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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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들 위주로 서술한 책이라 더 재미있었다. 그들이 목숨을 걸고 탐험한 고개들을 오늘날에는 유튜브로 바로 찾아볼 수 있다는 게 아이러니.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영-러 갈등이 메인이지만 뒤로 갈수록 우리 역사와도 맞닿은 부분이 있어서 흥미로웠다. 두꺼운 벽돌책인데 다 읽어서 매우 뿌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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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엄마는 넷플릭스 매니아다. 조금 이름난 작품 중에 안 본 게 거의 없다. 어디선가 '이거 재밌더라'는 말을 듣고 넷플에 들어가 그 작품을 검색해보면 이미 누군가 다 봤다는 표시가 뜬다.(영상 밑의 빨간 줄) 엄마한테 물어보면 몇 년 전에 봤다는 답이 돌아온다. 요즘 젊은 세대들이 영상에 중독되어 있다고들 하는데 꼭 젊은 세대에 국한된 말도 아니다. 내 주변에서 넷플릭스랑 유튜브를 제일 좋아하고 많이 보는 사람은 우리 엄마니까.


아무튼 엄마가 며칠 전에 <오프로드 인생 여행>이라는 작품을 추천해줬다. 찾아보니 이스라엘 배우 두 명이 중앙아시아를 여행하면서 촬영한 리얼리티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다른 건 모르겠고 '중앙아시아'라는 것에 꽂혀서 나도 어제부터 이 작품을 정주행하고 있다. 중앙아시아 5개국을 다 도는 건 아니고 한 달 동안 카자흐스탄과 키르기스스탄만 여행할 계획이라고 했다.


이건 딴 소리인데 과거 소련 소속이었다가 독립한 중앙아시아 5개국 나라 이름을 외우는 방법이 있다. 유튜브 채널 '두선생의 역사공장'에서 알려준 방법이다. 왼쪽 하단에서부터 시계 방향으로 원을 그리면서 '투.우.카.키.타'를 외치면 된다. '투우'는 황소 싸움 그 '투우'를 생각하면 잘 외워지고 '카키타'는 그냥 왠지 모르게 입에 착 달라붙는다. '투우카키타'는 순서대로 투르크메니스탄, 우즈베키스탄, 카자흐스탄, 키르기스스탄, 타지키스탄이다. 이 방법을 알게된 후로 중앙아시아 5개국 위치는 확실하게 외우고 있다.(뿌듯)


<오프로드 인생 여행>에 나오는 배우 둘은 이스라엘에서 상당히 유명한 사람들인 것 같다. 아, 참고로 남자와 여자다. 동성 친구가 아니다ㅋㅋㅋ. 어느 작품에서 만나 친해진 것 같은데 각자 배우자가 따로 있다고 한다. 떠나기 전에 심리상담가와 만나 대화를 나누는 장면이 있는데 중앙아시아 여행 가서 둘이 사랑에 빠질 확률은 없는 거냐는 질문이 나온다. 그래, 나도 이게 제일 궁금했다. 둘은 사랑에 빠질 거였으면 이미 이스라엘에서도 빠졌을 거다, 중앙아시아까지 가서 그런 일이 생길 리는 없다고 답한다. 흐흠. 그렇군. 아무튼 여성 배우(=로템)는 진짜 유명한가보다. 자신은 이스라엘에서 이룰 수 있는 건 다 이룬 것 같다며 뭔가 새로운 걸 경험하고 싶어서 이걸 하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내가 속한 사회에서 커리어의 정점을 찍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저 자신감. 왠지 멋지다. 남성 배우(=리오르)는 원래 지프차 타고 오프로드 여행을 해보고 싶었던 것 같다. 로템은 오프로드나 지프를 별로 좋아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뭔가 새로운 걸 해보고 싶어서 같이 온 것 같고. 그래서인지 지금 첫 번째 에프소드를 보고 있는데 둘이 계속 삐그덕거린다. 


사실 둘이 대화하는 방식 자체가 그렇다. 리오르는 '너는 왜 나를 위로하거나 격려해주지 않아?' 이러면 로템은 '그야 당신이 잘난 척을 하니까 그렇죠' 이런 식이다. 그나저나 둘의 대화는 로템이 리오르에게 존댓말을 하고 리오르는 로템에게 반말을 하는 설정으로 번역이 되어 있다. 리오르가 로템보다 나이가 많다고는 하지만 정말 이렇게 했어야만 했을까? 나이 차이가 있다고는 해도 둘이 친구라는 설정이고 이스라엘 언어에는 우리나라 말 같은 존댓말 체계가 없을텐데 말이다. 그래서 챗지피티한테 둘이 나이 차이가 얼마냐고 물어봤더니 억ㅋㅋㅋㅋ12년 차이라네. 리오르가 로템보다 12살 더 많다고. 아 그럼 존댓말로 번역한 것도 인정이다ㅋㅋㅋㅋㅋㅋㅋㅋ갑자기 수긍.


