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롱나무 꽃필 적엔 병산에 가라 - 시가 있는 역사문화 에세이
배국환 지음, 나우린 그림 / 나눔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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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 찾는 시립도서관 한 구석에는 매년 여름부터 가을까지 짙은 분홍색의 꽃이 핀다.

이 꽃나무가 배롱나무인지는 확신할 수 없지만, 적어도 내가 느끼기엔 병산서원의 그 느낌과 닮았다.

꽃에 큰 감흥이 없었을 때조차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던 붉은 꽃과 검은 기와의 대비...

동요 고향의 봄에 나오는 '울긋불긋 꽃대궐'이 떠오를 정도로 장관이었다.


이 책은 정말 오랜만에 만난 역사문화에세이였다.

작가가 직접 느끼고 쓴 시(詩)와 농담 표현이 아름다운 그림이 에세이다운 감성을 마음껏 드러내주고 있어 부담없이 읽을 수 있고, 너무 설명에만 치중하지도 또 감상에만 치중하지도 않은 글이 딱 적당하다.

정말이지 비율이 딱 들어맞아 읽기도 소화하기도 편한 책이다.


그렇다고 해서 답사 갈 때 들고가서 읽고 싶은 책은 아니다.

그보다는 미리 읽어 놓았다가,

후에 석탑 앞에서든 팔작지붕 아래서든 주저앉아

"아, 그러고 보니 배롱나무가 울긋불긋한 병산서원에 대한 시를 실었던 책이 있었지'하고 떠올릴 것 같다.

그리고 여기서 배운 문화재를 보는, 혹은 역사를 보는 새로운 시각으로 두 번째 답사를 시작할 수 있겠지 하고 짐작해본다.


어렸을 적의 답사는 그저 가족여행이었고

수학여행부터 대학 다니던 때까지의 답사는 그저 야외 공부일 뿐이었다.

이제부터 바뀔 답사는 어떤 모습일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책을 읽으며, 문화유산의 다양한 모습을 담으려고 노력한 작가의 모습에 깜짝놀랐다.

문화유산은 화려한 궁궐이나 고즈넉한 사찰이 다가 아니다.

지나간 세월이 느껴지는 사지와 지나간 세월이 무심한 릉도 일부분일 뿐이고,

박물관의 수많은 유물도 전부가 아니다.

문화유산은 우리가 가는 답사지, 거기에 얽힌 이야기, 그곳에 있는 유물들,

그것이 있는 동네와 산과 들과 강, 그곳에 사는 사람들 모두가 포함된 것인데,

작가는 이 모든 것을 어느 한 곳으로 치우치지 않게 고르고 골라 책으로 만들었다.

이건 정말 대단하다.

나는 가끔 시간이 날 때면 왕릉을 찾아간다. 왕릉에 가면 묘지인데도 마음이 편하고 좋다.

무위사를 답사하다 보면 뜻하지 않은 즐거움을 맛보게 된다. 바로 근처의 월출산 자락에서 드넓은 녹차밭의 전경을 내려다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월출산 기암절벽을 배경으로 녹색의 물결이 쫙 펼쳐진 모습은 장관이다. 속이 다 시원하다. 또한 인근 달맞이 마을에서 떡 만들기 체험도 하고, 다 만들어진 떡에 녹차 한잔을 곁들여 마시노라면 세상 근심걱정이 모두 사라지고 만다.

내 카톡 대문은 / 부근리 고인돌이 지키고 있다

조금은 삐딱한 한 쌍의 받침돌 / 육중한 화강암 덮개돌

열중쉬엇 자세로 / 수억 개의 풍상을 막았다 / 주인을 위해...

주인은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 머문 자리가 깨끗하다

육신이 사라진 자리를 / 충견은

아무런 불만 없이 지키고 있다 / 혼백을 위해

품위를 잃지 안고 / 선사의 모습 그대로...

