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Book] 끌리는 이야기는 어떻게 쓰는가 - 사람의 뇌가 반응하는 12가지 스토리 법칙
리사 크론 지음, 문지혁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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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텔링 이론서가 시중에 꽤나 많이 나와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 내가 읽어본 것은 이 책이 처음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좋았다. 책을 읽고나면 항상 밑줄 친 부분을 노션에 옮겨 적는데 이 책은 밑줄을 너무 많이 쳐서 노션에 옮기지 말까 고민하기도 했다.


우선 나는 작가 지망생이 아니다. 이 책을 철저하게 일반 독자의 입장에서 읽었다. 그동안 봤던 소설과 드라마들을 떠올리면서 '맞아맞아. 이런 부분은 이래서 별로였고 이런 부분은 이래서 정말 좋았어'라고 판단할 수 있는 이론적 근거를 얻을 수 있어서 좋았다. 작가 지망생이라면 좀더 실용적인 도움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어쨌든 결론은 '끌리는 이야기를 쓰는 것은 쉽지 않다. 하지만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아마존 사이트를 확인해보니 이 책 원서는 2012년에 나왔다. 우리나라에서도 한 10년 전에 번역이 되어 나왔는데 이번에 새 표지를 입고 새로 나왔다.


[ 좋은 이야기를 만들기 위한 첫 번째 작업은, 지금 눈앞에 어떻게 이리도 강력한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는지 묻는 우리 뇌의 영역을 완전히 마비시키는 것이다. 좋은 이야기는 환상처럼 느껴지지 않는다. 말 그대로 진짜처럼, 삶처럼 느껴진다. 최근 학술지에 보고된 뇌 영상 연구는 우리가 실생활에서 보고, 듣고, 맛보고, 움직이는 부분을 관장하는 뇌의 영역이 인간이 강력한 이야기에 몰입할 때 활성화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이것은 내일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도 밤새 읽기를 멈출 수 없을 때 우리가 느끼는 생생한 이미지와 본능적 반응을 설명해준다. ]


십몇 년 전에 쓰인 책이라서 그 사이에 뇌 과학 분야에서 어떤 연구들이 더 진행되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어쨌든 좋은 이야기를 읽을 때 우리는 진짜 그 경험 속으로 들어간다고 한다. 이 책은 어떻게 하면 그렇게 몰입도 높은 이야기를 쓸 수 있는가에 대한 12가지 방법을 제시한다.


1장부터 12장까지 전부 재미있게 읽었는데 그 중에서도 특히 재미있었던 건 6장이었다. 6장 제목은 '구체적으로 쓰기', 부제는 '떠올릴 수 없다면 존재하는 게 아니다'이다.


이런 문장을 읽는다고 가정해보자. '2006년 10월, 허리케인으로 인한 홍수로 6천 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의 감정은 깊은 곳까지 내려가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엄마 품에 안겨있던 아이가 엄마 손을 놓치고 홍수로 떠내려가는 장면을 묘사하는 글을 읽는다고 생각해보자. 너무 가슴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날 수도 있다. <끌리는...>은 이게 바로 구체적으로 쓴 이야기의 힘이라고 말한다. 더 나아가 소설 안의 문장에서도 일반론 대신 구체성을 끄집어내라고 요구한다. '트레버는 좋은 시간을 보냈다' 같은 문장을 쓰지 말고 그 사람이 실제로 무엇을 했는지 보여주라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이야기의 힘을 굉장히 강조한다. '아름다운 글은 모든 것을 이긴다'는 것은 잘못된 믿음이고 '이야기가 아름다운 글을 이긴다'고 주장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주장에 동의하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나의 견해는 <끌리는...> 작가의 견해와 99% 일치한다. 나는 소설에서 아름다운 문장을 그다지 기대하지 않는다. 밑줄 친 문장이 하나도 없을지라도 다 읽고 나면 '정말 아름다운 이야기였어...'라고 곱씹을 수 있는 그런 소설들을 좋아한다. 


이 책은 그밖에도 갈등은 이런 것이어야 하고, 복선은 이렇게 짜야 하고 등등 여러 가지 실용적인 방법론을 풀어놓는다. 구체적으로 쓰라고 요구하는 사람답게 이런 주장을 할 때마다 사례를 들어 비교해준다. 밋밋한 스토리가 흥미진진한 스토리로 바뀌는 과정을 보니 매우 흥미로웠다. 중이 제머리를 못 깎는 것처럼 작가들은 자신이 쓴 이야기의 단점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럴 때는 제삼자의 역할이 필요하다. <끌리는...>을 쓴 작가는 본인이 소설을 쓰지는 않을지라도 남들이 쓴 소설에서 이런 저런 부분을 만지면 어떻게 좋아질 수 있을지 확실히 아는 사람이다.


이 책의 번역자는 소설 창작을 가르치기도 하고 본인 스스로 소설을 쓰기도 하는 문지혁 작가다. 이 분이 쓴 소설 읽어보려고 장바구니에 담아두었는데 번역서도 있다는 건 처음 알았다. 번역도 걸리는 부분 없이 매끄럽게 잘 읽혔다.


[ 인간은 음식 없이 40일을 살 수 있고, 물 없이 3일을 살 수 있지만, 의미 없이는 35초도 살 수 없다고. 그렇다. 35초란 우리 뇌가 각종 정보를 분석하는 속도에 비하면 영원과도 같은 시간이다. 이것은 생물학적 충동이다. 우리는 언제나 의미를 갈구하는 존재다. ]


[ 주제는 중요하면 중요할수록 절대 노골적으로 서술되지 않는다. 중요한 주제는 언제나 함축되어 있다. 주제를 최우선으로 하고 이야기는 그 다음에 놓는 책과 영화들은 '말하지 말고 보여주라’라는 글쓰기의 가장 중요한 규칙을 깨기 쉽다. 이야기가 주제를 보여주는 것이지, 주제가 이야기를 말해주는 게 아니다. ]


[ 매정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쓸데없는 이야기들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것들이 당신의 이야기를 죽이기 전에. ]


[ 당신의 이야기는 어떤가? 이따금씩 흥미롭기는 하지만 쓸데없는 방향으로 빗나가지는 않는가? 인과관계를 찾으려는 독자의 기대를 꺾어버리지는 않는가? 빨간 펜을 꺼내 그 부분을 표시하라. 소심해질 필요는 없다. 일찍이 새뮤얼 존슨이 작가들에게 했던 충고를 기억하라. "당신이 쓴 글을 꼼꼼히 읽어라. 그리고 특별히 맘에 든다고 생각되는 구절을 만날 때마다 그걸 빼버려라.” ]


[ 독자로서 우리가 찾는 것은 오직 '우리 자신’과 연관시킬 수 있는 무엇이다. '자신의 진실'에 집중하는 작가들은 중요한 사실을 잊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누군가가 자신이 쓴 이야기를 읽어주기를 원하는 한, 글쓰기는 자기표현이 아니라 커뮤니케이션이라는 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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