나는 이 프로그램을 통래 이스라엘 수도 텔 아비브를 처음 봤다. 이스라엘은 맨날 파키스탄이랑 전쟁한다는 소식으로만 접해서 어떤 나라인지 잘 몰랐었는데 텔 아비브는 현대적인 도시 그 자체였다. 뭔가 신기했고 놀라웠다. 근데 또 이 글을 쓰면서 네이버를 찾아보니 이스라엘 헌법상 수도는 예루살렘이고 국제법상 수도는 텔 아비브라네. 복잡하다 복잡해. 아무튼 영상으로 처음 접한 텔 아비브는 너무 깔끔하고 현대적인 수도였고, 이스라엘이 파키스탄이랑 전쟁을 하거나 말거나 이란이랑 미사일을 쏘거나 말거나 거기 사는 중상류층 사람들은 편하게 살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니까 약간 기분이 묘했다. 한류가 대중화되기 전에, 외국인들이 서울 와보고 깜짝 놀랐던 것과 비슷한 기분일까나. 한국은 북한이랑 전쟁 중인 나라라고 생각했을텐데 막상 한국 사람들은 평온한 일상을 살고 있고 서울에 고층 건물들이 우수수 세워져 있었으니까 말이다.


로템이랑 리오르는 키르기스스탄에서 여행을 시작한다. 공항 도착해서 지프차를 수령하고 도로를 벗어나 오프로드 길로 들어선다. 광활한 초원이 끝도 없이 펼쳐져 있고 그 뒤로 눈 덮인 설산까지 보여서 너무 예뻤다. 나는 중앙아시아 하면 막연하게 사막화된 황폐한 초원을 상상했는데 그렇지 않았다. 푸릇푸릇한 풀들로 덮여 있었고 생각지도 못한 설산까지 볼 수 있는 곳이었다. 키르기스스탄은 다른 중앙아시아 나라들과 다르게 국토의 대부분이 산지라고 한다. 그 산은 바로 천산 산맥. 천산 산맥은 중국에만 있는 줄 알았는데 키르기스스탄까지 뻗어 있구나. 너무 예뻤다. 동양의 스위스라고 불려도 손색 없는 풍경이었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눈이 작고 얼굴이 동글동글한 전형적인 몽골리안형 얼굴을 가지고 있었다. 동양과 서양의 중심 지점인 중앙아시아에 위치해있는데도 서양권과의 혼혈 느낌이 전혀 없었다. 중국 신장 지역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오히려 키르기스스탄보다 더 동쪽에 위치한 신장 사람들이 훨씬 더 혼혈 느낌이 강했다. 키르기스스탄 사람들은 그냥 몽골 사람처럼 생겼다. 또 충격인 건 이 사람들의 전통 놀이인 '콕 보루'를 시작하기 전에 '앗살람 알라이쿰' '오, 알라신이시여' 이러면서 기도를 하는 거다. 그러니까 이 나라는 '튀르크계(돌궐계)'로 분류되며 한때 러시아에 속했던 영향으로 러시아어를 쓰기도 하지만 자신들의 키르기스어(튀르크계 언어)를 여전히 사용하고, 겉모습만 보면 전형적인 몽골리안인데, 종교적으로 보면 대다수가 이슬람을 믿는다고 한다.(물론 다양한 종교가 존재한다.)


위에 잠깐 언급한 '콕 보루'를 관람하는 장면이 <오프로드 인생 여행> 1화에 나온다. 말에 탄 키르기스스탄 남자들이 살아있는 염소를 공처럼 몰면서 진행하는 경기다. 심지어 경기가 끝나면 그 염소를 먹는다(ㅠㅠ) 리오르랑 로템 둘 다 채식주의자인 것만 봐도 이들의 동물권 감수성이 어떠한지 알 수 있다. 그런데 키르기스스탄으로 여행을 왔으니까 전통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이걸 보러 온 거다. 로템은 공황발작이 올 것 같다면서 아예 보지 않았고 리오르는 그래도 이 사람들의 문화라면서 힘들긴 했지만 지켜보기는 했다. 둘의 대화가 재미있다.


리오르: 나는 저기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야. 저건 저들의 문화잖아.

로템 저 사람들의 문화고, 50년이나 100년 전에는 당연한 거였죠. 하지만 이젠 달라져야 해요. 용납될 수 없어요.

리오르: 그럼 전통을 어떻게 보존해?

로템: 다른 방법을 찾아야죠. 말을 학대하거나 양을 도살하지 않고도 전통을 지킬 방법을 분명히 찾을 수 있을 거예요. 유대 전통에는 남자가 아내를 여러 명 두던 시절이 있었죠. 우리가 그 전통을 고수해요?

