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쟁이, 루쉰
왕시룽 엮음, 김태성 옮김 / 일빛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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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번역가, 교수 등으로만 알고 있던 루쉰이 그림에도 일가견이 있었다는 사실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림쟁이 루쉰'이라. 과연 루쉰은 어떤 그림을 그렸을까, 궁금증에 집어든 책이다.

 

작가 루쉰이 아닌 '그림쟁이'로서의 루쉰의 모습을 들려주는 에세이인가 했는데, 루쉰의 작품을 한 점 한 점 소개해주는 책이었다.

먼저 루쉰의 그림이 나오고 그 밑에는 그림과 관련하여 루쉰이 남긴 글, 관련 기록, 해설 등이 나와 있다.

'루쉰이 남긴 글'만 모아 읽어본다면, 그림쟁이 루쉰의 수필 느낌이 나기도 한다.

 

이 책을 보며 참 여러 차례 감탄을 했는데, 가장 먼저 감탄한 것은 아무래도 루쉰의 그림 실력!

아아, 루쉰이라는 이 대문호는 글뿐만 아니라 그림에도 이렇게 뛰어난 재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이다.

전각, 평면 디자인, 선묘, 책과 잡지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로 나뉘어 소개된 그림들은 한 점 한 점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들었다.

귀여운 부엉이나 코끼리 그림부터 세세하고 섬세하게 그린 책 표지나 멋진 글씨체를 감상할 수 있는 잡지 디자인 등 그 그림 감상만으로도 참으로 값진 시간이고 값진 책이라는 생각이다.

 

이 책에 보면 일본인 마쓰다 쇼가 루쉰의 글을 포함하여 중국 책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잘 이해가지 않는 용어를 루쉰에게 물어보는 내용이 자주 나온다. 그러면 루쉰은 그에 대해 무척 자상하고 세세한 답변과 함께 마쓰다 쇼의 이해를 도울 그림을 함께 그려주었다. 이 부분에서 나는 또 한 번 감탄하고 마는데, 바로 루쉰의 그 자상함과 섬세함 때문이다. 중국 문화를 잘 이해하지 못하는 외국인에게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글과 그림으로 설명해주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이 때 그려진 그림들은 비교적 간단하고 '후딱' 탄생된 느낌이 드는데 대문호의 사적인 메모를 엿보는 기분에 살짝 영광스러워지기도!

 

'책과 잡지 디자인' 부분에서는 루쉰의 그림 실력 외에도 루쉰이 지었거나 번역했거나 펴낸 책들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어 무척 유익했다. 이 과정에서 (내가 관심 있는 부분인) 번역가로서 루쉰의 마음도 엿볼 수 있었고, 출간 금지 당한 책을 표지와 제목을 바꾸어 다시 펴내면서 관리들은 알아보지 못하도록 원래 책 제목을 살짝 표지에 실어 놓은 데서는 루쉰의 지조에 감동했다,고 한다면 너무 아부 일색일테고, 사실 '루쉰도 엉뚱하고 개구진(?) 면이 있군' 하며 재미있어 했다.(물론 루쉰이야 장난이 아니라 정말 분한 마음을  표출한 거였겠지만.) 앞에서 말한 마쓰다 쇼가 중국 서적을 끊임없이 일본어로 옮긴 것이나, 루쉰이 다른 외국어 원서를 일본어판을 통해 중국어로 중역하는 내용을 보면서는 '역시 일본은 번역 대국이군' 하는 생각에, 또 한 번 감탄.

 

이 책을 통해 루쉰의 그림을 처음으로 접할 수 있었음도 무척 좋지만, 그 외에도 루쉰의 인간적인 면모를 엿봤다거나, (이건 순전히 개인적인 관심으로) 번역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할 거리를 던져주었다던가 등등 매우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책이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사서 읽지 않고 책꽂이에 꽂아둔 루쉰의 책들이 내 손을 잡아 끈다. 더 미루지 말고 얼른 읽고 싶어졌다.

 

 

_ 내 숨이 아직 남아 있을 때, 자신의 것이기만 하다면 나는 언제든지 내 지난 일을 정리해 두고 싶었다. 단 한 푼의 가치조차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아무런 미련이 없을 수는 없어, 잡문들 한데 모으고 무덤이라 이름을 짓기로 했으니, 뜻밖에도 제법 그럴듯하다.(168)

 

_ 한 시대의 기념비가 될 만한 글은 문단에 항상 나타나는 것이 아니다. …… 그러나 지금까지 위대하고 찬란한 각 시대의 기념비적인 문학 작품 주위에는 단편 소설도 나름대로 충분한 존재의 이유를 갖는다. …… 우리 역자들이 이 책을 엮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 그러나 한송이 꽃을 피워야겠다는 마음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부패한 풀도 그다지 나쁘진 않다는 생각을 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189~190)

 

_ 듣자 하니 중국의 훌륭한 작가들은 대체로 '젊은 시절에 쓴 작품들을 부끄러워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이들은 스스로 자신의 문집을 편집하면서 젊은 시절의 작품은 가능한 한 빼거나 전부 삭제한다고 한다. …… 하지만 나는 내 초기 작품에 대해 다소 부끄러운 생각은 들지만, 참회의 감정은 한 번도 가져보지 않았다. …… 놀랍게도 양제운 선생이 대량으로 초록해 두었다는 것이다. 이 가운데는 심지어 30년 전에 쓴 시문이나 10여 년 전에 쓴 신시도 들어있다. 이는 내가 50년 전에 엉덩이를 내놓고 손가락을 입에 물고 있을 때의 사진을 액자에 넣어 나 자신은 물론이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감상할 수 있게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나 자신도 당시의 유치함과 부끄러움을 몰랐던 것에 의아할 따름이다. 하지만 달리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이것이 나의 참모습임에 틀림이 없으니, 그대로 공개하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277~278)

 

_ 나는 그저 깊은 밤 길거리에 좌판을 펼쳐놓고 작은 못 몇 개, 기와 조각이나 파는 사람에 지나지 않는다. 하지만 희망도 있다. 나는 누군가 내가 파는 잡동사니 속에서 쓸모가 있는 적당한 물건을 찾아내기를 바라고, 또한 그러기를 믿어 마지않는다.(291~2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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