명품이다

"3년 동안 피난 생활을 마치고 북단장에 돌아오니, 아궁이 앞에는 당판 전적들이 불쏘시개로 산더미 같이 쌓여있고 (중략) 청계천변 노천에도 내 서책이 나타나고 고물상 창고에도 나의 애장본이 꽂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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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사의 맛 - 교정의 숙수가 알뜰살뜰 차려 낸 우리말 움직씨 밥상 한국어 품사 교양서 시리즈 1
김정선 지음 / 유유 / 2015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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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말 동사를 풀어 쓴 '사전'이지만 재밌다. 1부에서는 주어진 동사를 엮어 한 남녀의 이야기를 만들었고, 맞춤법이 쉽게 기억될 수 있게 깨알같은 팁도 콕콕 박혀있다. 책 속 문장도 서정적이여서 아름답다. 700번대 책이지만 900번대에 넣어도 괜찮지 않을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니까. 역시 오랫동안 남의 글을 손보고 다듬는 일을 해 온 사람의 문장력은 위대하다.


우리말 공부용으로도 알차다. 이 책을 읽은 덕분에 시험 문제를 하나라도 더 맞출 수 있었다. (바람이)불다, (얼굴이)붓다, (국수가)붇다의 활용형을 쓰는 문제였다.


동사는 정말이지 육수와 양념이다. 음식은 간만 잘해도 맛있다는 말이 있다. 문장도 적절한 동사로 간을 보태면 보는 눈이 절로 반짝여지고 생각이 즐겁다. 그래서 내가 쓰는 글이 밍밍했던 모양이다. 게임 속 아이템처럼, 책을 사용해서[읽어서] 내 글솜씨 레벨이 높아질 수 있다면 좋을 텐데 말이지...


조리법대로 만든다고 해서 모든 음식이 맛있는 것은 아닌 것처럼(내가 만들면 다 맛이 없다), 문장도 누군가가 이러이러하고 저러저러하다 라고 일러준다고 해서 다 맛깔나지는 건 아닌 것같다. 분명 책을 읽을 때는 쓰임도 활용도 다 이해하는 줄 알았는데 덮고나면 막막하고 아리송하다. 결국, 요리도 글쓰기도 나만의 '간 맞추기'가 몸에 익어야 하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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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인은 모나리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 동양의 눈, 서양의 시선
크리스틴 카욜.우훙먀오 지음, 전혜영 옮김 / 에쎄 / 2016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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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중국인 프랑스어학과 교수 우훙먀오와 프랑스인 철학자 카욜의 대화로 보는 서양 그림 탐험!

이지만 서양화에 대한 설명을 기대한다면 다른 책을 보는 편이 좋다.

유럽미술관에 갔는데, 어느 한 그림 앞에서 동양인과 서양인 두 사람이 대화를 하고 있다고 상상해보자.

귀에 들려오는 둘의 대화 내용이 제법 흥미롭다 하는 사람은 이 책을 정말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대화라서 쉬운 내용일 줄 알았는데, 평범한 사람이 아닌 교수와 철학자의 대화일 줄이야.

그래도 쿵짝이 잘 맞는 두 교양인의 대화를 읽는 건 즐거웠다.

삽화도 실려 있어 마음에 드는 그림도 몇 점 담았고, 서양의 암호같은 종교적 그림을 해독할 수 있는 열쇠도 습득했으니

시간을 들인 만큼 얻은 것도 풍족한 셈이다.

이왕이면 2탄으로 카욜이 동양화에 대해 궁금했던 점을 묻고 우 교수가 답하는 책도 나왔으면 좋겠다.


원제는 '중국인은 모나리자를 보며 무슨 생각을 할까' 였는데, 한국어판으로 번역을 하며 동양인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우리도 흔히 동양화라는 단어를 쓰고 책 속의 우훙먀오 또한 동양화라는 단어를 사용하니 문제될 것은 없겠다.

다만, 몇년 전 들었던 '한중일 3국의 주거와 정원 문화를 비교한 수업'을 진지하고 흥미롭게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자면,

중국인이 서양화를 보는 시각과 한국인을 비롯한 다른 동양인이 서양화를 보는 시각이 과연 같을 것인가 하는 의문이 남는다.