리오르: 맞아.(먼 산 보기...)


나는 두 명한테 다 공감이 되어서 재밌었다. 그들의 전통이니까 우리가 판단할 문제가 아니라는 입장도 충분히 이해되고, 아무리 전통이라고 해도 모든 걸 다 보존할 수는 없으며 분명히 변화가 필요하다는 입장도 진짜 공감이 간다. 둘이 성격이 달라서 보는 재미가 있다. 둘이서 똑같은 것만 얘기하면 재미가 없으니까 말이다. 그러나 저러나 '나는 저기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노력 중'이라는 리오르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나도 많은 곳엘 다녀봤지만 때로는 낯선 사람들의 행동에서 눈살을 찌푸릴 때가 많았다. 나는 낯선 사람들의 문화에서 아름다움을 찾으려고 항상 노력했던가?


넷플릭스 중독자, 아니아니 넷플릭스 매니아인 엄마 덕분에 재미있는 작품을 발견해서 즐거운 나날을 보내고 있는 중이다. 나는 아무리 누가 추천해줘도 내 취향이 아니면 절대 안 보는데 이건 내 취향에 딱 부합해서 정주행하고 있다. 지금 2화 보고 있는데 둘이 또 싸울 각이다ㅋㅋㅋㅋㅋㅋ. 12살 차이 이성 친구인데 이렇게 싸우면서 여행하는 것도 능력이다 정말ㅋㅋ.


심리상담가: 리오르에게 뭐라고 했죠?

로템: 이번 여정에서 제 목표는 복잡한 생각을 정리하고 마음의 평화를 찾는 거라고 했어요. 리오르고 잘 이해했고 우린 차 타고 외딴곳으로 가기로 했죠. 새랑 바람 소리, 그리고 리오르의 목소리만 듣고 싶어서요.

심리상담가: 좋은 생각이군요. 그런 말이 있어요. 다른 모든 입자와 멀리 떨어져서 홀로 우주를 떠도는 두 원자에게 남은 운명은 서로 충돌하는 것뿐이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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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여행할 땐, 책 - 떠나기 전, 언제나처럼 그곳의 책을 읽는다
김남희 지음 / 수오서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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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로그를 운영한 지 몇 년 되었다. 블로그를 운영하기 전에도 일기 쓰는 걸 좋아해서 여행지에서 항상 수첩을 사서 일기를 썼다. 그러니 기록자로 살아온 세월이 수 년, 길게 잡으면 십 년도 넘었을 것인데 나는 아직까지도 글을 너무 못 쓴다.

인터넷에서 ‘N의 일기, S의 일기’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N의 일기는 ‘그런 일도 있는 거다. 그런 날도 있는 거다. 그런 관계도 있는 거다(아이유 일기)’ 이런 식이다. 그에 비해 S의 일기는 이런 식이다. ‘오늘 뭐뭐를 했다. 오늘 뭐뭐를 먹었다. 그리고 누구와 만나서 어디 카페에 갔다.’ 누군가는 S의 일기를 보고 ‘코로나 확진자 동선 아니냐’고 했다. 반박할 수 없었다.

아주 오랜 시간 일기를 쓰면서도 내 글은 코로나 확진자 동선을 벗어난 적이 없다. 모든 건 시간순으로 써야 하고(시간순을 벗어나면 죽는 병에 걸렸다) 어디에 가서 무슨 메뉴를 먹었고 얼마였는지 정확한 정보를 남기는 것에 굉장히 많은 공을 들인다. 그래도 나는 이런 내 글쓰기 스타일이 좋다고 생각하면서 살았는데…아 그렇지 않았다. 좀더 잘 쓸 수 있었다는 걸, 글은 이렇게 써야 한다는 걸, 이 책을 읽고 깨달았다.

여행작가 김남희의 책은 이 책만 읽었다. 여행기를 싫어하는 편은 아닌데, 아니 꽤나 좋아하는 편인데 왜 그동안 이 작가를 몰랐을까. 아무튼 재작년 8월에 잠시 한국에 머물 때 도서관에서 이 책을 빌려 읽었고 나는 이 책에 완전히 빠져들었다.(사족인데, 나는 초록색 표지의 책을 좋아한다. 오로지 초록초록 표지에 끌려 읽은 책이 서영채의 <왜 읽는가>, 그리고 이 책이었다. 둘 다 완전 너무 좋았다. 역시 초록은 배신하지 않지.)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음료를 주문해놓고 이 책을 읽었던 기억이 난다. 너무너무 좋은데 도서관 책에 밑줄을 칠 수 없으니 핸드폰으로 사진을 찍고 집에 와서 노션으로 옮겨적었다.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최근 들어 노션 기록을 살펴보다가 이 책의 인상깊은 구절들을 다시 한 번 읽어보게 되었다. 아니 잠깐. 이 책이 이렇게 좋았었나? 2년이 지나 다시 읽으니 이 책의 문장들이 나에게 더욱 와닿았다. 책값도 비싸지 않고 전자책도 있고 에라 모르겠다, 이 책을 사자! 이렇게 되어버려서 오늘 전자책 적립금을 사용해서 이 책을 구입했다.

