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재 지수를 높이고 싶다. 북플의 독보적 활동 때문이다. 


얼마 전부터 아침 걷기 운동을 시작하면서 독보적 활동을 시작했다. 평일에 5000보 이상을 걷고(이건 문제 없다) 읽고 있는 책 한 권을 추가하면 된다. 문제는 읽고 있는 책을 알라딘에서 구매한 책 안에서만 골라야 한다는 것이다. 나는 알라딘에서 전자책을 구매하기도 하지만 밀리의 서재, 크레마클럽에서 책을 읽기도 한다. 시립 전자 도서관 두 곳도 이용 중이다. 구매한 책만 읽는 것이 아닌데 구매한 책만 '독보적'에 등록하라고 하니 난감하다. 아, 물론 구매하지 않은 책도 등록이 되기는 한다. 그런데 그럴 경우 스탬프를 주지 않는다. 스탬프 받으려고 하는 건데!!!


방법은 딱 하나, 서재 지수를 5000점 이상 끌어올려야 한다. 그러면 구매한 책이 아닌 책을 읽은 경우에도 스탬프를 준다고 한다. 단 한 번도 서재 지수에 신경을 써본 적이 없었는데 북플 독보적 때문에 서재지수가 너무 신경 쓰인다. 어떻게 하면 5000점까지 단숨에 도달할 수 있을까.


서재지수를 어떻게 끌어올리는지 설명해주는 글을 찾지 못했다. 그래서 자체적으로 실험을 해봤다. 며칠 전 나의 서재지수는 3218점이었다. 그 후에 리뷰 한 개, 백자평 두 개를 작성했고 오늘 오전에 확인한 나의 서재지수는 3347점. 리뷰 하나랑 백자평 두 개로 129점을 끌어올렸다. 서재지수가 내가 작성한 글 개수로만 판정이 되는 것인지 조회수 및 좋아요 수도 같이 집계가 되는 건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서재 지수를 5000점까지 올리기 위해서는 리뷰든 페이퍼든 계속해서 올려야 한다는 뜻이다. 그래서 나는 오늘도 쓴다. 서재 지수를 끌어올려야 하기 때문에, 서재 지수를 어떻게 올릴지 고민하는 글을 쓴다.


독보적 활동은 해보니까 재미있다. 어차피 걸을 건데 독보적 기록도 하고 스탬프도 모아서 적립금도 타면 좋겠다. 게다가 월마다 추첨해서 추가 적립금도 준다고 하니 완전 땡큐다. 문제는 이것 때문에 책을 더 사게 생겼다는 거다. 서재지수가 5000점이 되기 전까지는 구매한 책 중에서만 읽어야 하므로 '구매'에 굉장히 신경을 쓰게 된다. 물론, 사놓고 안 읽은 책이 굉장히 많다. 사놓은 책 중에서 안 읽은 책을 골라서 '독보적'에 등록하고 그걸 읽으면 된다. 그게 상식적이다. 그런데 나는 '구매한 책만 읽을 경우에만 스탬프를 준다고? 그렇다면 내가 지금 다른 구독 서비스에서 읽고 있는 책을 구매해야겠군'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비상식적이고 비이성적이다. '독보적'에서 스탬프 10개를 모으면 적립금 500원으로 바꿔주는데 그걸 받으려고 책을 사는 사람이 있다니. 주객전도도 이 정도면 심각하다.


어쨌든 어제 산 책 이야기를 해보겠다. 빛소굴 출판사의 페이지터너스 시리즈다. 검색해보니까 종이책으로는 9권이 나와있는데 전자책은 6권만 존재한다. 그 6권을 한꺼번에 결제했다.

이번 충동구매는 전적으로 슈테판 츠바이크 탓이다. 얼마 전 <광기와 우연의 역사>를 다 읽고 나서 다음 책으로는 <어제의 세계>를 읽으려고 했는데 아무래도 이건 작가가 죽기 전에 남긴 회고록의 성격이 짙으니 가장 마지막으로 읽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번 달은 나 혼자 정한 슈테판 츠바이크 집중 읽기 기간이다.) 그럼 뭘 읽을까 하다가 이 작가가 소설도 잘 쓴다는 소리를 익히 들었기에 밀리의 서재에 올라와있는 그의 소설 중 하나인 <우체국 아가씨>를 읽기 시작했다.


