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 없는 남자들
무라카미 하루키 지음, 양윤옥 옮김 / 문학동네 / 2014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p.63 어제는

 

내일의 그저께고

 

그저께의 내일이라네.(예스터데이) 』

 

 

 

 

대학에 갓 입학했을즈음 20대에 들어 처음으로 읽은 소설이 한 권 있었다.

 

양귀자의 "모순"

 

그동안 학교나 교과서 속에서 배워오던 세상과는 사뭇 달랐던 소설 속 현실이 내게는 꽤나 충격적이었다.

 

여기서 말하는 충격이란 거창한 무언가가 아닌, 인간이란 논리와 이성과 윤리가 아닌 어쩌면 다들 모순 속에서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는 것을 처음으로 어렴풋이 깨달은 데서 온 그 무엇이었다. 아마 '어른'이라는 세속적인 존재에 이제 막 발을 들인 데서 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하루키 소설을 읽고 양귀자의 '모순' 이야기를 늘어놓는 것은, '여자 없는 남자들'을 읽고 그때와 비슷한 무언가를 느꼈기 때문이다.

 

우리 생활 속을 관통하고 있는 삶의 '모순'들.

 

특히 남자와 여자, 같은 종족이지만 가깝고도 먼 그 존재들이 겪는 사랑이란 이름의 모순들.

 

 

 

아내의 불륜을 알면서도 묵인하고, 오히려 그 내연남과 진정한 친구가 되는 남자.

 

소꿉친구로 같이 자라며 연인이 된 여자친구에게 자신의 친구와 데이트를 해보라는 남자.

 

평생 독신으로 깊은 관계로 나아가지 않게 유부녀나 애인 있는 여자와만 즐기지만, 결국 스스로 금기를 깨고 사랑이란 덫에 걸려 스스로를 파괴해 가는 남자.

 

아내와 직장 동료의 정사를 목격하나, 화 한번 내지 않고 전혀 상처 받지 않은 것처럼 떠나는 남자.

 

 

이 소설 속 이야기는 모두 이런 남자들과 여자들의 이야기였다.

 

얼핏 말도 안되고, 절대 이해할 수 없을 것 같은 사람들의 이야기.

 

 

하지만 그 '모순들'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극명하게 달라져 있었다.

 

이제는 그 모순들을 접하며 놀라지도 충격을 받지도 않는다.

 

오히려 고개를 끄덕여 '공감'을 하고 있었다.

 

이제 어느새 '어른'에서 '나이듦'으로 나아 가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 p.109 우리는 누구나 끝없이 길을 돌아가고 있어.(예스터데이) 』

 

 

 

 

하지만 책 속 구절처럼 이는 누구나 겪는 자연스러운 삶의 굴레일테니, 억울해하지 않기로 하자.

 

 

 

 

 

 

세월이 흐르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사랑하고, 이별하고, 이를 반복하고.

 

그럼 연습이 되고, 습관이 되고, 면역력이 생겨, 아파하지 않을 수 있을까?

 

 


『 p.51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한 얘깁니다. 그런 걸 바란다면 자기만 더 괴로워질 뿐이죠. 하지만 나 자신의 마음이라면, 노력하면 노력한 만큼 분명하게 들여다보일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드라이브 마이 카) 』

 

 

『 p.166 모든 여자는 거짓말을 하기 위한 특별한 독립기관 을 태생적으로 갖추고 있다..............가장 중요한 대목에서 거짓말을 서슴지 않는다. 그리고 그런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얼굴빛 하나, 목소리 하나 바뀌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건 그녀가 아니라 그녀의 몸의 독립기관이 제멋대로 저지르는 일이기 때문이다.(독립기관) 』