처음부터 다시 읽고 있는데, 2년 전에 읽었을 때보다 훨씬 더 좋았다. 전자책을 읽은 세월이 너무 길어서 이제 종이책보다 전자책이 더 와닿는 걸까? 아니면 빌려 읽은 책보다 사서 읽은 책이 더 좋은 법인 걸까? 왜인지는 모르겠으나 그때 도서관에서 빌려 읽었을 때보다 문장 하나하나가 더 크게 와닿았다. 비루한 블로그 글을 쓰고 나서 이 책을 읽어서 더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뭐 먹었다. 뭐 했다’의 향연인 내 글을 보다가 ‘두 번째로 소설을 완독한 날은 소슬한 바람이 창 너머 벚나무의 검푸른 몸피를 쓸고 지나가는 아침이었다.’ 이런 문장을 보니까 내가 아무리 여행을 좋아해도 여행작가가 될 수 없었던 이유를 단박에 깨달았다.

이 책은 여행지와 책을 결합한 산문집이다. 나는 이런 류의 책으로는 ‘여행자의 독서 1,2’가 최고라고 생각하면서 살아왔는데 이 책을 읽으면서 너무 행복했다. 여행과 책을 결합한 또 다른 멋진 책이 등장한 것이다. 게다가 문장도 좋다니, 나에게는 더할나위 없는 책이었다.

이 책의 정서는 복합적이다. 행복하고 충만한 시간에 대해서 쓰면서도 또 외롭고 쓸쓸한 마음에 대해서도 쓴다는 게 좋았다. 사실 나도 혼자 있는 걸 정말 좋아하는 사람인데 나도 인간인지라 혼자 있는 매순간이 짜릿해서 미칠 것 같은 건 아니다. 어쩔 수 없이 가라앉을 때도 있고 고독을 느낄 때도 있다. 아무리 사람을 좋아한대도 사람 속에서 쓸쓸함을 느낄 때가 있듯이 혼자 다니는 걸 좋아하는 사람도 가끔 가라앉을 때가 분명 있다. 그런 감정을 숨기지 않고 그렇다고 과장하지도 않고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게 너무 좋았다.

[누구도 나를 모르는 그곳에서 나는 자유로우면서도 외로운 이방인이다. 저물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문득 혼자임이 새삼스러워질 때,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가기에는 애매한 오후의 시간에, 빗소리에 잠들지 못하고 뒤척이는 밤에, 오가는 골목에서 눈길을 끄는 카페를 발견했을 때, 간이역에서 열차를 기다릴 때, 습관처럼 책을 편다.]

“저물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문득 혼자임이 새삼스러워질 때”라는 구절이 너무 좋아서 오래도록 응시했다.

나는 30대 이후로는 계속 한국과 한국 바깥을 왔다 갔다 하면서 지냈는데 그 생활이 좋으면서도 문득 저런 감정을 느낄 때가 있었다. 머물고 있는 지역이 너무 좋고 그곳에 살고 있는 사람들의 삶이 너무 좋아보여서 나도 여기 오래오래 눌러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다가도 나랑 그 사람들의 입장이 다르다는 생각을 하곤 했다. 그 사람들은 여기에 가족도 있고 친척도 있고 친구도 있지만 나는 아무 것도 없는 이방인일 뿐이다. 내가 여기에 산다고 해서 결코 내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들의 삶처럼 되지 않는다는 깨달음이 밀려오는 거다.

내가 부러워하는 그 사람들처럼 살려면 한국에서 가족을 꾸리고, 가족들과의 삶을 소중히 여기고, 친구들을 자주 만나고 그래야 하는데 나는 그게 되지를 않는다. 결혼하고 나서는 자식도 낳지 않고 남편이랑 둘이 자유롭게 살았다. 지금도 이런 삶이 너무 좋고 절대 바꿀 생각이 없다. 그럼에도 문득 한국에서 성실하게 일하며 가족과 친지들에 둘러싸여서 사는 삶을 좋아하고 즐기는 사람들을 볼 때면 부럽다고 생각한다. 다음 생이 있다는 걸 믿지 않지만 만약 그런 게 있다면 태어난 곳에서 쭉 살다가 죽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말이다. 이번 생에는 역마살을 이기지 못해 너무 떠돌아서 그런지 한 곳에서 붙박이처럼 사는 사람들에 대한 경외감이 있다. 말로도 글로도 다 표현할 수 없는 그런 감정들이 “저물 무렵 집으로 돌아가는 이들의 모습에 문득 혼자임이 새삼스러워질 때”라는 구절에 담겨 나에게 떠밀려왔다. 이게 책 맨 앞의 프롤로그인데 여기서부터 좋으면 어떡하란 말이냐 이러면서 나는 밤새워 책을 읽었다.