재밌다, 역시나 이 작가 글을 잘 쓰는군, 하면서 읽다가 이 문장에서 심장을 후드려 맞았다.


「1919년, 여자가 스물한 살 때 전쟁이 끝났다. 하지만 가난은 끝나지 않았다. 당국이 끝없이 쏟아내는 법령 아래 숨었을 뿐이었다. 아직 잉크도 마르지 않은 전쟁공채와 지폐의 방공호 아래로 교활하게 기어 들어가 숨어 있던 가난은 뻔뻔스럽게 기어 나와 우묵한 눈으로 주위를 살펴보며 주둥이를 크게 벌리고 전쟁의 시궁창에 남겨진 것들을 집어삼켰다. 살인적인 인플레이션이 계속되던 겨우내 하늘에서는 수십만, 수백만 개의 돈다발이 눈송이처럼 쏟아져 내렸다. 하지만 눈은 온기 있는 손에 닿자마자 녹아버렸다. 돈은 잠을 자는 사이에도 녹아버렸다. 다시 시장으로 뛰어가기 위해 나무 굽을 댄 구두로 바꿔 신는 동안에도 돈이 날아가 버렸다. 멈추지 않고 부지런히 움직였지만, 항상 너무 늦었다. 생활이 수학이 되고, 덧셈이 되고, 곱셈이 되고, 머리가 어질어질한 숫자들의 소용돌이가 되고, 마지막 남은 물건들을 시커멓고 탐욕스런 진공 속으로 빨아들이는 회오리바람이 되었다. 어머니가 준 황금 머리핀이 머리에서 사라졌고, 어머니의 결혼반지가 손가락에서 빠져나갔으며, 다마스크 식탁보가 식탁에서 종적을 감췄다. 하지만 아무리 많이 던져 넣어도 소용없었다. 그 시커먼 지옥 같은 구멍을 막을 수 없었던 것이다. 늦게까지 잠도 못 자고 앉아서 털스웨터를 짜거나 방을 전부 세놓아도, 부엌을 침실 삼아 다른 사람과 같이 사용해도 소용없었다. 오로지 잠을 자는 것만이 마음대로 할 수 있고 돈 안 드는 일이었다. 여자는 늦은 밤, 지옥 같은 현실은 잊은 채 지치고 수척해진 육체를, 설렘이 사라져 버린 돌덩이 같은 육체를 침대에 눕혔다.」

갑자기 이 책을 사야겠어, 라는 하늘의 계시 같은 부름을 받고 알라딘에서 이 책을 검색했다. 종이책 정가의 40%로 할인한 가격에 전자책을 팔고 있었다. 40%면 거의 반값이다. 이 정도면 할인폭이 꽤 높은 거라서 바로 구매 버튼을 누르려다가 이게 페이지터너스라는 시리즈의 일부라는 걸 알게 되었고 그 시리즈를 통으로 검색해봤다. 


슈테판 츠바이크의 소설이 두 권이 있고 그걸 제외하고는 전부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작가들이었다. 그런데 전반적으로 평점이 높고 무엇보다 출판사가 페이지터너스라고 자신있게 명명해서 그 책들을 이 세상에 내보냈다는 것에 마음이 혹했다. 그 중 하나인 <우체국 아가씨>가 정말로 재미있으니 신뢰도 가고 말이다. 다만 <우체국 아가씨> 말고는 전자책 할인폭이 그리 크지는 않았다. 이것만 종이책 대비 40% 할인이고 나머지 책들은 대부분 종이책 대비 30% 정도 할인된 가격이었다. 하지만 전자책 10% 할인쿠폰 적용하고 이렇게 저렇게 하면 내가 지금 보유한 전자책 캐시 안에서 살 수 있을 것 같아서 6권을 한꺼번에 질러버렸다......

