이 십 년 전에 어떤 애한테 그런 걸 당하다가 사고로 죽었어. 아무 잘못도 없는 앤데. 그냥 괴롭힘만 당하다가 괴롭힌 애가 캄캄한 저녁에 산으로 부르는 바람에 산으로 올라가다 실족해서 죽었어."

청년은 운전대를 톡톡 두드렸다. 하지만 한쪽 귀를 열고 있는 듯했다.

"십 년 전 일이야. 오래됐지. 하지만 그 일을 당한 우리 식구들은 십 년이 십 년 같지가 않아. 그애는 처벌도 안 받았어. 그애 아버지란 작자는 나한테 사과 한 번 안 했어. 사과가 다 뭐야, 그런 일 없다고 발뺌하다가 다른 사람들 입까지 막고 줄행랑까지 쳤지." _ 26~27쪽

 

공교롭게도 이 책을 읽기 얼마 전, 학교에서 괴롭힘을 당하던 중학생이 그 간의 일을 유서로 남기고 자살한 일이 있었다. 그보다 며칠 전에는 한 여고생이 역시 친구들의 괴롭힘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버렸다. 연이어 터진 집단 괴롭힘 자살 사건으로, 마음이 뒤숭숭하던 때였다. 기사를 자세히 챙겨보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런 일이 벌어졌다는 사실 자체에도 몹시 암담한 기분이었다.

그러던 중 만나게 된 이런 문장에 나는 그밤, 괜한 섬뜩함에 소름이 돋았다.

 

이 이야기는 십 년 전 가족을 잃은 이들과, 십 년 전 누군가를 아프게 한 이들의 이야기이다. 물론, 허구이다. 실제로는 그런 이들이 어떤 생활을 하고 있는지 나는 알지도 못하고 알 수도 없다. 다만 소설을 통해 들여다 본 곳에는, 무너진 두 개의 하늘이 있었다.

 

책을 읽는 동안 나는 계속해서 연일 인터넷 뉴스에 오르던 사건들이 떠올라 심란했고, 책 속에 묘사된 지나친 학대 장면에 눈살을 찌푸렸고, 그러다 문득 현실 속에서 그런 일이 정말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경악했다. 그리고, 책 속 화자가 헷갈려 조금쯤 혼란스럽게 읽었다.

 

표지 컬러와 같은 마음으로, 책장을 덮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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