이런 문장들이 너무 좋다.

[시공간을 축으로 진행되는 우리의 삶에 있어서 시간은 죽음이라는 일방통행로를 따라 모두에게 같은 속도로 흘러간다. 시간이 우리의 의지와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데 비해 공간은 유동적이며 탄력적이다. 선택의 가능성이 있기에, 우연적으로 일어난 일, 찰나의 스치는 만남, 이런 것들이 어떤 공간에서는 필연적으로 운명적인 결과로 변할 수도 있다. 삶에서 예외성을 기대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상상을 열어주는 공간'이다. 어떤 장소는 우리의 상상을 현실화시키고, 더 나아가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새 삶을 열어주기도 한다. 공간을 바꾼다는 것은 결국 삶의 예외성과 우연성 속으로 뛰어들어 삶 자체를 바꾸어내려는 의지가 아닐까.]

이런 냉철함도 너무 좋구요.

[여행으로 밥을 벌며 살아가는 지금, 나는 여행자와 관광객에 대한 분별심을 경계하게 되었다. 내 여행이나 당신의 관광이나 큰 차이가 없고, 내가 가고 당신도 가는 그곳은 더이상 오지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술의 발달과 경제 수준의 향상은 어디에 살든지 모두의 삶을 비슷하게 만들었고, 여행에 있어서도 마찬가지다. 모험은 거의 불가능해졌고, 오지도 대부분 사라졌다. 여행은 이제 클릭 몇 번으로 간단히 살 수 있는 상품이 된 지 오래다. 내 친구의 말처럼 인류는 탐험을 여행으로 만들어왔고, 여행은 점점 관광이 되어가고 있다. 그러니 지금 나에게 의미 있는 질문은 여행 혹은 관광이라는 행위에 따르는 책임에 관한 것이다. 우리가 어떤 이름으로 스스로를 규정하든 우리는 모두 지나가는 이방인일 뿐이고, 지나가는 이의 미덕은 흔적을 남기지 않는 것이기에.]

게다가 이런 문장도 너무 좋다. 

[청춘의 시절, 나에게 조르바는 모든 구속으로부터 해방된 자유로만 읽혔다. 40대 후반이 되어 다시 읽은 조르바는 내게 자유 그 너머의 것을 말한다. 진정한 자유는 그 자유를 가져온 열정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는 것이라고. 자신의 욕망과 감정에 충실하기는 쉽지만 그 감정 안에 갇혀 있지 않기는 어렵다. 조르바를 동경해 조르바처럼 살고 싶었던 20대의 나는 지나갔다. 빛의 세례를 누리며 살아가되 광기에 휩싸이지 않는 것. 열정을 잃지 않되 정도를 벗어나지 않는 것. 내 남은 인생에서 바라는 것은 그 정도다.]

진정한 자유는 그 자유를 가져온 열정으로부터도 구속되지 않은 것이라니.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문장들이 너무 많았다.

지금도 나는 한국이 아닌 곳에서 강아지들의 웡웡 거리는 소리를 들으며 이 글을 쓰고 있다. 도대체 오늘은 20대1 패싸움이라도 하는 건지 강아지 한 마리의 낑낑 거리는 소리가 너무나 애처롭다. 이럴 때 이 책과 함께라서 너무 행복하다. 한 문장 한 문장 곱씹어가면서 나도 앞으로 이런 여행기를 써야겠다고 새삼스레 다짐도 해보고, 스스로 떠도는 삶을 택한 사람의 기쁨과 슬픔을 몰래몰래 엿보며 무릎을 탁 치며 공감하기도 한다.(그런데 항상 떠돌다보니 숙소를 굉장히 중요시하고 꽃을 가져다 놓거나 엽서를 붙이기도 한다는 부분에서는 역시 사람은 다 다르다는 생각을 했다. 나는 숙소에 돈 들이는 걸 너무 아까워해서 정말 거지같이 다닐 때도 많았던지라....흠흠) 

