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원래 아침에 일어나는 걸 늘 힘들어했다. 저혈압이라서 그렇다고 핑계를 대보기도 하지만 어쨌든 늦게 자고 늦게 일어나는 생활이 익숙했던 거다. 늘어지게 자고 일어나면 개운하기는 하지만 하루를 도둑 맞은 것 같은 생각에 기분이 좋지만은 않았다. 그래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최근에 두 가지를 시작했다. 모닝페이지와 신문 구독.


모닝페이지는 <아티스트 웨이>라는 책에서 소개하는 방법이다. 아침에 일어나서 45분 동안 손으로 세 쪽 일기를 쓰라는 것이다. 


2012년에 나온 첫 책은 아주 예전에 종이책으로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 엄청 감명깊게 읽고 모닝페이지를 썼다. 그때는 손으로 쓰기가 싫었는지 컴퓨터로 썼다. 그때 쓴 한글 파일을 찾았는데 열려고 하니까 비밀번호를 입력하라고 한다ㅋㅋㅋㅋㅋ핸드폰 번호 뒷자리부터 생년월일까지 다 넣어봤는데 안 열리더라. 나 도대체 무슨 숫자를 입력해놓은거지? 아무리 시도해도 열 수가 없어서 포기했다. 그렇게 2012년에 쓴 모닝페이지는 날아갔다. 도대체 무슨 대단한 비밀이 있다고 비밀번호까지 걸어놓은 건지 나 자신을 이해할 수가 없다.


어쨌든 2012년에 낸 <아티스트 웨이> 이후로도 <새로운 시작을 위한 아티스트 웨이>,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와 같은 책들이 더 출간됐다. 그 중에서 <아티스트 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이 전자도서관에 있길래 빌려봤는데 사실 하고자 하는 이야기가 뭔지 알 것 같아서 속독하면서 넘어갔다. 어쨌든 모닝페이지를 쓰면 자기 자신의 내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고 인생이 달라진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인생이 달라진다는 식의 이야기를 잘 믿지 않는 편이어서 그런 메시지에 혹 한 것은 아니다. 다만 아침에 일어나서 45분 동안 일기를 쓰자, 라는 구체적인 방법이 맘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할 일을 만들어두면 일찍 일어나는 데 도움이 될까 싶어서였다.


작년 말(그래봤자 몇 주 전)부터 모닝페이지를 쓰기 시작했는데, 하루 딱 해보고서는 이거 나랑 아주 잘 맞는다는 걸 깨달았다. 우선 나는 손글씨 쓰는 걸 아주 좋아하고 기록하는 걸 좋아한다. 기억력이 짧아서 기록을 안 해놓으면 내가 뭘 하고 살았는지 다 까먹기 때문이다. 그런데 저녁에 일기를 쓰려면 너무 귀찮고 피곤해서 내일 쓰지 뭐, 하면서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런데 모닝페이지를 쓰니까 전날에 있었던 일들을 정리할 수 있어서 좋다. 그러니까 저녁에 써야할 일기를 다음날 아침에 쓰는 것이다. 모닝페이지를 쓰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 다를텐데, 나는 무조건 전날 뭐 했는지 쓰면서 시작한다. 모닝페이지를 쓰니까 그날 있었던 일을 당일에 기록하지 않고 잠들면서도 죄책감이 들지 않는다. 내일 일어나서 쓰면 되니까 굳이 밤에 피곤하게 일기를 쓸 필요가 없다. 예술가들은 모닝페이지를 쓰면서 영감을 찾을 것이고, 고민이 많은 사람들은 해결책을 찾을텐데, 기억력이 짧은 나 같은 사람은 전날 있었던 일을 소 여물 먹듯이 되새김질 하면서 새로운 하루를 시작한다.


모닝페이지를 쓰고 나면 바로 나가서 동네를 산책한다. 아직 해가 뜨기 전이다. 해가 뜨고 나면 선크림을 바르고 나가야 하는데 그게 귀찮아서 보통 집밖에 나가는 건 해 뜨기 전과 해 지고 난 후다. 예전에는 해 지고 나서 밤 9시, 10시에 걷기 운동을 했는데 모닝페이지를 쓰면서부터는 아침에 일찍 일어나게 되어서 해 뜨기 전에 걷기 운동을 하고 있다. 거창한 건 아니고 30분 정도 걷는데 걸음수 3500보 정도가 찍힌다. 그렇게 아침에 걸음수를 저축해놓고 시작하면 이자가 붙듯이 걸음수가 차곡차곡 쌓여서 저녁에는 7000보 정도로 마감을 할 수 있다.