원래는 한꺼번에 이렇게 여러 권의 책을 사는 일은 없다. 장바구니에 담아두고 전자책 적립금이 천 원, 이천 원 쌓일 때마다 하나씩 구매하는 것이 나의 구매 패턴이다. 세 권짜리인 <나는 고백한다 1-3>을 지금 그런 식으로 사고 있다. 몇 주 전에 1권을 샀고 또 얼마 전에 2권을 샀고 아직 3권은 구입 전이다. 전자책 적립금 모이면 그때 사려고 맨 마지막 권을 남겨두고 있을 정도로 나는 인내심이 강하다. 적립금 없는 곳에 구매도 없다는 신조로 살아가고 있었는데 빛소굴 출판사의 시리즈에 굴복하고 만 것이다. (장바구니에 홀로 남아있는 <나는 고백한다3>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얼른 3권을 구입해 나의 책장을 완성해야 하니 전자책 적립금이 팍팍 쌓였으면 좋겠다.)


일단 지금 <우체국 아가씨> 읽고 있는데 이거 다 읽고 나면 츠바이크의 또 다른 책인 <과거로의 여행> 읽을 거고 그 다음엔 <쇼샤> 읽을 거다. <쇼샤>는 크레마클럽에 올라와있는 책이다. 예쁜 보라색 표지와 쇼샤-라는 알쏭달쏭한 제목에 꽂혀서 진작 내 서재에 담아놓은 책인데 크레마클럽에서 읽기도 전에 알라딘에서 구매를 해버렸다


혹시나 밀리의 서재에 이 책들이 전부 들어와있는지 궁금해서 이 글을 쓰고 있는 지금에서야 한 번 검색을 해봤다. 아뿔사, 빛소굴의 페이지터너스 시리즈가 밀리의 서재에 전부 올라와 있다. 하하하, 하지만 사서 읽는 게 더 재미있으니까 괜찮아. <우체국 아가씨>도 밀리에서 읽다가 산 거니까, 괜찮아 괜찮아.


전자책이 구독 서비스에 올라가면 책이 안 팔릴 거라고 생각하지만, (나 같은)어떤 독자들은 일단 빌려보고 재미있으면 구입해서 보관하기도 한다. 그 작가의 그 문장들이 내 소유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면서 전자책을 결제한다. 물론 전자책은 종이책에 비해 소유하고 있다는 느낌이 심히 떨어지기는 하지만...그래도 일단 돈을 냈으니까 내 거라고 우겨본다.(전자책 이용자들은 인터넷 서점이 망하면 자신이 산 책들이 전부 공중분해될 거라는 근원적인 공포심을 갖고 있다. 그러니까 망하지마, 알라딘. 책을 많이 팔란 말이야. 그래야 내 전자책이 영원히 보존될 수 있어ㅠㅠ)

그나저나 알라딘에는 <정신과 의사> 전자책이 아예 등록되어 있지 않은데 밀리의 서재에 이 책의 전자책이 버젓이 올라와있다. 그것도 '독점'이라는 타이틀을 달고. 뭐야 도대체 뭔데. 알라딘과 교보문고와 예스24를 다 뒤져도 이 책의 전자책은 없다. 아니, 밀리의 서재에 올릴 정도면 전자책 파일이 있다는 건데 그걸 왜 안 팔고 여기에만 올리는지 이해를 못하겠다, 고 생각하는 순간 밀리의서재 소개글에 있는 전자책 출간일을 봤다. 2024년 1월 31일. 허허..지금이 1월 15일인데 이 책은 시간을 거슬러 왔구나. 그러니까 정식 출간 되기도 전의 전자책 파일을 밀리에서 독점 계약에서 올린 거다. 그렇다면 이 책은 밀리에서 봐줘야겠다.


서재 지수를 어떻게 하면 올릴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에서 시작한 이 페이퍼는 빛소굴 출판사의 페이지터너스 시리즈 지름신 영접을 거쳐 밀리의 서재로 끝나게 되었다. 이 글의 정체성이 뭔지 나는 모르겠다. 글을 시작하기는 쉬운데 글을 끝맺는 것은 항상 어렵다. 서재 소개글에 일부러 '미완성의 기록들'이라고 적어놨다. 내가 쓰는 모든 글은 미완성이라는 의미로, 더 나아가서는 미완성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적은 것이다. 어떤 글을 완성하려고 하면 시작하기가 힘든데, 미완성으로 끝내겠다고 다짐하면 글 쓰기가 쉽다. 의식의 흐름대로 쓰다가 뚝 끝내면 된다. 그렇게 해서 나의 모든 기록은 미완성으로 남게 될 것이다. 일단 서재지수 5000점을 향해 달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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