『 p.169 생각건대 그 여자가 (아마도)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거짓말을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물론 의미는 얼마간 다르겠지만, 도카이 의사 또한 독립적인 기관을 사용해 사랑을 했던 것이다. 그것은 본인의 의지로는 어떻게도 할 수 없는 타율적인 작용이었다. 제 삼자가 나중에야 뭘 좀 아는 척 왈가왈부하며 자못 슬프게 고개를 내젓는 것은 아주 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인생을 저 높은 곳으로 끌어올리고,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마음을 뒤흔들고, 아름다운 환상을 보여주고, 때로는 죽음에까지 몰아붙이는 그런 기관의 개입이 없다면 우리 인생은 분명 몹시 퉁명스러운 것이 될 것이다. 혹은 단순한 기교의 나열로 끝나버릴 것이다.(독립기관) 』

 

 

『 p.214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말하자면 그런 것이다. 현실에 편입되어 있으면서도 현실을 무효로 만들어주는 특수한 시간. 그것이 여자들이 제공해주는 것이었다. 그리고 셰에라자드는 그에게 그것을 넉넉히, 그야말로 무한정 내주었다. 그 사실이, 그리고 그것을 언젠가는 반드시 잃게 되리라는 사실이 그 무엇보다도 그를 슬프게 했다.(셰에라자드) 』

 

 

그렇지 않을 뿐더러, 그래서도 안된다.

 

우리는 끊임없이 사랑하고, 상처 받고, 충분히 아파하고, 슬퍼해야한다.

 

이런 것들은 오로지 인간에게만 주어진 권리이자 의무이며, 진정 '인간'다운 '인간'이 되게 하는 것일 테니까.

 

 

『 p.265 진짜 아픔을 느껴야 할 때 나는 결정적인 감각을 억눌러버렸다. 통절함을 받아들이고 싶지 않아서 진실과 정면으로 맞서기를 회피하고, 그 결과 이렇게 알맹이 없이 텅 빈 마음을 떠안게 되었다.(기노)』

 

 

 

 

모순, 상실, 상처, 공허

 

이 소설을 읽으며 떠오르던 단어들이었다.

 

표지에서의 얼음달처럼 한없이 차갑기만 단어들.

 

그런데 또한 그렇기에 역설적이게도, 치유(힐링)라는 단어 또한 함께 떠오르는 것이다.

 

나만 잃어버리고, 상처 받고, 아픈게 아니라는 것을 새삼 깨달았기 때문일까?

 

 

아마 이런 점이 바로 수많은 사람들이 하루키의 소설을 사랑하는 이유가 아닐까 짐작해본다.

 

 

 

 

 

『 p.327 어느날 갑자기,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그날은 아주 작은 예고나 힌트도 주지 않은 채, 예감도 징조도 없이, 노크도 헛기침도 생략하고 느닷없이 당신을 찾아온다. 모퉁이 하나 돌면 자신이 이미 그곳에 있음을 당신은 안다. 하지만 이젠 되돌아갈 수 없다. 일단 모퉁이를 돌면 그것이 당신에게 단 하나의 세계가 되어버린다. 그 세계에서 당신은 '여자 없는 남자들'로 불린다. 한없이 차가운 복수형으로.(여자 없는 남자들) 』

 

 

 

 

나에게 '무라카미 하루키'라는 작가는 '상실의 시대'라는 소설 한 편으로 첫인상이 굉장히 거칠고 낯설고 결코 친해질 수 없는 그런 작가였다.

 

그 강렬한 첫인상 때문에 아주 오랜 시간 동안, 아무리 전 세계적으로 하루키 열풍이 인다 해도 그의 작품은 나에게 철저하게 관심밖에 있었다.

 

 

그러다 이제 그 견고했던 선입견을 어쩌면 걷어낼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책장을 열었다.

 

그리고 이제 아무런 선입견 없이, 오히려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그의 다른 작품들도 읽어 볼 수 있을 것 같다.

 

 

 

특히, 카프카의 '변신'에 대한 오마주는 나의 마음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잠자가 사랑할 수 있어서, 그래서 그로인해 또 상처 받고 아프겠지만, 그래도 그가 행복해질 수 있게 해주어서 참 다행이고 고맙다.