걷기 운동 하고 돌아오면 신문을 읽는다. 당연히 종이 신문이 아니고 디지털 신문이다. 다른 사람들이 많이들 보는 경제 신문 하나를 돈 주고 구독하고 있다.(중고나라에서 1년 구독권 사서 그나마 저렴하게 구독 중이다.) 그 신문사에 내 돈 보태주는 거 너무 싫었는데, 제대로 된 디지털 신문 구독 서비스가 그 신문사밖에 없는 것 같아서 울며 겨자먹기로 선택했다. 그거 다 보고 나면 네이버 컨텐츠에 들어가서 다른 신문사들 기사도 두루 살펴보려고 노력 중이다. 그렇다면 경제 신문 거기도 굳이 구독하지 말고 네이버에서 봐도 되는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도 있지만 이게 내 돈 주고 보는 거랑 공짜로 보는 게 확실히 다르다. 정말 다르다. 돈 주고 보는 신문은 확실히 집중해서 보게 된다. 너무 피곤해서 가끔씩 안 보고 지나갈 때도 있는데 돈 낸 게 아까워서 금방 다시 돌아오게 된다. 반면 네이버에서 공짜로 보는 뉴스들은 봐도 그만 안 봐도 그만, 하는 기분이다. 구속력이 없다. 이래서 뭔가를 제대로 하려면 일단 돈부터 들이라는 조언이 생겼나보다. 솔직히 책도 돈 내고 보는 게 훨씬 재미있다. 구독 서비스나 전자 도서관에서 빌려보는 책들은 재미가 80%밖에 되지 않아 아쉽다. 하지만 보관함에 있는 모든 책을 샀다가는 파산하고 말 것이기에 오늘도 책 구입과 대여 사이에서 갈팡질팡 줄다리기를 한다.


신문까지 다 보고 나면 확실하게 정해놓은 아침 루틴은 끝난다. 그 다음에 하는 일은 매일 다른데 그래도 요즘에는 하루 30분에서 1시간 정도를 투자해서 영어 단어를 외우려고 노력하고 있다. 영어 원서를 너무너무 읽고 싶은데 단어가 발목을 잡는다. 한 페이지에 모르는 단어가 왜 이렇게 많은건지 이해가 안 된다. 그래도 꾸역꾸역 단어 찾아가면서 읽었는데 어느새 네이버 영어사전 단어장에 미암기 단어가 1000개가 쌓였다ㅋㅋㅋㅋㅋㅋ그래서 지금은 원서 읽는 걸 중단하고 영어 단어 뽀개기에 집중하고 있다. 미암기 단어 1000개 다 외우고 나서 다시 원서로 돌아갈 예정이다. 그런데 하루에 아무리 외워도 50개 이상 외워지지가 않는다. 이것도 외우는 게 아니라 뇌 표면에 잠시 얹어두는 것이다. 다음 날 일어나면 또 까먹고 또 외운다.


지금 읽고 있는 원서는 두 권. <기묘한 나라의 여행기>로 번역된 <Don't Go There>, <경험 수집가의 여행>으로 번역된 <Far and Away>다. <Far and Away>가 압도적으로 어렵다. 원서읽기 초급자가 도전할 레벨이 아니다. 왜 이렇게 어려운 책을 골라서 셀프 고통받고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보통 영어원서 초급자들에게 추천하는 쉽고 말랑말랑한 책들은 도무지 내 취향이 아니다. 영어 원서든 뭐든간에 어쨌든 책이라서 취향이 맞아야 읽는다. 나도 청소년 필독도서 읽으면서 단계별로 실력을 늘리고 싶은데 성격상 그게 안 된다. 못 읽어도 좋으니까 재미있어 보이는 거 읽고 싶어서 사서 고통이다. 이거 다 읽고 나면 <In Cold Blood> 원서로 읽고 싶다. 그거 다 읽고 나면 이언 매큐언 소설. 도대체 내 수준에 맞는 책을 고를 의지라고는 0.1그램도 없다.


이렇게 거창하게 써놨는데 모닝 루틴 시작한지 얼마 안 됐다. 적어도 반 년 이상 지속하면 루틴이라고 부를 수 있겠지. 솔직히 신문? 안 읽어도 되고, 운동? 저녁에 해도 되는데, 모닝페이지만은 꾸준하게 쓰고 싶다. 두툼하게 쌓인 일기장 보면 올해 연말에 뿌듯할 것 같다. 연초부터 연말을 생각하면서 올 한 해 동안 뭘 해야 행복한 연말을 맞이할 수 있을지 고민한다. 확실한 건 모닝페이지와 독서. 그 중에서도 영어 원서. 저작권 만료되어서 인터넷 상에 무료로 풀린 고전 영미권 소설들 원서로 읽는 게 꿈이다. 연말에 이 페이퍼 다시 보면서 2024년을 점검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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