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eBook] 헬로 뷰티풀
앤 나폴리타노 지음, 허진 옮김 / 복복서가 / 2024년 8월
평점 :
복복서가 신간 <헬로 뷰티풀>을 읽었다. 원래는 ‘복복깜짝북‘이라고 해서 블라인드북으로 나온 책이었는데 일정 기간이 지나고 앤 나폴리타노의 <헬로 뷰티풀>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곧바로 전자책도 나왔길래 일단 사봤다.
일단 이 책은 재미있다. 구매하고나서 50% 정도를 순식간에 읽었고 자기 전에 ‘나머지도 살짝 읽어볼까‘하면서 펼쳤다가 새벽 3시까지 읽어서 다 끝내버렸다. 꽤 두꺼운 책이었는데 페이지 넘기는 걸 멈출 수가 없었다.
네 명의 자매가 등장한다. 첫째 줄리아, 둘째 실비, 그리고 에멀라인(=에미)과 세실리아는 쌍둥이다. 줄리아는 요즘 말로 하면 K-장녀 같은 인물이다. 당차고 저돌적이고 가족들을 대신해서 뭔가를 계획하고 결정하는 인물이다. 실비는 운명적인 사랑을 꿈꾸는 낭만적인 면이 있지만 한편으론 자신만의 고집이 있다. 에미와 세실리아는 조용한 듯 보이지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용감한 인물들이다.
그리고 줄리아의 남자 윌리엄이 이 가족의 삶에 등장한다. 윌리엄에게는 남모를 상처가 있다. 윌리엄 위로 세 살 많은 누나 캐럴라인이 있었다. 하지만 윌리엄이 태어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캐럴라인이 죽었다. 부모들은 평생토록 죽은 캐럴라인을 생각하느라 윌리엄을 신경쓰지 않았다. 윌리엄은 부모가 있었지만 태어날 때부터 사실상 고아나 마찬가지였다. 줄리아의 부모인 로즈와 찰리는 자세한 내막은 모르지만 윌리엄이 외로운 아이라는 걸 알아본다. 그들은 윌리엄을 자신들의 아들처럼 여긴다. 줄리아의 동생들은 윌리엄을 오빠처럼 생각한다. 드디어 윌리엄에게도 가족이 생긴 것이다.
윌리엄은 대학 때까지 쭉 농구를 했다. 하지만 이미 부상을 입었던터라 자신이 프로 농구선수로 성공할 수 없다는 건 알고 있었다. 줄리아는 윌리엄의 장래까지 미리 결정해놓았다. 자신의 부모를 만나러 온 윌리엄이 장래에 대한 질문에 대해 우물쭈물하고 있을 때 그는 아마 교수가 될 거라고 대답을 해버린다. 윌리엄은 그렇게 자신을 이끌어주는 줄리아에게 고마움을 느낀다. 하지만 생각한대로 풀리지 않는다는 것이 인생의 비극이다. 윌리엄은 줄리아의 바람대로 교수가 되기 위해 석사 과정을 밟지만 여기서부터 본격적으로 많은 것들이 꼬이기 시작한다.
이 책은 여러 주인공들의 입장이 번갈아가면서 서술된다. 이 소설 속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을 여러 캐릭터의 입장에서 생각해보게 된다. 소설 내용 중에 ‘은근히 막장인데...?‘ 싶었던 지점들이 꽤 있었는데도 ˝왜 저래...?˝ 이런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래,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럴 수도 있겠지˝ 하면서 넘어가게 된다. 그러면서 롤러 코스터를 탄 것처럼 감정이 오락가락하게 된다. 저 사람 입장에서는 저럴 수 있는데, 이게 또 이 사람 입장에서는 용납이 되지 않는 문제라서 하...미쳐버릴 것 같았다.
소설을 다 읽고 나서도 내가 줄리아였다면 어땠을까, 내가 실비였다면, 윌리엄이었다면, 이들의 엄마인 로즈였다면, 나는 어떻게 행동했을까, 이런 걸 계속해서 생각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정답은 없었다. 뭘 선택했어도 조금씩은 후회했을 것 같다. 후회 없는 인생은 어디에도 없다는 단순한 진리를 이 소설을 읽고 나서 또 한 번 깨닫게 되었다. '하...도대체 인생 어떻게 살아야 한다는 말이냐' 이런 생각으로 며칠간 골머리를 썩었다.
다만 이 소설은 너무 미국적인 소설이라고 느껴지는 지점들이 있었다. 미국은 안 가봤지만 미국인들이 생각보다 더 가족적이라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은 적이 있다. 주말은 항상 가족이랑 보내야 하고 가족 간의 화합을 굉장히 중요시하는 사회라는 것. 물론 한국도 굉장히 가족적인 사회이기는 하지만 미국의 가족 문화와는 뭔가 다르다. 설명할 수 없지만 뭔가 다르다. 한국 사람들은 가족과 부딪히면서 자아를 찾으려는 것 같고, 미국 사람들은 뭐가 어찌됐든 가족이 최고, 이 세상에서 믿을 건 가족뿐, 이런 느낌이랄까. 그런 점에서 약간 이 소설의 기저에 깔린 감정들과 거리감을 느끼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최근 들어서 이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게 해준 소설도 많지 않았던 것 같아서 굉장히 만족스러운 독서 경험이었다.
[ ˝네, 교수님. 윌리엄 워터스입니다. 여긴 너무 덥네요.˝
˝그렇다네, 윌리엄 워터스. 그렇고말고.˝
윌리엄이 노교수에게 그늘을 드리우려고 그 앞에 섰다. ˝도움이 필요하세요?˝
˝아, 글쎄, 우리 모두 그렇지 않나? 옆에 앉지 그러나, 윌리엄 워터스. 누구든 햇볕을 좀 쫴서 나쁠 건 없지.˝
이 문장은 이 소설에서 가장 좋아하는 부분이다. ˝도움이 필요하세요?˝라는 질문에 ˝아, 글쎄, 우리 모두 그렇지 않나?˝라고 대답하는 노교수. 그야말로 인생의 달고 쓴 맛을 모두 맛본 사람이 아니었을까. 이 노교수는 정말 스치듯이 지나가는 캐릭터인데 소설 다 읽고 나면 이 노교수가 계속 생각이 난다. 하여튼 이 소설은 묘하게 자꾸 생각이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