 

 

 

『 p.308 세계 자체가 이렇게 무너져가는 판에 고장난 자물쇠 같은 걸 걱정하는 사람도 있고, 그걸 또 착실히 고치러 오는 사람도 있어요. 생각해보면 참 이상야릇하다니까요. 그렇죠? 하지만 뭐, 그게 맞는지도 모르겠어요. 의외로 그런 게 정답일 수 있어요. 설령 세계가 지금 당장 무너진다 해도, 그렇게 자잘한 일들을 꼬박꼬박 착실히 유지해가는 것으로 인간은 그럭저럭 제정신을 지켜내는지도 모르겠어요.(사랑하는 잠자) 』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공허한 십자가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이선희 옮김 / 자음과모음(이룸) / 2014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스포는 책 소개에 나와 있는 줄거리 정도로 거의 없음)

 

혹시 밀양이라는 영화를 본 적이 있는가?
주연 여배우의 열연이 돋보여 해외 영화제에서 상을 받은 그 영화말이다.
나는 그 영화를 보았지만 지금은 줄거리를 다 까먹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잊혀지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영화속 주인공은 딸을 잃는다.
범인은 이웃 남자였다.
당연히 주인공은 범인이 잡혀 감옥에 가게 되지만 그를 용서할 수 없었고, 딸이 살아 있을때로 돌아갈 수가 없었다.
그래서 종교에 빠져 마음을 평온을 찾고 그 남자를 용서했다고 생각해 면회를 간다.
그런데 그녀 앞에 나타난 범인은 그녀 자신보다도 더 평온한 얼굴이었다.
그역시 종교에 귀의에 마음의 안정을 찾았던 것이다.
그에 그녀는 하나님에게 강한 배신감을 느낀다.
 
가족이 누군가로부터 살행당한 유가족.
그들이 슬픔을 이겨내고 평온을 찾을 수 있을까?

 

없다.
그렇게 단정할 수 밖에 없다.
이 이야기는 결코 극복할 수 없는 그 고통과 슬픔을 어떻게든 이겨내보려 했던 한 엄마의 이야기이다.

나카하라와 사요코 부부에겐 금지옥엽 마나미라는 딸과 단란하게 살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날 그들의 딸이 집에 침입한 강도에게 살해 당하고 만다.

범인은 전에도 살인을 저질러 무기수로 복역중이었으나 모범수로 판정 받아 가석방 상태에서 또 다시 살인을 저지른 것이다.

부부는 그가 당연히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고 결과 또한 사형 판결이었다.

그로부터 11년 후 사요코가 살해당하고 나카하라는 11년 전 형사에게서 연락을 받게 된다.

나카하라는 이미 사요코와 이혼한지 5년이 흐른 상태였고 이 사건을 계기로 그의 전부인이 그동안 어떻게 살아왔는가의 행보를 되짚으며 그녀 주변으로 얽힌 여러 사람들의 과거와 사건의 진질에 다가가게 된다.

아주 여러해 전 나는 한동안 히가시노게이고 추리 소설에 심취해 있던 때가 있었다.
아마 그 해에 읽은 책의 반 이상이 히가시노 작품이었을 것이다.
그러다 요 근래에 책이 너무 쏟아져 나와 조금 식상함을 느끼며 띄엄 띄엄 읽다가 그마저도 읽지 않고 있는 상태였다.
그러다 접한 공허한 십자가의 출간 소식.
사형제도가 소재라 하여 구미가 당겼다.
그의 작품들 속에서 사회에 대한 냉소같은걸 자주 느꼈던 관계로 그는 사형제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궁금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결론은 역시 좋았다.

정말 오랜만에 히가시노의 작품을 처음 접했을 때의 흥미진진함을 느낄 수 있었다.

게다가 이제 그는 독자에게 단순한 오락뿐 아니라 답이 정해지지 않은 메시지와 여운까지 전달한다.