우훙먀오 교수의 시각이 나와 비슷하기도 했지만 큰 차이를 보이는 곳도 있었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나는 이 책을 읽고나서야 수태고지의 뜻과 길 잃은 어린양에 대한 정확한 이야기를 알았다.

우훙먀오 교수 또한 동양인이자 기독교 혹은 카톨릭 문화를 많이 접해보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성경과 종교적 상징이 가득한 서양화를 이해하는데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그렇다면 같은 동양인이어도 관련 종교를 가진 사람에게 서양화는 어떻게 다가올까?

우: 제가 당신의 말을 제대로 이해했다면, 서양인은 그림을 읽는다고 표현해야 옳을 거예요. 그림을 보면서 성경에 나오는 장면을 상상하고 그 안에 담긴 이야기를 되새길 테니까요.

카욜: 그림을 ‘읽는다‘는 표현이 참 재미있네요. 그림 속 이미지를 읽으면서 우리 서양인은 그림에 담긴 의미를 해석하죠...화가는 하나의 주제를 결정하지 읺습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여러 주제를 그림에 담죠. 그래서 누구나 잘 알고 있는 성경 이야기가 자주 등장하는 거에요.

도덕적 양심도 그런 믿음에서 싹트는 것 같아요. 프로이트가 말한 인간의 ‘초자아‘가 개인의 ‘내면‘에서 형성되는 것이 아니라 조상의 ‘전全 과거‘에서 형성된다고나 할까요.

...나라를 위해 일하는 대신과 참모는 왕에게 문제를 대놓고 언급하지 않았어요. 특히 왕과 직접 관계된 문제일수록 우회적으로 의사를 전달했죠. 숨은 의미를 알아차릴 수 있게 시나 경구, 짧은 이야기를 지어서 바치는 식으로 말입니다.

그래서 그림은 함께 봐야 하나봐요. 서로 주고받는 맛에 말이 느는 것처럼 그림도 누군가와 공유할 때 시선이 트이는 듯한 느낌을 받거든요.

화가는 나르키소스와 관련된 신화를 완벽하게 모르는 상태에서 이 작품을 그렸을지도 몰라요. 신화에서는 나르키소스가 물에 비친 자신의 완벽한 얼굴을 보고 반하는데 카라바조의 작품은 그렇지 않잖아요. 나르키소스는 자신의 어두운 면, 괴물같이 흉측한 면을 응시하면서 그 모습을 받아들이고 있다고 볼 수도 있어요. 그런 의미에서 카라바조는 자신을 제대로 알려면 본인이 저지른 일탈 행위와 폭력적인 모습까지 인정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 같아요.

대사들(한스 홀바인, <대사들>, 1533, 런던 내셔널 갤러리)카욜 : 신비한 느낌을 주는 이 물체는...미술 용어로 아나모르포즈anamorghose라고 해요...아나로포즈 기법이 적용된 이 그림을 제대로 감상하려면 시선을 한 방향으로 고정해서는 안 돼요.우 : 그림의 의미를 단편적으로 해석하지 않으려면 계속 위치를 바꿔가며 봐야겠어요.

(장 푸케, <페라라 법정의 어릿광대 고넬라>, 1450, 빈 미술사 박물관)어릿광대는 사람들 앞에서 연기를 해야 하니까요. 보통은 친근한 이미지를 보여주지만, 때로는 자신의 개인적인 고통을 애써 숨기며 광대짓을 해야 할 때도 있어요. 왕과 왕에게 조언하는 신하를 그린 초상화와 어릿광대의 초상화를 비교해보면 분위기가 다르다는 걸 알 수 있어요. 광대는 광기가 있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인간의 광기를 가치 있는 것으로 평가한 에라스뮈스는 <우신예찬>에서 광기가 지혜를 가져온다고 주장했죠...모자와 의상 등을 보면 그가 어릿광대짓과 우스갯소리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한눈에 알 수 있어요. 하지만 그 너머로 어릿광대의 진정성과 위험을 무릅쓰는 과감함이 느껴지죠. 심지어 진실을 지키고자 하는 비장함까지 엿보이고요. 예술가는 어릿광대처럼 ‘진실 말하기‘를 두려워해서는 안 돼요. 공식적으로 발표된 진실이 아닌 숨겨진 이면을 드러내고 표현할 줄 알아야 하죠.