아무튼 이 책은 여행과 책을 좋아하는 사람에게는 무조건 추천하고 싶은 그런 책이다. 주의할 점은 단 하나. 가고 싶은 여행지와 읽고 싶은 책이 지나치게 늘어난다는 것. 나는 지금 '리스본 가고 싶어ㅠㅠ' 이러면서 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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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한글과 타자기 - 한글 기계화의 기술, 미학, 역사
김태호 지음 / 역사비평사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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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글의 기계화에 대한 진짜 흥미로운 이야기. 모아쓰기와 풀어쓰기, 두벌식 세벌식 같은 벌식 논쟁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공안과의 공병우 박사 분량이 생각보다 많았는데 한글 타자기에 기여한 바를 생각하며 열심히 읽었다. 한글 세벌식 자판, 영문 드보락 자판이 매우 궁금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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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레이트 게임 - 중앙아시아를 둘러싼 숨겨진 전쟁
피터 홉커크 지음, 정영목 옮김 / 사계절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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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 꽤 두꺼워서 언제 읽나 싶었는데 중반부 넘어가니까 속도가 상당히 붙는다. 몇몇 챕터는 숨도 못쉬게 재미있다. 실화인데다가 잔인무도한 내용이 많아 이걸 재미있다고 표현하기가 좀 그렇기는 한데 아무튼 중반부를 넘어가면 책 읽기를 멈추기가 싫을 정도로 무지무지 흥미롭다. 웬만한 지명들도 머릿속에 들어와있기 때문에 지도를 찾아보지 않아도 쭉쭉 책을 읽어나갈 수 있게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 이름은 계속해서 메모를 해야 한다. 사람이 어마어마하게 많이 나온다. 게다가 계속 바뀐다. 인도 총독이 도대체 몇 명째 바뀌는 건지;;; 사람 이름은 메모 필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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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1에서는 알렉산더 번스 이야기까지 적었다. 이 사람 별명이 '부하라 번스'라길래 부하라와 관련된 엄청난 사건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렇지 않다. 알렉산더 번스는 오히려 카불과 더 연관이 있다. 다만 영국인으로서는 처음으로(맞나?) 부하라에 다녀왔다는 사실 때문에 '부하라 번스'로 불렸던 듯 하다. 이 사람 계속 카불에 머물렀고 카불에서 죽는다.


이 카불 이야기가 <그레이트 게임> 중반부의 하이라이트다. 1차 영국-아프간 전쟁(1839-1842)이라고 불리는 사건이다. 그 다음으로 중요한 사건이 부하라에서 영국인 장교 두 명이 참수되는 사건(1842)이다. 이 책의 맨 첫 장에 등장한 찰스 스토다트와 아서 코널리다. 이 둘의 죽음 역시 1차 영-아프간 전쟁과 무관하지 않으므로 역시 가장 하이라이트는 1차 영-아프간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영국-아프간 전쟁의 원인은 기본적으로 영국이 제공했다고 볼 수 있다. 가만히(?) 있던 아프간에 들어가서 지도자를 바꿔놨으니 말이다. 아프간은 그당시 통일 왕조가 없이 각 부족들이 난립한 상황이었다. 영국은 아프간에 통일 정권을 세우고 싶었다. 각 부족이 분열되어 있으면 영국이 컨트롤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각기 이해관계가 다르기 때문에 러시아의 꼬드김에 넘어갈 가능성이 컸기 때문이다. 영국은 아프간에 꼭두각시를 앉혀두고 아프간이 인도의 보호자 역할을 수행하도록 만들고 싶었다(정말 욕심도 크다;;).


그 당시 카불 통치자는 '도스트 무함마드'라는 인물이었는데 몇몇 영국인들은 그냥 이 사람을 통일 아프간의 통치자로 세우자고 주장했다. 잔인무도하기는 했으나 카리스마가 있었고, 어쨌든 그 시점 아프간의 최고 권위자로 인정받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런데 영국의 인도 정책에 대해 상당히 입김이 셌던 맥노튼(캘커타의 정치국장)이라는 사람의 생각은 달랐다. 도스트 무함마드를 쫓아내고 '샤 슈자'라는 인물을 통일 아프간의 지도자로 만들자는 것. '샤 슈자'는 도스트 무함마드와 권력 다툼을 하다가 쫓겨나서 인도로 망명한 인물인데 호시탐탐 카불 왕좌를 탐내고 있었다. 맥노튼은 이 사람을 아프간 꼭두각시로 앉히겠다는 원대한 계획을 세웠다.