그렇다. 히가시노게이고는 사형제도 존폐에 대해 답을 제시하진 않았다.

다만 독자들 스스로 생각해보라는 수많은 의문과 근거들을 제시하였을 뿐.

사실 나는 사형제도에 대해 찬성하는 입장이다.

인권이니 뭐니 하며, 혹은 오판의 가능성 때문에 반대하는 사람들이 많다는데, 유영철 같은 인간을 어찌 인간이라고 할 수 있는가?

우리나라 법에서 사형 판결을 받는 사람은 사실 유영철급은 되어야 하지 않는가?

그런 쓰레기들은 처리를 해야 맞지 않은가 말이다.

게다가 사요코 말대로 유족들, 그 유족들은 어떻게 살아간단 말인가?

물론 사형이 답은 아닐 수 있다, 범인을 사형 시킨다고 해서 유족들의 상처가 치유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사요코 말대로 그들을 단죄하는 건 그들이 결코 극복할 수 없는 슬픔을 극복하려는 노력의 통과점 같은 것이 아닐까?

그런 점을 생각하면 역시 우리나라 법은 물러 터졌다.

이 책을 읽다보니 그래도 일본은 우리보단 법이 강하단 생각이 들었다.

요즘 군 폭력 문제며, 묻지마 범죄며 끔찍한 뉴스들이 하루가 멀다하고 들려온다.

그런데 살해 의도가 없었다는 이유로, 또는 술에 취해 정상적인 정신 상태가 아니었단 이유로 살인죄가 아니라한다.

그런 얘기를 들으며 대체 법이란 것이 왜 있나 싶을 정도로 욕이...나왔었다.

그들을 전부 사형에 처해야한단 얘기가 아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우리나라 법은 유영철급은 되어야 사형 판결이 난다.

그나마도 사형 집행은 되고 있지 않지만.

다만 법이 좀 더 제 역할을 다 하여, 단죄의 역할 보다 범죄의 예방을 해주길 바란다는 말이다.

역시 생각할 거리가 많았던 작품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세트] 선암여고 탐정단 : 방과 후의 미스터리 + 탐정은 연애 금지 - 전2권 블랙 로맨스 클럽
박하익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미스테리가 있다.>

너무도 당연한 말이지만 이 소설에는 '미스터리'가 있다. 그렇다고 흔히 생각하는 "살인사건'이 등장하는 것은 아니다. 여고를 배경으로, 여고생들을 주인공으로 펼쳐지는 코지 미스터리(일상 미스터리) 소설이다. 때문에 탐정단이 해결하는 사건들이란 것이 여고앞에 출몰하는 변태 퇴치, 분실물 찾아주기, 교실 내 왕따 문제, 고민 상담, 학교에 떠도는 무서운 전설 등으로 몹시 사소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소재들이 사소하다고 얕보아선 큰 코 다치리라. 그 어떤 탐정이나 형사 못지 않은 열정과 정보력으로 모든 사건을 아주 유쾌하고 짜릿하게 해결한다. 그리고 한 꼭지에서 다음 꼭지로 넘어가며, 1권에서 2권으로 넘어가며 그 미스터리의 규모는 점점 커져가기에 읽어나가는 독자들의 긴장감과 재미 또한 곱절이 되어 갈 것이다.

 

