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간들 문학동네 청소년 2
장주식 지음 / 문학동네 / 200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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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열여덟, 이름 고성만, 직업 학생(이었음).

입시에 찌들대로 찌들어 별 아름다운 추억도 없는(사실, 찌들기만 했지 별 노력도 성과도 없었던) 나이 열여덟, 거기에 나와는 공감대도 별로 없을 것 같은 한 남학생의 이야기를, 이 나이에 뭐가 그리 궁금하다고 엿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

라고 말을 하게될 줄 알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지지리 복도 없는 놈, 고성만'을 보며, 내가 아직도 정처없이 흔들리고 있는 중이라는 것과, 인생에 반성은 있을지언정 후회는 하지 말아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 고성만은 대구의 고등학교로 '유학'을 가지만, 전교 상위권이던 점수는 점점 바닥을 치고 가슴 설레던 사랑에 상처만 입고서 학교를 떠난다. 이어 그의 행적을 따라가 보면 밀양 표충사(중이 되기 위해) - 상주(집) - 철암(광부가 되려고) - 서울(기왕이면 큰 도시로) - 상주(이도저도 안 됐다) - 서울(본격적인 검정고시 준비) 등 어느 한 곳에 머무르지 못하고 계속 떠돈다. 어딜 가도 제대로 되는 게 없다. '지지리 복도 없는 놈'이니까. 절을 찾아가다 산속에서 겁에 질려 노숙을 하기도 하고, 사람 좋은 얼굴로 접근해 오는 어른들에게 속아 공짜 머슴 노릇만 실컷 하기도 하고, 고향에서 피땀 흘려 번 돈을 사기 당하기도 한다. 여기저기 덫을 파 놓고 음흉한 웃음을 짓고 있는 듯한 세상에게 화가 나거나 절망 할 법도 한데, 우리의 고성만은 목표점을 바꿀지언정 절대 쓰러지지 않는다. 그리고 후회 따위는 하지 않는다. 내가 어쩌자고 이런 선택을 했을까, 내가 왜 여기로 와서 이런 일을 겪을까, 나라면 후회로 가슴이 시커멓게 썩어 들어갔을 것 같은데, 성만이는 그런 후회를 할 시간에 바로 다음 인생을 설계하고 떠난다. 후회를 하느라 쓸데없는 힘을 낭비하곤 하는 내게 큰 충고가 되어주는 성만이의 모습이었다. 멋진 싸나이 고성만!

 

깊은 밤, 아주 재미없는 책을 한 권 읽다가 지쳐 가볍게 기분 전환만 하고 자려고 펼쳐든 게 이 책이었다.

하지만 읽다 잠들기는 커녕 점점 또랑또랑해지는 머리로 책을 끝까지 다 읽고나니 새벽 4시 반이었다.

불을 끄고 누웠지만 잠은 쉬이 오지 않았다.

대구, 밀양, 상주, 철암, 서울, …… 여기저기 떠도는 성만의 모습에 자꾸 내 모습이 겹쳐졌다. 성만이의 발자국이 찍힌 그곳들이 마치 내 흔들리는 꿈들이 찍힌 곳 같았다. 이것도 되고 싶고, 저것도 되고 싶었던. 그리고 아직도 진행 중인 그 흔들림. 이제 뭔가 '내 일'을 하고 있는 게 맞을 듯한데, 아직도 다른 꿈을 꾸며 흔들리는 내 마음을 확인했으니, 잠이 오지 않을 수밖에. 이런 퍼즐 조각같은 '순간들'이 이어져 완성될 내 삶은, 과연 어떤 모습일지.(아, 이 나이에 아직도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니!!)

 

_ 사람이 인생이라는 고난의 길을 견디며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가끔 '절정'이 있기 때문이다. 수많은 고통과 절망과 아픔과 설움이 몸을 에워싸더라도, 한두 번이라도 감동의 절정을 맛본 사람은 쉽게 꺾이지 않을 것이다.(157)

 

그리하여 오늘도 그 '절정'을 위해, 그리고 그 '절정' 덕분에, 꺾이지 않고 이 고난의 길을 견디며 살아가리라! 우리의 성만이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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