무슨 생뚱맞은 계획인가 싶지만 또 나름대로 맥노튼이 샤 슈자를 민 이유가 있긴 있었다. 그 당시 도스트 무함마드는 바로 옆 동네인 펀자브의 란지트 싱과 페샤와르 지역을 놓고 으르렁대고 있었다. 한때는 카불의 영향권 아래 있었으나 그 당시에는 펀자브의 영향권 아래 있었던 땅이다. 도스트 무함마드는 계속 그 땅을 돌려달라고 주장하고, 펀자브의 란지트 싱은 절대 안 준다고 버티고 있던 중이었다. 영국이 인도를 보호하려면 아프간과 펀자브가 친하게 지내야 하는데 그 놈의 땅 문제 때문에 도저히 둘이 친해질 기미가 없었다. 그래서 맥노튼은, 도스트 무함마드를 내쫓고 온순한 샤 슈자를 앉힌 다음 샤 슈자로부터 다시는 페샤와르를 탐내지 않겠다는 각서를 받아내면 아프간과 펀자브가 친해질 수 있겠다는 계산을 한 것이다.


원래 계획은 펀자브의 군대를 이용해 카불을 치고 도스트 무함마드를 쫓아내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바지에 펀자브 지도자가 발을 삭 빼고, 결국 영국군이 단독으로 카불로 쳐들어가게 되었다. 영국군이 밀고 들어오고 있다는 소식을 들은 도스트 무함마드는 카불을 버리고 도망갔다. 영국군과 샤 슈자는 카불에 무혈입성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운 듯 보였으나 문제가 있었다. 샤 슈자가 아프간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었다는 것이다. 외국 군대가 들어와서 멀쩡한 왕을 쫓아내고 인기도 없는 사람을 왕위에 앉혔으니 이게 제대로 돌아갈리가 없다. 게다가 영국군이 남의 땅인 카불에서 너무 방탕하게 지냈다. 매일 밤 화려하게 무도회를 열고 돈을 써재끼느라 아프간에 물자가 부족해지고 물가가 치솟았다. 심지어 아프간 여자들까지 건드렸다고 하니 아프간 사람들의 분노가 하늘을 찔렀다. 


이 당시 '부하라 번스'로 불리는 알렉산더 번스도 카불에 있었다.(이 사람 별명은 카불 번스가 되어야 한다구요.) 알렉산더 번스는 사실 영국군이 몰아낸 그 도스트 무함마드랑 친했는데, 명분 앞에 우정 따위는 아무 것도 아니었다. 번스가 자기 손으로 도스트 무함마드를 내쫓고 샤 슈자를 그 자리에 앉혔다는 게 역사의 아이러니다.


1841년 11월. 카불의 상황을 잘 아는 인물이 번스에게 경고를 한다. 오늘 밤 당신의 목숨을 노리는 시도가 있을 거라고 말이다. 아프간 사람들이 영국군에 대항해 대규모 무장 봉기를 일으킬 계획인데 그 영국군의 중심에 있었던 알렉산더 번스를 첫 번째 타깃으로 노릴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런데 번스는 시민들의 무장 봉기를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은 것 같다. 자신의 집 경비를 강화하기는 했으나 그뿐이었다. 영국군 병영으로 대피하지도 않았고 카불의 요새 발리 히사르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그리고 그날 대참사가 벌어진다.


영국군에 불만을 가진 아프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알렉산더 번스와 그 주변 인물들을 죽이고 말았다. 게다가 시민 봉기 소식을 들은 무함마드 아크바르(도스트 무함마드의 아들)가 여기에 가세해 영국군을 몰아붙였다. 처음에는 오합지졸로 시작한 봉기였는데 지도자까지 생겼으니 아프간 사람들의 사기가 크게 올랐다. 그런데 이 아크바르라는 인물이 진짜 잔인한 사람이다. 이 책에서 나온 것만 보더라도 거짓말을 몇 번을 한 건지 셀 수도 없다. 이런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아크바르를 믿고 협상에 나선 영국 측도 순진하다고 볼 수 있겠으나, 하 모르겠다. 아크바르와 협상을 할 수 있겠다고 생각한 것 자체가 영국군에게는 악몽의 시작이었으니 말이다.


우선 아크바르는 협상을 하자고 꼬드겨서 영국 측 맥노튼을 불러내어 죽인다. 그리고 남아있는 영국군과 가족들 및 민간인들에게 인도로 돌아가라고 말을 한 뒤 어마어마한 대학살극을 벌인다. 아크바르가 아프간 사람들에게 영국인들의 이동 경로를 흘렸고 영국군에 앙심을 품은 아프간 사람들이 합심해서 이런 대학살을 벌였다. 이 부분은 너무 참혹하니까 패스. 그런데 글 자체는 정말 실감나게 잘 써서 숨도 못 쉬고 읽었다. 마지막에는 영국인 군의관 한 명이 살아남아서 이 참상을 전해준다.(몇몇 인도인 병사들도 동굴에 숨어있다가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몇 달 후 밝혀진다.) 1만 명이 넘는 인원 중 단 몇 명만 살아남았다는 사실이 너무 충격이다.