<사랑스러운 캐릭터가 있다.>

선암여고 탐정단 시리즈의 가장 큰 매력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당연히 그것은 '사랑스러운 캐릭터'라고 답할 것이다. 탐정단의 멤버는 다섯이다. 먼저 이 소설의 실질적인 주인공인 '안채율'. 세계적인 천재를 쌍둥이 오빠로 둔 그녀는 항상 오빠의 그늘안에 존재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독립심도 강하고 꽤나 똑똑한, 하지만 조금은 까칠한 미녀 여고생이다. 다음은 탐정단의 대장 '윤미도'. 레고 머리에 커다란 안경, 어딘지 헐렁한 구석이 있어 보이지만 채율이 유일하게 탐정단 내에서 인정하고 두려워 하는 냉철함과 사람 낚기 기술을 가진 그녀다. 세번째 멤버는 애교 담당 비서실상 '이예희'. 연극부와 탐정단에 동시 소속되어 있으며, 탐정단 최고 미녀로 통한다. 네번째 멤버는 행동대장 '최성윤' 큰 키, 남학생들이 자연스럽게 '형'이라고 부르는 보이시함, 그리고 강인한 체력을 가진 그녀는 탐정단의 행동대장이자 보디가드이다. 마지막 멤버는 감식반 '김하재'. 어딘가 좀 늘 주눅들어 보이고 음침해 보이기도 하지만 이야기가 전개될 수록 그녀의 사람 홀리는 기술의 진가와, 정보 처리 능력은 빛을 발하게 된다. 무엇 하나 공통점 하나 없이 다들 톡톡 튀는 개성을 소유한 그녀들은 각자의 개성을 백분 활용하여 누구 하나 빠지지 않고 사건 해결에 힘을 보탠다. 주인공이 다섯씩이나 되면 솔직히 조금 빠지는 인물도 있고, 조금 얄미운 인물도 있기 마련인데, 선암여고 탐정단 다섯 멤버는 모두 정말이지 너무도 사랑스러웠다. 그래도.....누가 제일 매력적이었나 묻는다면.......나는 미도미도미~♡ ^^;;;;

 

<여고생이 있다.>

여고가 배경이고, 여고생이 주인공인데 여고생이 있다는 이 무슨 당연한 말을 하느냐고? 여고생이 있다....는 말은 다시 말하면 '여고생의 심리'가 있다...는 말이다. 여태 수많은 소설을 읽어왔고, 그 중 성장 소설들도 꽤 있었지만 선암여고 탐정단 시리즈만큼 여고생들의 심리를 잘 묘사해낸 소설은 본 적이 없다. 나도 여자지만 사실 여자들의 심리란....정의 내리기 힘들다. 게다가 연령이 질풍노도의 10대 청소년이라면 더더욱. 이 소설에는 여고에 다닌 사람만이 알 수 있는 교실 내에 존재하는 계급이라든가, 여고생들만의 다툼과 화해의 과정 같은 것들이 꽤나 세밀하게 묘사되어 있다. 나 또한 여고에 다녔던지라 그런 부분을 읽을 때 마다 공감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작가 또한 여고에 다녔던 것이 분명할 것이다. 오리무중 여고생들의 심리가 궁금한 사람들이 읽어도 꽤나 도움이 될만한 소설이다.

 

<학교 문제가 있다.>

여타 학교가 배경인 소설들처럼 이 소설에도 여러 학교 문제가 등장한다. 왕따, 불법 과외, 체벌, 치맛 바람, 입시 지옥 등등. 물론 여고생 다섯이 사회적 차원의 문제들을 온전히 해결할 순 없는 법. 때문에 그녀들은 이런 요소들을 '사회적'으로 접근하는 것이 아닌 '여고생다운 추리'로 접근해 풀어가는 것이 이 소설의 큰 맥락이다. 즉 그러한 문제들의 완전한 해결이 아닌, 해결의 방향이라고 해야할까, 부분적인 해결이라고 해야할까...하는 차원에서 말이다. 때문에 머리 아프지 않고, 하지만 그렇다고 너무 가볍지만도 않게, 유쾌 발랄하게 사건이 전개된다. 왕따 문제 같은 경우는 그녀들이 썼던 방법을 실제 학교에서도 적용해 보면.....어쩌면 실효가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도 생각해 보았다.