원래는 과일을 놓은 탁자 옆에 창녀촌을 찾은 선원이 있었대요. 그런대 그림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피카소가 그 남자를 지웠다고 해요. 저는 피카소가 여성들로 하여금 그 남자를 잡아먹게 내버려뒀다고 상상해요. 그래서 최종적으로 작품에는 여성들만 남아 있게 된 거고요.

서양화에 재현된 자연은 수동적이거든요. 그림이 만들어낸 시각적 효과가 관객에게 어떤 인상을 주는지에 더 치중했다고 할까요. 그래서인지 서양화가는 자연을 ‘머리로‘ 그리는 것 같아요. 동양화가보다 지능적으로 그림을 그리는 거죠. 동양화가는 ‘보이기 위한‘ 자연을 찾지 않아요. 화가가 직접 그 안에 들어가 자연에 도취된 상태에서 그림을 그리죠...동양화가들이 자연에 들어가 일체감을 느끼며 작업한다면 서양화가들은 자연을 마주보는 대상으로 여기고 관찰하면서 그림을 그리는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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一個人的第一次 일개인적제일차
高木直子 지음 / 섬서사범대학출판사(陜西師范大學出版社) / 2007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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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150cm life의 저자인 다카기나오코 의 책. 원제는 はじめてだったころ인데, 아직 한국어로는 번역이 되지 않은 것 같다. 왠지 북얼리어답터가 된 느낌ㅋㅋㅋ


처음 맥도날드에 갔을 때, 처음 밤을 샜던 날, 첫 알바의 기억, 처음 술을 마신 날 일어난 일 등 작가의 처음에 대한 기억이 아기자기한 그림과 함께 펼쳐진다.

시험 잘 보려고 처음으로 밤샘 공부를 했던 날, 막판에 까무룩 잠이 들어 지각할 뻔하고 시험도 망했다던 에피소드는 내 이야기인 줄 알았다ㅋㄱㄱㅋㅋ

잊고 있던 첫 기억을 만나 즐거웠지만, 한편으론 나도 나이를 꽤 먹었구나..앞으로 이렇게 반짝거리는 처음을 얼마나 더 만날 수 있을까 싶어 아쉽기도하다. 더 다양한 분야에 관심을 가지고 가깝든지 멀든지 자주 돌아다녀야지!

늦은 밤에 읽으며 추억팔이하기 딱 좋을 책.

"眯瞪一下就好了……先睡一个小时吧。"
如此这般,结果昏睡到最后一刻……
"哇啊啊~不赶快去学校不行~根本还没背完!!"
段考成绩当然惨不忍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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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 2
베르나르 베르베르 지음, 전미연 옮김 / 열린책들 / 2017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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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 내용이 궁금해서 하루만에 다 읽었다. JK48을 통해 이미 이야기의 끝을 알고는 있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흥미롭게 읽을 수 있었던 건 작가의 뛰어난 스토리텔링 덕분. 하지만 한편으로는 개미 등을 읽었을 때만큼의 충격과 기발함이 사라진 것 같아 아쉽기도 하다. 12살에 만났다면 잠도 개미만큼 재밌게 느껴졌을까? 

붉은 모래섬에는 이제 JK48 혼자만 남았다. JK28이 맨발로 걸어가면서 남긴 자국들만 해변에 찍혀있다.
‘내가 눈여겨보지 않았을 뿐, 내게 보내는 신호들은 이 붉은 섬에 늘 있었다...걸음을 멈추고 차분히 관찰할 시간을 갖지 않고 박물관의 전시실을 옮겨 다니기에만 급급한 사람처럼, 내가 그것들을 지나쳤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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