영국군은 엄청난 타격을 입고 아프간에서 철수하게 된다. 그리고 원래 카불의 지도자였던 도스트 무함마드가 다시 돌아와 카불을 지배한다. 그러니까 아무 것도 바뀐 게 없었다. 그야말로 360도 돌아서 제자리로 돌아온 것. 이럴 거면 아프간에 왜 쳐들어갔냐고!!!(대참사를 벌인 주범자인 아크바르는 그 후로도 별탈없이 카불에서 살다가 병사했다고 한다.)


【영국은 심한 상처를 입었다. 아무리 많은 훈장을 수여하고, 개선문을 세우고, 연대 무도회를 비롯한 갖가지 잔치를 열어도 마지막 아이러니는 감출 수가 없었다. 영국이 아프가니스탄을 떠나자마자 다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샤 슈자의 아들은 석 달이 안 되어 권좌에서 쫓겨났다. 영국은 엄청난 대가를 치르며 밀어냈던 도스트 무함마드가 왕좌로 복귀하는 것을 무조건 허락할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누구도 도스트 무함마드가 아프가니스탄에 질서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결국 한 바퀴 원을 그리고 제자리로 돌아온 것이다.】


영국이 아프간에서 당한 대참사 소식은 부하라까지 흘러 들어간다. 그 당시 부하라에 찰스 스토다트와 아서 코널리가 인질로 잡혀 있었다. 일단 찰스 스토다트가 먼저 잡혔고, 아서 코널리는 그를 구하러 갔다가 같이 잡힌 거였다. 도대체 스토다트가 왜 인질이 됐는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기는 한데, 겉으로 드러난 이유는 스토다트가 부하라의 예절을 어겼다는 것이다. 왕을 만나러 갈 때는 말에서 내려서 걸어가야 했는데 말을 타고 들어갔다던가 하는 이유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이런 건 너무 사소한 이유다. 그 당시 중앙아시아에서는 러시아와 영국의 기싸움이 너무 심해지고 있었다. 그래서 부하라의 지도자는 아마도 시험을 해본 게 아니었을까. 영국이 얼마나 강한 나라인지 모르겠으니 일단 인질을 잡아보고 어떻게 나오는지 보고싶었던 게 아니었을까 싶다. 그런데 당시 영국은 아프간 때문에 정신이 하나도 없어서 찰스 스토다트, 그리고 그를 구하러 들어간 아서 코널리를 신경쓸 겨를이 없었다.


부하라의 지도자는 영국인 인질을 잡았는데도 영국에서 너무 조용한 걸 보고 여러가지 생각을 했을 것이다. 생각보다 영국의 힘이 약할 수 있다. 그리고 이 두 사람이 영국이 보낸 공식 사절이 아니라 첩자일 가능성이 크다. 그 당시 중앙아시아에서는 워낙 흉흉한 소문이 많았다. 유럽인은 전부 스파이로 보는 시각이 우세했다.(사실 꼭 틀린 말은 아니다. 다들 정보 빼내려고 혈안이었으니까) 그런 상황에서 찰스 스토다트와 아서 코널리가 운 나쁘게 부하라 지도자에게 잡혔고 영국 정부에게 버림 받았고 영국이 아프간에서 쫓겨났다는 소식까지 들은 것이다. 그 결과는 두 사람의 죽음이었다. 워낙 잔인한 성격이었던 부하라의 지도자는 굳이 두 사람을 살려두어 후환을 남길 필요가 없겠다고 판단하여 두 사람을 참수시켰다. 물론 바깥 세상에 본보기로 보여줘야겠다는 생각도 있었을 것이다. 함부로 부하라에 들어와서 스파이 짓을 했다가는(물론 스토다트가 스파이는 아니었다만 그 사람들 입장에서는 그렇게 보였을 것이다) 이런 꼴을 당한다는 걸 보여준 것이다.


그렇게 영국군 장교가 둘이나 부하라에서 죽임을 당했는데도 역시나 영국은 가만히 있었다. 카불 대참사 직후여서 도저히 군대를 부하라까지 움직일 여력이 없었던 것이다. 아프간까지 가서 그 수모를 당했는데, 아프간보다 더 먼 부하라까지 가라고? 갈 사람도 없었을 것이고, 그 당시 영국 국내 여론도 안 좋아서 쉽사리 그런 결정을 내리긴 어려웠다. 그렇게 그레이트 게임의 두 선수가 사망하고 게임의 전반전은 막을 내렸다.


이 다음부터는 영국과 러시아가 약간의 소강 상태를 맞이한다. 특히 영국은 아프간에서 당한 충격이 너무 커서 그걸 수습하는 것만 해도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도 내부 문제도 심각했다. 1857년 세포이 항쟁이 벌어지고 영국은 동인도 회사를 통한 인도 간접 지배 방식을 버리고 직접 통치로 전환한다.


그리고 이제 그레이트 게임의 후반부로 접어들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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