 

<로맨스 혹은 썸이 있다.>

이팔 청춘이란 말이 괜히 있겠는가? 그녀들은 어리다기 보단 팔팔한 청춘에 가깝다. 비록 여고생들만 득시글거리는 여고에 몸 담고 있지만 그들에게도 핑크빛 로맨스는 존재한다. 그 로맨스와 썸의 중심엔 으레 그렇듯 훈남이 있다. 채율의 쌍둥이 오빠인 세계적인 천재 "채준"과 아이돌 못지 않은 인기를 자랑하는 19(1권 기준) 사진 작가 "하라온". 신은 아니 작가는 너무도 불공평하게도 이 두사람에겐 모든 걸 주었다. 집안의 부, 누구나 한번 보면 빠져드는 외모, 지적 능력까지. 채준은 미도와, 라온은 채율과 썸을 탄다. 이 두쌍의 썸타기가 소설 곳곳에 감질맛나게 조금씩 조금씩 전개되는 점이 소설의 재미를 배가 시킨다. 나는 특히 진심을 다해 미도와 채준이 잘되길 바랐는데.... 그 결과는? 그건 직접 책을 읽고 확인하시길^^

 

<아련한 추억이 있다.>

얼마전 무한도전 토.토.가가 큰 이슈가 되었다. 사실 나는 그날 무도를 본방사수하며 울 뻔했었다. 90년대 중고 시절을 보냈고, 그 중고 시절을 함께 했던 음악들을 들으니, 그 시절이 너무도 그리워졌다. 그리고 다시는 돌아가지 못한 그 시절이 아련해서 가슴 속에 무언가가 차올랐었다. 이 소설을 읽고 토.토.가를 보고 느꼈던 감정과 비슷한 감정들을 느끼기도 했다. 다섯 명의 꽃청춘들의 이야기를 읽어가다 보니, 나도 이런 시절이 있었는데......하는 아련한 그리움이 밀물처럼 밀려왔더랬다. 청춘들이여 나는 그대들이 몹시도 부럽다!

 

<그래서 결론은.... 재미가 있다.>

구구절절 말이 길어졌다. 그래서 요약해 보았다. 결국 결론은 선암여고 탐정단 시리즈는 재미가 있다. 그것도 매우! 아직 국내 미스터리 소설들은 내가 너무 무지해서 많이 접해보지 못했는데, 이제 믿음과 확신이 생겼다. 그리고 나는 이미 기다리고, 기대하고 있다. 선암여고 탐정단 3번째 작품을^^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3)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천국 주식회사
사이먼 리치 지음, 이윤진 옮김 / 열린책들 / 2014년 12월
평점 :
절판


하느님이 최고 경영자로, 천사들이 직원으로 근무하고 있는 천국 주식회사. 하느님은 과거에 심심하고 무료해서 지구를 만들었지만 인간들의 하찮은 기도가 조금은 지겨워져 지구를 없애기로 결심했다. 크레이그라는 워커홀릭 천사와 신입 사원 일라이자는 자신들의 업무인 '기적만들기'에 대해 자부심을 갖고 있으며, 인간들에게 무한한 애정이 있어 하느님의 지구 파괴 계획을 저지하기 위해 하느님과 내기를 한다. 하느님 집무실에 산처럼 쌓여있는 인간들의 기도 중 단 한건만이라도 한달 안에 해결을 한다면 그 계획을 중지하겠노라 선언한 것이다. 크레이그와 일라이자가 심사숙고하여 고른 기도는 샘과 로라의 이어주기. 샘도 로라에게 호감이 있고, 로라도 샘에게 호감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둘은 너무도 용기가 없어 수년 동안 대화를 나눈 경험조차 몇번 안되는 답답하기만한 커플 아닌 커플이다. 과연 이들은 데이트를 하게 될 것인가!!!

 

크레이그와 일라이자의 샘과 로라 이어주기 프로젝트는 흡사 시라노 연애 조작단이란 영화와 비슷했다. 그 무대가 천국으로 바뀌었을 뿐. 정말이지 심각할 정도로 답답한 샘과 로라의 행동 덕에 크레이그와 일라이자에 빙의 되어 순간 순간 욕이 튀어나올 뻔도 했다. 그런데 또 그 답답한 와중에 그들 관계가 아슬아슬하기 짝이 없어 간절히 이어지길 바라며 애타하는 내 모습에 실소를 터뜨리기도 했다.

 

인간이란 자신들이 참 대단한 존재라고 생각하지만 실상은 참 어리석고 하찮은 존재이다. 하느님이 심심해서 만들었다가 지겨워지니 없애버릴까...하는 한마디에 사라져버릴 수 있는 존재들이니 말이다. 하지만. 모자라서, 한심해서, 멍청해서, 어리석어서....그렇기에 더욱 사랑스럽고 깜찍한 존재라는 메시지.

 

연초에 가볍고 즐겁고 유쾌하게 읽기에 좋은 소설이었다.

 

덧) 나는 이제 열심히 물수제비 뜨는 연습을 할 거다. (이유는 직접 책 속에서 찾아보시길! ㅋㅋㅋ)

 

 

 

p. 243 빈스는 지구본을 스캔했다. 사람들이 도처에서 신문을 넘기고, 어려운 질문들을 해대며, 그날의 쟁점에 대한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 그는 속으로 웃었다. 인간들은 자신들이 이성적인 존재로서, 자신들의 가치관과 신념 체계를 따라 산다고 믿고 있었다. 사실, 그들이 내리는 거의 모든 결정을 좌우하는 것은 따로 있었다. 아침에 뭘 먹었는지, 잠을 잘 잤는지 못 잤는지, 그리고 최후의 만족스러운 오르가슴이 얼마나 오래전 일인지가 그것이었다.

p. 309 큰 표지판을 하나 만들기 바라네. 자네가 이제껏 만든 것 중에서 가장 큰 것으로 말이야. 그리고 거기에 <하느님은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써주게.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트렁커 - 제2회 중앙장편문학상 수상작
고은규 지음 / 뿔(웅진) / 2010년 11월
평점 :
품절


 

Trunker : 멀쩡한 집 놔두고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

 

제목부터 눈길을 끈다.​
멀쩡한 집 놔두고 차 트렁크에서 자는 사람은 도대체 어떤 인간들이란 말인가?!
놀랍게도 그들은 '슬트모(슬리핑 트렁커들의 모임)'라는 동호회까지​ 조직하여 활동하며, 온라인 회원은 988명. 회원 가입은 기존 회원의 추천으로만 이루어진다 한다. 비가입 회원까지 감안하면 5000여 명으로 추산한다고.....(물론 소설안에서^^;)

 

'이온두'라는 여자가 있다. 그녀는 잘 나가는 유모차 판매원이다.​ 유모차에 대한 논문을 쓰기 위해 학자들이 그녀에게 조언을 구할 정도로 베테랑이다. 그러나 그녀는 까질하다. 그것도 매우 많이. 그런 그녀의 태도에 손님들은 불만을 품고 자주 온두와 말다툼을 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꼭 맞는 유모차를 구입해 만족하며 돌아간다. 그렇게 유모차 판매일을 마치고 퇴근하면 온두는 집에 돌아가 나름 정성스럽게 저녁을 해 먹는다. 그리고 수면 가방을 들고 온두의 차가 세워져 있는 아파트 근처의 공터로 간다. 온두는 그 차의 트렁크에서 잠을 잔다. 새벽 일찍 일어나 다시 집으로 돌아가 아침을 먹고 출근을 한다. 도대체 왜....?!

 

『 p.44 트렁크에 오늘 하루를 밀폐시키면 좋겠어. 어제가 돼버린 기억들이 빠져나오지 못하게. 그렇다면 내일은 오늘과 다르게 순조로울 것 같아. 』

 

그런데 어느날.....​ 온두의 차(정확히 말하면 트렁크) 옆에 다른 차(역시 정확하게 말하면 트렁크)가 등장한다. 먼저 정착해 있는 슬트가 있다면 거리를 두고 주차해야한다는 슬트의 규칙을 깨고 말이다. 하지만 온두는 이를 따질 수 없다. 이 차의 주인은 공터의 주인이었기 때문이다. 그녀의 차를 빼달라 하면 그녀는 갈 곳이 없어지므로. 그래서 온두답지 않게 (나름) 상냥하게 그를 대한다. 그의 이름은 '이름'이라한다. 이름이 '이름'이라니! 온두와 이름은 매일밤 차 앞에 매트를 깔고 이름이 만든 '치킨차차차'라는 기억력 증진 게임을 한다. 그리고 게임에서 진 사람은 자신의 이야기를 조금씩 털어놓는다.

 

 

『 p.232 목적을 가지고 움직일 수 있단 건 행복한 일이에요. 』​

 

온두는 과거 기억이 별로 없다. 아니 있는데 그게 정말 온두의 과거인지, 온두가 마음대로 꾸며낸 이야기인지 본인 조차 구분 할 수가 없다. 이름에게 처음 게임에서 졌을 때도 온두는 진짜 기억과 거짓을 섞어 이름에게 들려준다. 그녀는 어쩌다 과거를 잊게 되었을까? 그녀는 어쩌다 자신의 진짜 이야기를 하지 못하게 되었을까? ​이름은 중지 손가락 마디가 하나 없다. 이름은 그의 이야기를 전부 온두에게 털어놓는다. 그런 이름의 이야기를 들으며 온두 또한 그녀의 진짜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다. 그렇게 그들은 서로가 서로의 상처를 치유하기 시작한다.

 

『 p.234 사람이나 건물이나 몸과 마음이 기우는 쪽이 있어요. 그 끌림이 사랑일 때도 있고, 증오나 분노일 때도 있죠. 무너질 것들은 서둘러 무너져라. 그것이 내 생각입니다. 다른 밸런시스트들과는 생각이 다르죠. 중력의 법칙을 거스르는 건 옳지 않다고 봅니다. 』

 

온두와...그리고 이름의 과거 이야기는 참으로 아팠다. 그들의 대화나 개성 강한 성격은 통통 튀며 유쾌한데도 그들의 속 깊은 이야기는 뼈저리게 아팠다. ​마음 속에 아픈 상처 하나쯤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냐만은....그럼에도 그들의 이야기는 참 많이도 아팠다. 그래도....아무리 아파도 우리는 살아가야한다. 그리고 고통과 상처를 인정하고 맞서야 한다. 온두와 이름은 트렁크라는 공간에 숨 쉴 공간을 마련하여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갔고, 서로의 이야기를 털어 놓으며 고통과 상처에 맞섰다. 어쩌면 그들의 상처는 영원히 치유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무뎌지지 않겠는가? 그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나 또한 아팠고, 하지만 위로 받았고, 그래서 따뜻해졌다.

 

『 p.252 나는 경주에 있는 모든 탑을 조사했습니다. 그중 균형을 제대로 잡고 있는 탑이 몇 개인 줄 아세요. 완벽한 균형은 없었어요. 모두 조금씩 기울고, 비틀어진 상태예요. 탑뿐 아니라 현대식 건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 눈은 그걸 확인하지 못할 뿐이죠. 』​

 

세상에 오롯이 행복하기만 한 삶을 사는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다들 조금씩 기울어진 채로, 균형을 잡아 살아가는 것이겠지.

 

 

 

(덧붙임)
희비극을 아우르는 문체나 온두의 과거 이야기에선 천명관 작가의 느낌이, 이야기가 전하려는 전체적인 메시지와 여운에선 정유정 작​가의 느낌이 났다. 어설프게 비슷한 느낌이 아니라 두 작가의 장점이 조금씩 잘 버무려진 느낌이랄까.....작가 본인이야 이렇게 다른 작가들과 비교하여 말하면 기분 나빠할지도 모르겠으나, 나는 나는 그런 어우러짐이 싫지 않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5)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